조개껍질과 물거품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1월 23일 인천 영종도의 왕산해수욕장에서


시인 남진우의 시 「밀물」을 들여다 보면
조개 하나를 만날 수 있었지요.
그의 ‘조개’는 “반쯤 접힌 부채의
푸른/그늘 속에” 누워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조개는 완전히 접힌 부채의/
그늘 속으로 기어들어가/
안개 자욱한 꿈을” 꾸곤 했습니다.
살았을 적 조개껍질은
쉼과 꿈이 있는 조개의 푸른 그늘이었습니다.

그 조개가 삶을 텅 비워버리고 껍질로 남은 바닷가에
여전히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가고를 반복합니다.
바다는 밀려올 때마다 물거품으로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안개처럼 깔아놓습니다.
그러면 평생 조개가 누워서 쉬고 꿈꾸었던 푸른 그늘 속에
이젠 하얀 물거품이 한가득입니다.
바닷물이 걸음을 거두어가고 나면
그 자욱한 하얀 안개도 이내 걷히고 맙니다.
그렇지만 조개껍질은 그때부터
삶을 떠나보낸 자리에
바다가 한가득 채워주워간 물거품을
톡톡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다 터뜨렸는가 싶었을 때쯤 바다는 다시 와
물거품을 또 한가득 채워주고 갑니다.
속을 비워내면 텅 빌 것 같았던 껍질 속에
이제는 끊임없이 바다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안개 자욱한” 하얀 바다였습니다.
톡톡 터뜨리면 이내 걷히는 신기한 안개였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1월 23일 인천 영종도의 왕산해수욕장에서

8 thoughts on “조개껍질과 물거품

    1. 오, 바다를 터뜨리다니.
      아주 상큼한 생각이세요.
      바다도 톡톡 터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바다로 달려가서 바다를 톡톡 터뜨리며 놀고 싶어졌어요.

  1. 살아있을 때 미처 내지 못했던 숨을 빈껍데기가 대신 쉬어주고있네요.
    요즘 익숙치않은 비가 계속 내리고있습니다.

    사진찍으러 다니고싶은데, 우산도 없어서 계속 집에있네요. ^^;
    아~~~ 그래도 빗소린 참 좋습니다.

    1. 저도 사진찍으러 좀 나가야 하는데
      요즘은 계속 집에만 있게 되네요.
      어디 가까운 한강이라도 한번 나가던지 해야 겠어요.
      오늘 서울은 아주 빛이 좋네요.

  2. 안개 자욱한 푸른 바다가 떠오르네요.
    조개 속에 고여 있는 바다의 꿈도 아련하게…
    하얀 조갑지들이 얼마나 맑고 순수한 지요.
    바닷물에 닦이고 또 닦이면서 빚어 낸 순백의 하얀 빛깔이 눈이 부십니다.

    1. 영종도 바닷가의 해수욕장들은 모두 다녀본 것 같았은데 올해 가보니 안가본 곳이 여러 군데 있더군요. 이곳이 특히 조개껍질이 많았던 것 같아요. 푸른 그늘은 아무래도 동해나 남해에서 얻어온 이미지 같아요. 서해에서 푸른 그늘의 느낌을 찾으려면 태안쪽으로 가야할 듯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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