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감

Photo by Kim Dong Won
끊어진 모뎀.
모든 램프가 거의 다 들어와 있어야 정상인데
파워와 랜의 램프만 들어와 있다


어젯밤,
정확히 1월 23일밤 1시경 인터넷이 끊어져 버렸다.
몇번 되다 말다하다가 결국은 나가버렸다.
보통은 한잠 자고 일어나면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어서
간만에 컴퓨터를 모두 끄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켬퓨터를 켰지만
여전히 인터넷은 먹통이었다.
여느 때처럼 모뎀의 전기선을 몇번 뺐다가 다시 꼽았지만
파워와 랜선의 램프만 불이 들어오고
중간의 데이터 램프에는 전혀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전화 걸었다.
사람이 나와 봐야 한단다.
오늘은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전화 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고립감이 진하게 밀려온다.
그저 잠시, 길어봐야 하루 정도 인터넷이 되지 않을 뿐인데
갑자기 어디 산골짜기 오지로 유배된 듯한 느낌이다.
정작 컴퓨터 앞을 떠나 하루 종일 산을 쏘다닐 때는 전혀 그런 고립감이 없었다.
아니 그때는 고립감보다
내가 드디어 속세를 버리고 탈출했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되지 않아 컴퓨터를 앞에 놓고 집안에서 겪는 이 고립감은
정말 내가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느낌의 고립감이다.
내일 서비스가 나온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다시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한 건 그렇게 한참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내일쯤 나온다던 사람이 곧바로 달려왔다.
문제는 모뎀 불량.
내가 고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새로운 모뎀으로 바꿔주고 갔다.
다시 잘 된다.
잠시 고립무원이었던 상황이 순식간에 해소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삶이 인터넷에 완전히 속박된 것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이 끊겼을 때의 이 고립감이 무리도 아니다.
산 속이라면 비록 잠시 그곳에 고립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산속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며,
어디든 갈 수 있을 때는 고립감이란 없다.
인터넷은 집안에 앉아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놓았다.
당연히 인터넷이 끊기면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 요즘 다음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 스카이뷰를 보면
내 고향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다 확인이 될 정도이다.
산 중턱에 자리하여 저기가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곳이라고 하자
어느 날 함께 따라갔던 우리 딸이
“그럼 저기가 하늘나라야?” 하고 물었던 곳이다.
그 산소의 동그란 봉분이 확연하게 다 내려다 보인다.
지도에서 보이는 파란 지붕의 건물은 농협의 창고이다.
고향 마을 여기저기를 어렵지 않게 한바퀴 돌아볼 수 있다.
이러니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그냥 정보를 얻는 차원을 떠나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 되기 일쑤이다.
블로그 또한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다.
이웃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마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걸음걸이가 일시에 막혀버리니 고립감을 앓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인터넷 중독을 입에 올릴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마실도 못가고 고향도 못가고 집안에 묶여 있게 생겼다면
아마 누구나 심한 고립감을 앓을 것이다.
인터넷은 이제 단순한 생활의 도구를 떠나
집안에서도 언제든지 여행이나 마실을 떠날 수 있는
일종의 길이자 소통로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이 끊긴 잠시 동안,
아무 곳도 못가고 컴퓨터 화면 속을 맴맴 맴돈 나는
오늘 심한 고립감을 앓았다.

다음 지도 스카이뷰 캡쳐 화면
내 고향인 영월군 문곡리의 빛바위 부근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는
오른쪽 상단 귀퉁이 부분의 푸른 숲 옆이다.

8 thoughts on “고립감

  1. 안녕하세요? 오토입니다.
    물어보니깐, 케이오랑 와세다랑 어느쪽이 더 좋다라고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서로 거의 비슷한 레벨이고, 장단점도 갖고 있으니까..
    일본에서도 순전히 개인취향에 의해서 좋다 안좋다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같은 문학부라면 어느쪽이 더 좋아?라고 물어봐도, 동경대라면 문학부는 이렇다 저렇다..라고 딱부러지게 말할수 있지만, 케이오랑 와세다는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하기엔 좀 힘들다고 하네요.
    그래서 학교의 특징을 물어봤는데요,
    케이오는 이미지가 좀 세련되고, 돈 좀 있는집 애들이 많고, 제대로 놀줄도 아는 트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이 많이오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고요.
    와세다는 그리 부유하지는 않지만, 학구적이고 성실한 이미지가 강하고, 세련되지는 못한 반면에 흥청망청 세월을 보내지 않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연대랑 고대의 이미지랑 거의 같은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어느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냐고 집요하게 물어봐도, 정말 어느쪽이 더 낫다고 평가하거나 판단하기 매우 힘들다고 하네요. 둘다 충분히 훌륭한 대학이고…
    그냥 취향에 맞춰서 가는게 낫지 않겠냐고.. 레벨은 정말 비슷하다고..
    에구..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이스트맨님이 일본에 지인이 저밖에 없으셔서 믿고 물어보셨는데,
    별로 도움이 되드리지 못한것 같아 너무 죄송하네요.
    그래도 제가 해 드릴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도와드릴테니까,
    언제든지 말씀 해 주세요.

    1.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일본으로 갈 때 딸아이 손에 전화번호 들려서 보낼테니 만약 연락가면 도움좀 주세요. 비빌데가 별로 없어서…
      정말 고마워요.

  2. 자기전에 블로그에 가봤더니 이스트맨님께서 글을 남기셨네요.
    웅… 저는 그냥 딴따라라 아는거라곤 오선지에 점찍는것 밖에 없어서,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보는게 제일 정확할듯 한데요.
    자기가 관심없으면 거의 바보수준으로 모르는게 일본인이라..
    주변에 음악하는 친구들이 알리가 만무하고..
    그나마 여자친구가 그쪽 계통으로 대학원까지 나와서,
    자세히 알고 있을듯 한데요..
    요즘 여자친구랑 장래문제로 냉전중인 상태라 전화를 받을지 모르겠네요.
    아… 창피해라.. ㅠ.ㅠ
    그래도 일단 최선을 다해 연락해서 물어보고,
    늦어도 월요일 아침전까지는 글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10분이라도 빨리 알려드려야 이스트맨님 마음이 좀 편해지실텐데..
    가능한한 빨리 알아보고 글을 남기도록할께요.

    1. 아이구, 고맙습니다. 폐가 아닌가 모르겠네요.
      일본에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이렇게 무조건하고 부탁을 드리게 됩니다.
      고마움은 나중에 만나면 술한잔으로… ^^

  3. 심한 ‘고립감’을 읽으며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떠오르네요.
    ‘못 잊을 사람’과 함께 ‘발’이 아니라 ‘운명’에 묶였으면 하던 시…
    (조금 쌩뚱 맞지요…)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이제 우리의 삶을 묶어 두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다시 인터넷이 연결되었다니 제가 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은 왜일까요…
    어느듯 저절로 발길이 이곳으로 옮겨 오는 일상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1. 인터넷이 이제 단순히 정보를 얻는 공간을 넘어선 것 같아요.
      말그대로 소통의 공간이랄까요.
      여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게 가장 큰 즐거움인 듯 싶어요.
      아마 인터넷으로 인한 고립감도 매일 뵙던 분들을 잠시 못본다는 것에서 온 듯도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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