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린 날의 수종사 – 운길산 넘어 수종사 가는 길 4

수종사는 언제나 차를 갖고
그 턱밑까지 올라간 뒤에 둘러보곤 했었다.
차는 항상 숨을 몰아쉬었고,
역하게 올라오는 거친 숨 속엔
타이어의 탄내가 진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절로 올라가는 길엔
산길의 반을 나누어
운길산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그건 남들의 길이려니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1월 16일 금요일, 매일가던 길과는 정반대로
산봉우리를 넘고넘어 운길산에 이르고
운길산에서 내려오다 수종사에 들렀다.
오늘은 운길산 산행의 마지막 순서로 눈내린 그 날의 수종사를 둘러본다.

Photo by Kim Dong Won

절로 올라가는데 젊은 연인 둘이 내려온다.
사이 좋을 때의 연인들은 금방 알 수 있다.
서로를 보는데 바빠 다른 곳엔 전혀 눈길을 주지 못한다.
어디를 여행해도 여행 기억이 별로 없다.
여행가서 서로를 쳐다보다 오는데 정신이 없어
다른 것은 둘러본 기억이 없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그때 그곳에 갔었나 싶다.
어디가서 무엇인가를 둘러보고 얻어오려면
사랑이 좀 식고 난 뒤에 가야 한다.
사랑이란 그저 상대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
난 홀로 왔으니 연인들이 와서도 보지 못하고 간 수종사를
여유있게 여기저기 볼 수 있을 것이다.
홀로 다니는게 좋은 점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그저 상대밖에 안보이던 시절이
쬐끔 부럽기는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작은 스님이 눈속에 빠지셨다.
오늘 기도는 하얗고 포근한 기도가 되셨을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의 한강 풍경.
강이 얼어붙은 데다가 그 위에 눈이 내려 강이 하얗다.

Photo by Kim Dong Won

수종사 다원의 처마 아래로 고드름이 열려있다.
햇살이 낮동안 빨아먹다 꼬투리만 남겨놓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부지런한 스님들께서 절마당의 눈을 다 쓸어
세 무더기로 쌓아놓으셨다.
흙과 뒤섞여 흙빛이 되어 버렸다.
지붕의 눈도 볕이 잘드는 남향의 눈은 많이 녹았다.
잔설이라도 그냥 스님들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마당이 더 좋았을 것을.
가끔 부지런함이 고맙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다.
눈온 날 마당을 쓸면
그 빗자루 끝에서 풍경이 쓸려 없어지기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보다 늦게 산을 올라온 사람인지,
아님 더 늦게 산을 내려온 사람인지…
내 뒤를 따라 절로 들어온 사람이 한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많이 늦은 시간인데 나보다 더 늦게 다니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산을 내려오면 내가 항상 꼴찌였는데 오늘은 내 뒤가 또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눈이 오면 세상이 하얗다는데 다 거짓말 같어.
눈이 오니까 세상이 완전히 캄캄해.

Photo by Kim Dong Won

아니야, 눈이 오면 세상이 하얀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근데 눈이 오면 세상이 초점이 잘 안잡히고, 절반밖에 안보이는 거 같아.

Photo by Kim Dong Won

수종사의 종루.
이곳에서 종이 울리면 그 소리가 산을 그득 메운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그 소리로 그득 찬다.
딱 한번 들어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북향의 지붕에는 아직 눈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처마끝의 둥근 기와를 둘만 모아보니
마치 안경쓴 누군가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500년 되었다는 수종사의 소나무.
원래는 옆으로 퍼져 있는 나무인데
이렇게 찍어보니 상당히 날씬한 느낌이 난다.
내가 살아온 50년 세월을 생각하면
500년이란 참으로 아득하도록 오랜 세월이다.
500년을 살면 500년전의 그때가 기억나기나 할까.
기억도 지워질 것 같은 세월이 500년이 아닐까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은행나무 앞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산을 내려오다
멀리까지 나와 사람들을 맞아주는 커다란 부처님의 옷자락 아래서
작은 부처님을 보았다.
눈을 한아름 안고계시다.
누군가의 염주가 부처님의 보대가 되었고,
그 자리가 또 눈의 자리가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늘 부처님이 내민 손엔 눈이 하얗다.
오늘 눈은 아무래도 수종사의 부처님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 선물을 받으러 덕소에서 새재고개를 넘고,
다시 봉우리를 넘고 넘어 수종사에 이르렀다.
차를 갖고 올라와 여기서 손쉽게 만나는 수종사와
봉우리를 넘고넘어 하루의 여정을 다 받친 뒤에 만나는 수종사는 무엇이 다른가요?
부처님께 물었더니
차를 갖고 쉽게 올라오면 수종사만 만나고 가는데
오늘 산을 넘어오면서 수종사와 함께 많은 것을 만날 수 있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을 넘어가면서 참 많은 것을 만났다.
부처님은 눈이 와서 내려가는 길이 매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하신다.
차를 타고 수종사로 올랐던 길을 중간중간 잠깐씩 버리면서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 산을 내려왔다.
차의 길은 완만하지만 길고
숲길은 경사가 급하지만 짧다.
가끔 경사가 급하게 내려가기도 하고
완만하지만 길게 내려가기도 했다.
다 내려와 돌아보니 산은 어둠 속에 묻혔고,
멀리 절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항상 차에 동승하여 얻었다가 버리고 갔던 높이가
오늘은 절을 내려와서도 내 발밑에 차곡차곡 아득하게 쌓여있는 느낌이었다.

***이 글의 1편과 2편, 그리고 3편
어룡마을에서 새재고개까지 – 운길산 넘어 수종사 가는 길 1
새재고개 약수터에서 중간 어딘가까지 – 운길산 넘어 수종사 가는 길 2
기어코 정상에 가다 – 운길산 넘어 수종사 가는 길 3

6 thoughts on “눈내린 날의 수종사 – 운길산 넘어 수종사 가는 길 4

  1. 지금으로 부터 37년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 몇몇과 함께 가까운 명소인 수종사를 가보기로 하고 걸어서 갔다.그때만해도 버스는 하루 한번 서울행(아침에 서울로 갔다가 저녘에 들어오는)버스 밖에 없어서 우리 마을에서 양수리 까지 8km양수리에서 송촌리 수종사 마을밑에 까지 3km 가까이 걸었다.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앞으로 고등학교에 가서 헤어지더라도 굳건한 우정을 다지며 걸어 수종사 밑마을 조그만 가겟집에 라면을 끌여 줄것을 부탁 햇다.그런데 그곳의 텃세 부리는 청년들과 시비가 조금 ㅠㅠㅠ,이윽히 올라간 그당시의 사찰 그리고 웅장한나무들 추억을 기리며 지금도 생생한 친구들의 음성 귓가에 생생하다.동원님덕에 옛추억에 젖네요,,,감솨,,

    1. 37년전의 추억이면 정말 추억 중의 추억이네요.
      그때의 풍경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들러주신 거 고마워요.

  2. 동원님의 글과 사진은 마음에 평화를 갖다 줍니다.
    아무래도 노벨평화상은 김동원님이 타야겠습니다.
    그나저나 허락없이 쪼끔(?) 퍼~갑니다.
    평화를 널리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3. 안녕하세요? 이스트맨님.
    오토입니다.
    따님이 일본으로 유학 오시는군요.
    환율이 너무 높아서 부담이 크시겠지만, 좋은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충분히 준비해 두셨겠지만,
    일본어 공부는 가능한한 많이시켜서 보내시는게 좋을듯합니다.
    언제든지 제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81-90-2497-1851입니다.

    PS.요즘 우리나라 보면 아주 화가나서 미치겠습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용산참사도 그렇고..
    경제도 경제지만,
    나라가 완전 저능아 히틀러시대로 가는것 같네요…ㅜ.ㅜ
    우리나라 걱정에 요즘 잠을 못 이룰 정도에요..ㅠ.ㅠ

    1.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부탁도 드려야 할 듯하고…
      또 물어볼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현재는 게이오와 와세다에 합격한 상태이고,
      2월초에 다시 일본에 가서 한 곳 더 시험을 볼 예정입니다.
      연락드리고 부탁좀 드릴께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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