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2월 5일 목요일,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것은 이번까지 세번이다.
꼬박꼬박 졸업식장에 갔었고, 사진도 찍어두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있어 못오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사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랬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혼자 졸업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부모가 된 뒤로 딸아이 졸업식에는 빠지질 않았다.
다행히 그때마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2월 13일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대체로 무난했지만
몇 번의 문제도 있었다.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고,
남자 아이한테 맞아서 입술이 터져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을 넘기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2월 10일 중학교 졸업식에서

딸의 중학교 시절은 사실 화려했다.
공부를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보냈다는 얘기이다.
딸아이가 하고 싶어한 것 중에 공부는 없었다.
그렇지만 공부도 중간 이하로 떨어지진 않았다.
다니던 중학교와 함께 붙어있던 상고로 진학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가기가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딸은 중학교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고등학교는 졸업하게 되었다.
학교 졸업한 소감을 묻자 딸아이는 웃으며
“최종학력으로 고등학교까지는 채우게 되었네요”라고 말했다.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렸다.
고등학교를 안다닌 것이 아니라 못다닌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건 나중에 불편이 많이 따를 수 있는 일이었다.
딸은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고등학교를 계속 다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쨌거나 일본으로 유학가는데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유학을 결심한 뒤로,
학교 공부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유학을 준비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별로이다.
하지만 딸은 자신의 선택 끝에서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은 다닐만 할거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딸이 공부한 교실에서

딸아이가 3학년 때 다니면서 한해 동안 함께 한 의자와 책상.
하지만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냥 이름표만 붙어있을 뿐 자기 좋은 자리에 앉는다고 했다.
그런 자유분방함은 아주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딸이 다닌 학교의 운동장에서

졸업식 때 밀가루를 뿌리고 뒤집어쓰는 것은 여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아이키우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남의 아이들 언행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남의 아이와 내 아이가 구별이 없어질 때가 많다.
손가락질하는 그 자리에 얼마든지 우리 아이가 서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일도
사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못할 일이 아니다.
자동차 경주에선 우승한 뒤 샴페인을 뒤집어쓰는 것이 통상적이다.
어떤 골프 대회에선 우승하면 우승자를 코스에 있는 연못에 집어 던진다.
아무도 그런 우승의 의식을 탓하지 않는다.
소수의 학생이 누리고 싶어하는
일탈된 졸업의 의식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밀가루 해프닝을 바라보는 나는 좀 이율배반적이긴 하다.
우리 아이가 그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긴 했으니까.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집에서

딸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며 건넸던 꽃은
꽃병에 꽂혀 집안 가득 향기를 선물했다.
딸이 부쩍 큰 느낌이다.
축하 향기가 당분간 계속 갈 것 같다.

14 thoughts on “졸업

    1. 그녀는 머리자르고 수염깎으라고 난리였는데…
      딸은 머리는 관두고 수염만 깎고 오라고 해주었지요.
      덕분에 머리는 무사했습니다.
      이 나이에 그녀에게 두발검사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1. 위에서 오토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란 말이 진리라는걸 깨닫게 되는 듯 합니다. 저도 공부만 하면서 살았음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란걸 아니깐 더 간절하다는….ㅎㅎㅎ

    1. 배우는 거야 평생배우는 거니까 꼭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할거 같아요. 전 공부는 지겹고… 평생 사진찍고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어요.

  2.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 탓하지 말라…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남의 아이에게 손가락질 하다보면 그 중에 자기 아이도 있게된다는 말도
    참으로 맞는 말 같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아이들이고 자식이어야겠지요. 네.

    아직 부모가 되려면 한참 멀고도 멀었지만,
    이렇게 또 배우고 갑니다.
    최근에 올리신 글들은 부쩍이나 마음에 더 와닿네요^^;

    1. 지금 아이의 가장 걱정스러운 면이 나중에 그 아이에게서 가장 큰 가치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봐요. 구글의 재미난 로고를 그리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어렸을 때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는 공부시간에 그림 그리다가 걱정을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 그렸던 개구리며 꽃들이 구글 로고에서 뛰어다니고 있으니까요. 사실은 시험이 코앞에 있는데도 제가 미술 전람회 구경가자고 꼬시곤 했었어요. 하루 전람회 간다고 빠졌다고 떨어지면 그건 더 큰 문제 아니냐며 말이죠. 딸애가 그래도 시험이 눈앞인데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제 꼬임에 넘어가질 않더군요.

  3. 따님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네요..ㅠ.ㅠ
    근데 나이 들어서 공부를 해 보니까..
    어릴때는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공부가 지금은 너무 재밌고, 쉬운것 같아요..
    독학으로 음악을 해와서, 언제나 콤플렉스로 남아있었기에..
    지금 그 공부를 행복하게 하게된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냥 몸으로 알고 느낀것들이,
    이론적으로도 틀린게 아니었구나..하고 안도를 하기도하고…
    평생 공부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 고마워요.
      딸도 어릴 때 좀 놀다보니 나중에 공부에도 남다르게 재미를 붙인 것도 같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일종의 자기 확인이기도 하지요. 꼭 새롭게 배우는게 공부는 아닌게 맞는 듯 합니다.
      언두님하고 모였을 때 오토님 얘기도 나오곤 합니다. 웨이버님, 베더님이랑 모두 함께 한번 자리했으면 싶네요. 즉석에서 공연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생각만 해도 신납니다. 촬영은 물론 제 몫으로 넘겨주셔야 하겠지만요.
      저도 사진찍고 글쓰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아주 어려운 거 같아요. 좋아하는 걸로 밥벌이 하면 좋아하는 게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4. 세 분 모두 축하들려요. 졸업도 앞으로의 진학도요.
    최종적으로 대학입시의 결과가 잘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따님을 잘
    키우셨다는 생각을 해요. 주변에 많은 부모들 보면서 ‘닮고싶다. 저렇게 키우고 싶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헌데 두 분은 항상 겸손하게 얘기하시지만 아주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방식에 충실하게 키우신 것 같아요.
    그래서 따님의 졸업과 진학이 온전히 따님 것이 아니라 세 분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심으로 축하축하 드립니다. 두 분을 거울 삼아서 저도 좋은 엄마되볼라구요.^^

    1. 저번에 남산으로 공연보러 갔을 때 따님 보니 딸을 정말 잘 키우신 것 같던데요, 뭘. 카메라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봤지요. 혼자서 햇볕과 그림자, 블록의 선들을 친구삼아 놀고 있더라구요. 그러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보통은 그런 경우에 심심해하기 마련이라서요. 세상 모든 것을 친구삼을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니 참 부럽더라구요. 우린 그렇게 키우진 못해서… 아이가 하나이고 아이키운 경험이 없다보니 아쉬운 점이 많아요. 벌써 잘 키우고 계세요.

  5. 우선 따님의 고등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세 번의 졸업식에서 엄마 아빠의 얼굴은 별로 변하지 않은 듯 싶네요.
    세 분의 모습이 참 다정해 보입니다.
    와세다 대학 합격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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