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저녁은 옵니다.
가령 언젠가 순천만에서 보았던 저녁은
뻘을 비우고 잠시 멀리 바다로 나갔던 물이 돌아올 때쯤
해변가로 나와 뻘로 돌아온 물을 마중하고 있었습니다.
뻘에 가득찬 바닷물의 잔잔한 물결이
무척이나 평화로웠습니다.
오늘 하루 걸음했던 바다 풍경이 어땠는지
소근소근 귓가에 털어놓는 듯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바다를 헤엄치고 다녔던 몸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저녁의 품에서 노근하게 내려앉고 있는 듯도 했습니다.
바닷물은 그렇게 얘기하다
저녁의 품에 기대어 곧 잠에 들 것입니다.
강은 바다처럼 들고나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아래로만 흘러갑니다.
대개의 강물은 바다까지 부지런히 걸음을 옮김니다.
하지만 북한강 줄기에는 댐들이 많아
그 걸음도 자주 끊기곤 합니다.
다행히 남한강 줄기에는 댐들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 다와서 팔당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댐이 나옵니다.
바로 팔당댐이죠.
아마 팔당댐에 이르렀을 때쯤이면
다리도 많이 저릴 것입니다.
그 아픈 다리를 누이고 싶을 때쯤
저녁이 마중을 나옵니다.
그리고 강물을 그 자리에 앉히고
산그림자를 손처럼 강물 속으로 내려
아픈 종아리를 부드럽게 주물러주죠.
강물이 다리를 저녁에 맡기고
처음 걸음을 떼었던 강원도 산골의 어느 계곡 얘기를
소근소근 풀어놓는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강물도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갈 듯 싶습니다.
저녁 풍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저녁이 우리들을 마중나오는 것은
어디서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4 thoughts on “순천만과 한강의 저녁”
저녁은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데
도시의 저녁은 자꾸 2차를 요구합니다.
사진 속 저녁은 순둥이 같이 착한데
제 주위로 온 저녁은
하루가 다르게 삐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서 물이 점점 메말라 가나 봅니다.
조기서도 한잔하고 싶기는 하던데요. ㅋ
아, 가슴이 맑은 강물에 씻기는 기분이에요.
저문 강물에 삽을 씻는다는 누군가의 시가 생각이 나네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이름이나 제목은 기억에 가물가물한데 어떤 장면과 일치되어 나타나는 글과 그림이 있어요. 남한강변의 서늘한 강물에 시름을 날려 보내렵니다.
그녀와 함께 차를 몰고 드라이브중이었는데
그녀가 소리를 쳤어요.
저녁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라고.
차를 세우고 길을 오르내리며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죠.
풍경이란 참 이상해서 이 사진을 찍은 지점을 조금 벗어나니까 좋은 느낌이 많이 떨어졌어요.
저녁이 마중을 나오는 자리가 있는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