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일요일 오후, 빛이 아주 좋았다.
바깥에서 돌아온 그녀가 어디든 나가보자고 했다.
빛이 좋은 날은 항상 그 화사한 빛을 무기 삼아 우리를 바깥으로 유혹한다.
그녀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대개는 그녀가 차를 몰고 나가는 관계로
외출이 아주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 때문에 그녀가 외출을 하자고 하면
넘어가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유혹이 강하다.
멀리는 못가고 몇 번 가면서 길을 익혀두었던 덕소로 갔다.
빨간 선은 덕소에서 새재고개를 넘어 운길산역까지 걸어간 길이다.
25리, 그러니까 10km 가량 되지 않을까 싶다.
걸을만한 길이다.
파란 선은 운길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팔당역을 거쳐 돌아온 길이다.
팔당대교를 넘어간 뒤 덕소로 가서
새재고개 들어가는 길목의 마을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돌아올 때 도심역에서 내린 그녀가 말했다.
무슨 두 역밖에 안왔는데 이렇게 기냐.
그녀에겐 좀 길다 싶었는가 보다.
고개를 조금 오르다
입고간 겉옷을 벗어야 했다.
목련의 봉우리가 완연해져 있었고,
성질급한 버드나무는 연두색을 슬쩍 내비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아이들이 얼음을 지쳤던 동네의 논엔 이제 빙판은 흔적도 없고
흔들거리는 봄바람에 맞추어 물결이 찰랑대고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길가의 쑥이었다.
푸르게 고개를 내밀고 봄을 맞고 있었다.
쑥쑥 자라면서 쑥쑥 봄을 불러올 것이다.
산의 초입부터 술을 마시는 일은 별로 없는데
이번에는 일단 동동주부터 한잔 걸쳤다.
그녀가 물었다.
왜 동동주 사진은 안찍고 내 사진만 찍어.
“오늘은 그대한테 먼저 취했잖아.”
으, 닭살멘트 하나 날렸더니 두드러기 돋는다.
알레르기성 질환을 스스로 불러들이다니,
이 어리석은 중생 같으니라구.
어쨌거나 동동주는 맛있었다.
동동주가 맛은 있었는데 값은 상당히 비쌌다.
뿌연 동동주가 아니라 약간 맑은 동동주였다.
술냄새 풍기면서 산길가는 사람들 싫어하는데
오늘 그 싫어하는 사람들 부류에 끼고 말았다.
찔레나무 아닐까 싶다.
겨울을 견딘 붉은 색이다.
대개의 열매는 새들에게 주거나 지상으로 돌려보냈지만
그 중의 하나를 아껴 가지끝에 남겨두었다.
오는 봄에게 줄 선물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나뭇가지는 알고 보면 물의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지만
유일하게 나뭇가지가 내준 물의 길에선
아래서 위로 흐른다.
그 물의 길목에 자리를 잡고 한껏 목을 축이며
갖가지 싹들이 고개를 내민다.
가느랗게 허공으로 난 물의 길 한가운데서
버들강아지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직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포근한 솜털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봄의 느낌이 완연했다.
진달래도 꽃몽오리를 잡았다.
곧 분홍의 꽃으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제는 꽃이 피기도 전에 꽃나무를 미리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알아보는 나무가 몇 개 되지는 않지만
자연과 알고 지내니
몽우리잡혔을 때부터 꽃을 반겨줄 수가 있는 기쁨이 있다.
계곡의 한켠에선 버들강아지가 봄을 부르고,
그 너머에선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계곡에 버티고 서서
겨울을 붙들고 있다.
봄을 부르는 버들강아지의 고개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겨울을 붙들고 있는 얼음의 손아귀에선 힘이 슬슬 빠지고 있었다.
키큰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찬 길이다.
소나무 향이 아주 진했다.
그녀가 그 향기로운 길을 걸어 고개를 올라온다.
생강나무의 가지에도 꽃몽오리가 잡혔다.
노란꽃을 피울 것이다.
잎은 사랑을 말할 것이다.
잎이 하트 모양이 많기 때문이다.
길은 그렇게 험하지 않다.
산길이라기보다 평지보다 약간 높낮이가 있는 고갯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자전거는 타고 내려갈 때가 제일 부럽다.
그녀가 앞서 올라간다.
항상 산에 갔을 때 앞서가면 꼭 넘어지곤 했었는데
이 날은 길이 험하지 않아서인지 넘어지진 않았다.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고 있다.
어찌보면 봄은 물이 오르는 계절이다.
겨울은 더이상 나무가 위로 물의 길을 내줄 수 없는 계절이다.
봄이 와서 나무마다 다시 위로 물의 길이 나고
그렇게 하여 물이 오르면서
버들강아지가 그 물의 비상을 타고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간만에 찾은 새재고개에서 봄은
물을 타고 날아오르는 버들강아지의 등을 타고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9 thoughts on “봄을 찾아서 – 덕소의 새재고개 넘어 운길산역까지 걷다 1”
그렇게 고개 너머로 오고 있었네요.
없는 이들에게는 봄이 오는 소식만큼 반가운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옛날 같으면 버들피리라도 만들었을 텐데 요즘 그러면 혼나죠.
아직은 물이 덜올라서 만들 수가 없어요.
푸른기가 완연하게 돌려면 좀더 기다려야할 듯 싶어요.
버들강아지도 봄을 노래하고 싶을테니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랑 헤어지고 저길 가셨군요.
전 나중에 혼자 버스타고 집에 갔는데.. 날씨 넘 좋다 그러면서.
닭살멘트덕에 맑은 동동주가 더 맛있었을듯.
버들가지는 말만 듣고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마지막사진 보니 매력있네요.
올봄엔 실물을 한번 볼 수 있으려나…
한번 넘어지시면 턱밑에 닫는 그곳의 한강변에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쯤 아마도 아주 많을 듯… 두 분이 한번 슬슬 걸어서 나가 보세요.
험, 요즘은 바깥에서 취하고, 집에 돌아오면 확 깹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다함께 수준을 높입시다.
닭살멘트 하나가 또 하나의 행복을 낳는군요.
간지러우면 어떻습니까~~~
마냥 부러울 사람 널렸는걸요! ^^;;
잠시 귀국하신다면서요.
어쨌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는 건 축하할 일이예요.
부러움이 아니라 눈총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 총맞은 것처럼이 눈총을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와 ~ 오는 봄이 모니터를 넘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저흰 강만 건너면 되는데, 지척에 두고도 여지 못해봤네요.
한 번 따라 걸어봐야겠어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바로 지척에 한강에 좋은 산에… 낙원이 따로없는 곳에 사세요.
원래 낙원에 살면 자주 가지 않게 되는 가봐요.
저도 영월 좋은데는 서울 온 뒤에 가게 되었으니까요.
오후 두 시쯤 집에서 나갔는데 해질 때쯤 운길산역으로 내려올 수 있었어요. 저희가 워낙 빈둥빈둥 걸어서 걸음이 아주 느려요. 다음에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