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피고 있다.
몽우리가 잡히고,
드디어 활짝피었다가 꽃을 거두기까지를 생각하면
꽃이 보내다 가는 일생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꽃을 바로 곁에 두지 못하는 우리는
꽃이 피었을 때만 눈을 마주하기 때문인지
봄꽃의 대부분이 순식간에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봄꽃들은 그렇게 느낌으로만 보면 휙휙 우리 곁을 스친다.
성남시 은행동에 있는 성남시립식물원,
달리 은행자연관찰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에서
그래도 열흘 정도의 시차를 두고 히어리를 두 번 마주할 수 있었다.
꽃만 마주하는 단 한 번의 인연으로 만나고 보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히어리는 우리 나무이다.
우리 나무라는 얘기의 말뜻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란 뜻이다.
영어 이름은 Korean Winter Hazel, 즉 한국 겨울 개암이라고 한다.
노란 꽃이 핀다.
몽우리도 노란 색이어서 꽃이 어떤 색일지 짐작할 수 있다.
한 몽우리가 이쪽을 기웃거리고,
또 한 몽우리가 저쪽을 기웃거리며,
꽃을 내밀 자리를 찾고 있다.
몽우리는 입을 뾰족하게 앞으로 내밀고
물을 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몽우리에게 그 물은 물이 아니라
온기로 적당히 덥혀진 태양빛이 될 것이다.
봄엔 태양빛이 마치 물처럼 쏟아진다.
지난 해 피었다 진 꽃의 흔적도
가지의 여기저기에 그대로 남아있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이지만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지난 해의 자취를 보고 있노라면
꽃이 꽃을 낳고 졌다는 느낌이 든다.
꽃 몽우리 하나가 보자기를 살짝 풀어 속을 보여준다.
꽃잎은 노란데 속의 꽃술은 붉은 빛을 띄고 있다.
빳빳이 고개를 드는 꽃은 아니다.
차곡차곡 꽃잎을 저며
아래쪽으로 가지런하게 걸어둔 느낌이 나는 꽃이다.
드디어 꽃이 피었다.
히어리는 꽃을 아래로 늘어뜨린다.
가지의 여기저기에 꽃을 걸쳐놓고
봄을 맞는 셈이다.
꽃이 아래를 향한다고 다 느낌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대개는 꽃이 아래로 향하고 있으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히어리의 느낌은 그와는 다르다.
히어리는 꽃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을 아래로 걸어놓은 느낌이 난다.
가지에 세 개를 걸어놓으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때를 맞추어
꽃을 하나 만나는 것으로 아침을 함께 맞고,
또 꽃을 하나 만나는 것으로 점심을 지나치며,
마지막으로 또 꽃 하나를 만나는 것으로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다.
히어리의 꽃 세 개로 하루를 맞고 보낼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루를 맞고 보내면서
가운데서 만나고 싶다면
좀더 많은 꽃을 가지에 내건 히어리를 찾아내고
한 사람은 왼쪽에서, 한 사람은 오른쪽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저녁 때쯤 가운데의 꽃에서 만나 하루를 마무리하면 될 것이다.
히어리는 사랑이 조금조금씩 사이를 좁혀
결국은 하나로 만나게 해주는 꽃이 될 수도 있다.
깨알같이 많은 날들을 주렁주렁 내걸고
그날들의 기다림으로 누군가는 맞고 싶다면
꽃이 가득핀 히어리를 고르면 된다.
아직 잎은 보이질 않고,
새로핀 꽃들과 지난 해의 꽃이 남긴 철지난 자취만 보인다.
올해는 가을이 오면 노란색으로 물든다는 잎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노란 잎을 보내고 겨울을 넘겼지만
이제는 그 자취만 남은 지난 해의 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노란 잎의 가을을 추억하고 있다.
그 추억이 올해는 내가 처음보는 히어리의 가을이 될지도 모른다.
6 thoughts on “히어리 – 성남시립식물원에서”
털보부인.. 털보부인의 그 털보.. ㅋㅋㅋㅋ
한참 웃었네요.^^
히어리 보면 노란손수건 생각나지 않으세요?
실제로는 못보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꼭 그런느낌이더라구요.
저는 주말에 앞산에 갔다가 제비꽃이며 생강나무 신나게 보고 왔는데
제비꽃 옆에 예전에 보여주셨던 고깔제비 잎사귀처럼 보이는게 올라오더라구요.
잎사귀만 보면 하트모양처럼 생긴것이 맞는것 같은데
다시 가서 확인해야겠어요.^^
제비꽃이 종류가 아주 많아서
사진으로 그거 하나하나 모으는 것도 무지 재미나더라구요.
올해는 제비꽃 씨앗도 한번 찍어놓아야 겠어요.
어릴 때는 그 씨앗도 많이 훑어오곤 했었는데 말예요.
꽃이 져도 보고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꽃이 아닐까 싶어요.
전문가도 아닌데 이름 챙기는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구요.
그때그때 꽃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즐기면 되는 거 같아요.
여기 한 번 둘러보고 울남이 그랬대~요.
“누구야? 여기 추천한 사람…ㅡ.ㅡ;;”
날도 좀 춥고 활짝 핀 꽃도 없고 동행인도 그렇고.. 그래서 이 꽃도 못봤네요.
이름도 이쁘고 꽃몽오리도 이쁘고.
저는 열씨미 땅에 꽃힌 팻말 보며 5-6월에 오면 이쁘겠다 생각했답니다.
그리곤 주차장에서 할미꽃(그게 동강할미꽃이었나요?) 보고
“와~ 할미꽃이다” 소리 질렀구요.
울남은 “이게 할미꽃이야?” 라고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꽃이 추워서 일주일 사이에 다 도망을 갔나.
그래도 꽤많이 있던데… 미선나무, 수선화, 제비꽃, 매화, 산수유, 꽃다지, 돌단풍, 장수만리화(개나리 비슷한데 개나리는 아니더라구요) 등등… 관리사무소에서 루페도 빌려주는 거 같았어요. 그걸로 보면 작은 꽃들이 크게 보여서 느낌이 많이 달라요.
5, 6월에는 사람좀 몰릴 것 같더라구요. 우리 가던 날은 어떤 사람이 몰래 꽃을 캐가다가 들켜서 쫓겨나기도 했어요. 지난 해에도 어떤 사람이 남한산성의 얼레지 군락지에서 꽃하나 캤다가 온갖 수모를 다 겪는 걸 봤는데… 그래도 꽃도둑인데 좀 좋게 타이르지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나저나 전 식물원은 한 겨울에 가도 이것저것 볼 것이 많던데…
처음에 히어리라고 했을 때 나는 히어리가 순 한글인지 몰랐어.
영어 이름인가 그렇게 생각했지. 이름 참 예쁘지?^^
근데 왜 희지도 않은데 히어리라고 했지?
나중에 희게 되는 건가.
이름을 안다는 건 중요한 거 같기도 해.
이름을 모르면 보고도 못본 것처럼 지워져 버리곤 하는 거 같어.
모르면 뭔 이름이라도 붙여갖고 오던가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