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의 나라 – 뚝섬 서울숲

Photo by Kim Dong Won

아이는 두근거리는 사슴의 추억을 마음에 담고
아빠는 아이의 추억을 비디오에 담는다.


사람들은 농촌이나 시골하면 자연을 떠올리지만
20여년을 그곳에서 자란 나는
과연 시골이 그렇게 자연과 친화적인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호젓한 산골짜기에서 마주친 산토끼는
항상 나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놓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산책을 하고 있는데도
새들은 내가 인기척을 보이면
곧바로 그 즐겁던 노래를 접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렇게 자연은 항상 나를 경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자연과 아주 친하게 지낸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어릴 적 우리 집에서 키우던 까치 한마리가 내게 남겨준 것이다.
그 까치가 어떻게 우리 집에서 자라게 되었는지는 나도 기억이 흐릿하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머니가 그 까치를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키웠다고 했다.
어찌나 사람을 졸졸 따랐던지
결국은 어느 해 가을, 참깨를 털기 위해 휘두르던 도리깨에 맞아 죽고 말았다.
자연에서 자란 까치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사람 가까이 날아들었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자연에서 자란 것들은
자연을 편하게 생각하고 자연과 아주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그와 달리 사람의 품에서 자란 것들은 사람과 아주 친해진다.
그 까치가 그랬다.
시골 살 때, 자연은 그냥 자연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선 자연이 자연을 키웠다.
산토끼나 산돼지, 참새, 까치, 그 모두가 자연의 품에서 자랐다.
그 때문인지 인간 가까이 오려고 하질 않았다.
도시에 와보니 시골에 있을 때보다 꽃을 키우는 사람이 더 많고
또 애완 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훨씬 많다.
자연의 몫을 사람이 떠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도시에서 꽃과 동물들의 생명이 남아날리가 없을 것 같다.
도시를 살면 사람들은 암암리에 자연의 상실에 시달린다.
아마도 그 상실감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자연이 되고 싶은가 보다.
어제(6월 17일)는 서울숲에 있었다.
그곳에 사슴이 있었다.
자연이 키우던 사슴을 그곳에선 인간이 키우고 있었다.
도시에선 참 살기가 어렵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면서 또 자연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 살 때,
그냥 따로 떨어져 제 각각 살았던 것이 인간과 자연이었다면
이제 도시에선 인간을 고리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의 풍경을 엮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창살 속에 갇혀 있었더라면 측은함이 컸겠지만
그래도 넓은 공원을 뛰어다니며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슴을 보니
다소 마음의 위안이 되고 또 행복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엇, 지금 저 찍는 거예요?

Photo by Kim Dong Won

아이는 두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 가까이 가보고 싶다.
그러나 사슴은 여유롭다.
사슴에겐 이제 사람이 자연이 되었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풀이 그렇게도 맛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거기 뭐가 있는데?

Photo by Kim Dong Won

조심스럽게 아빠와 딸이 사슴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기분이 좋은지 사슴은 못이기는 척 한참 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슴은 그 모습이 예쁘면서 또 정갈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엔 아마 사슴도 이곳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생긴 자태로 보면
그냥 조용한 숲속을 좋아하는 동물같다.
그래서인지 사슴이 물가로 나오니
물도 조용히 숨소리를 죽이는 것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렇게 코앞에서 사슴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사슴이 내 가슴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것 같다.
요런 느낌 때문에
도시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연이 되고 싶은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실 시골의 자연에서도 사슴이 이런 여유를 즐기겠지만
사슴의 여유를 이렇게 눈앞에서 접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사슴은 귀와 눈이 아주 예민하여
우리의 걸음이 가까이 가려고 하면 벌써 그 여유를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면서 사슴도 귀를 많이 닫아 걸었나 보다.
그리고 곁을 지나는 사람들도 조용히 소리를 죽이며 많이들 조심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생각해주며 함께 살아가는 게 도시의 삶이 아닌가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음, 역시 아침이든 저녁이든
자연이 마련해주는 싱그런 식사가 최고야.
난 이런 식사는 냄새만 맡아도 좋더라.

Photo by Kim Dong Won

아니, 뭘 그렇게 보슈?
실례좀 하는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는 건 실례아니우?

Photo by Kim Dong Won

흠흠흠,
느껴지니?
땅속에서 움틀대고 있는 새싹의 기운이?

7 thoughts on “사슴의 나라 – 뚝섬 서울숲

  1. 등의 무늬가 있는게 꽃사슴이죠?
    꼬마아이는 사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뒷짐진 모습이 참 귀엽네요.^^

  2. 17일이면 토요일, 저랑 한강[풍납동]쯤에서 만나뵈었던 날이네요..^^

    오랜만에 뵈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말로만 듣던 서울 숲에 저렇게 사슴들이 한가하게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있군요.
    사슴이 도망가지 안고 촬영에 임한것은 사진 촬영하시는 분이 워낙 사슴같아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활기찬 한 주일 되시길 바랍니다.

    강 영석

  3. 저 꼬마 아이는 몇살쯤 되었을까…

    뒷짐진 모습이 아이스럽지 않으면서 고녁석 참 귀엽네… 하게 만들고,
    비록 얼굴은 자세히 찍히진 않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지녔을 것 같고,
    나들이 의상도 꽤나 신경써서 입혀보낸 엄마의 감각까지 돋보이는 아이…

    참 예쁘네…

    1. 나도 얼굴은 잘 못보았는데
      세상의 딸들은 어릴 때는 다 예쁘지뭐.
      우리 딸 손잡고 어린이 대공원 주구장창 드나들던 시절이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참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내 등에 업혀가던 우리 딸의 추억이 나는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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