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또 열며 – 경복궁에서

어제(6월 22일) 일이 있어 광화문에 나갔다가
갑자기 동한 마음의 움직임을 그대로 놔두었더니
나의 발걸음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 간만에 경복궁을 돌아보았다.
설날 때 몇번 찾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것도 지금 들추어보면 상당히 빛이 바랬을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
예전에도 경복궁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많은 건물들이 새롭게 복원되어 있었다.
새로 지으면 원래 그때가 출발점이 되는데
이건 새로 지으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독특한 경우이다.
궁을 돌아보면서 건물보다 문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문을 열며 속으로 속으로 들어갔다.

Photo by Kim Dong Won

광화문.
옛날엔 참 육중한 벽이 문의 좌우를 가로막고 있었고,
또 성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임금이 주인이었던 시절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 시대가 가고 난 뒤에도
성문은 오래 동안 그대로 닫혀 있었다.
문의 역할이 막아두는데 있지 않고
사람을 맞아들이는데 있다면
이제야 비로소 문이 제 역활을 찾은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지금의 광화문은 항상 열려있다.
병정들이 지키고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는 사람을 반겨주기 위해서이다.

Photo by Kim Dong Won

흥례문.
경복궁의 두번째 정문.

Photo by Kim Dong Won

문은 밑에서 올려다 보면 날아오를 듯한 형상이다.
문을 열어놓았을 때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Photo by Kim Dong Won

근정문.
경복궁의 세번째 정문.

Photo by Kim Dong Won

왜 이렇게 많은 문을 둔 것일까.
문을 하나 지날 때마다
궁으로의 걸음이 훨씬 더 깊어지는 느낌이다.
바로 그 깊이를 위하여
계속 이렇게 문을 둔 것이 아닐까.
세번째 문 앞에 가까이 갔을 때,
상당히 깊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근정전.
세 개의 문을 통과하여 얻는 깊이의 그 한가운데.

Photo by Kim Dong Won

궁으로 들어오니 이제 작은 문들도 눈에 띄었다.
사각형의 문보다는 아치형으로 머릿 부분을 장식한 문이
한층 정겨워보인다.
정겨움은 곡선에서 나오는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향원정.
향원정은 그냥 보지 않고 아예 한바퀴를 돌아볼 생각.
우선 뒤쪽에서 나뭇잎 사이로 엿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약간 발걸음을 옮기자
나뭇잎들이 시야를 비켜준다.

Photo by Kim Dong Won

날 더운 오후엔
그림자를 물속에 담그고 있어도
시원하지 않을까.

Photo by Kim Dong Won

연못가의 나무가 길게
고개를 뻗는다.
연못의 한가운데 놓인 정자에서
무슨 향기라도 피어나고 있다는 듯이.

Photo by Kim Dong Won

물과 나무, 연못, 연꽃, 그리고 하늘.
정자가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이 헷갈렸다.
아마 정자도 주변의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그 아름다움이 반감했을 것이고,
주변도 정자가 없었다면 상당히 밋밋했을 것이다.
향원정은 그러고보면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곳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미산.
작은 산이다.
아마도 우리네 조상들에겐
작은 산을 정원으로 여겼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문을 다 열어놓자
바람이 이 끝에서 저 끝을 하나 거침없이 지나간다.
여름이면 문은 우리가 출입하는 문이 아니라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이다.
문을 열어 바람을 맞고
문을 열어 바람을 내보낸다.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우리의 여름은 그만큼 시원해진다.
바람은 시원한 손님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소실점의 끝까지 가면
내가 하나의 꼭지점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Photo by Kim Dong Won

경회루.
이제 경복궁을 한바퀴 돌아보느라
다리도 아프실테니
여기서 한참 쉬었다 가시길.

2 thoughts on “문을 열고 또 열며 – 경복궁에서

  1. 제프블레터의 나라 스위스,
    우리는 실력으로 진 것이 아니라 피파의 권력과 유럽의 텃세에 졌습니다.
    참 속상하고 기분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 열심히 잘 해줬고 최선을 다해 잘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경복궁 궁궐이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있는 것처럼 모처럼 국운이 상승하려는 기운이 감지됐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상쾌하고 청명한 옛 조상들의 숨결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사진으로 마음을 달래보는 주말 오전입니다.

    좋은 주말, 휴일되시길 바랍니다.

    1. 한 방송사는 “축구… 오늘… 죽었다”는 문구를 내보냈다는 군요. 편파판정에 대한 항의로.
      또 기회가 있겠죠. 월드컵은 계속되는 거니까요.
      바람을 가르면서 좋은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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