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후반기부터 사진을 RAW로 찍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JPG로 찍었다.
흔히 사진찍는 사람들은
RAW 파일은 필름,
JPG는 현상된 사진으로 비유를 한다.
일반인들은 많이 헷갈릴 수 있다.
RAW나 JPG나 모두 컴퓨터 파일이어서 잘 구별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필름은 현상을 해야 사진을 볼 수 있지만
현상되어 나온 사진은 곧바로 볼 수가 있다.
RAW는 말하자면 현상 과정을 거쳐야 하는 원본 상태의 데이터이며,
JPG는 그러한 현상 과정을 이미 거친 데이터이다.
JPG는 이미 현상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수정을 하는데 많은 한계가 따른다.
RAW는 아직 현상되지 않은 상태의 원본 데이터이기 때문에
엄청난 유연성을 선물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그 안에
RAW 데이터를 JPG로 저장해주는 디지털 변환기,
다시 말하여 필름의 경우로 비유를 삼자면 현상기가 이미 들어있다.
필름 카메라는 우리에게 필름밖에 내주지 않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카메라 주인의 요청에 따라 필름과 사진을 동시에 내준다.
난 그동안 필름은 받지 않고 사진만 받아서 썼던 셈이다.
내가 RAW로 전환을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점이 작용을 했다.
그동안은 JPG에 그럭저럭 만족을 했는데
자꾸만 JPG 사진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한 예가 강원도 정선의 몰운대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 날은 구름이 무척이나 좋았는데 저녁 무렵의 그 좋았던 구름이
진한 초록의 산과 대비가 되면서 그만 모두 허옇게 날아가 버렸다.
카메라가 좋으면 그런 경우에도 하늘을 어느 정도 살려주는데
내 카메라는 이제 많이 오래된 옛기종이라 그 정도는 못된다.
그동안 RAW로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JPG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사진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찍는 나의 습관 때문이기도 했다.
RAW로 찍으면 내가 가진 2GB의 컴팩트플래시 카드로는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컴팩트플래시 카드의 가격이 많이 내렸다.
난 4GB의 컴팩트플래시 카드를 장만하고
드디어 모든 사진을 RAW로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감하게 되었다.
디지털 사진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0월 11일 서울 대학로의 낙산에서
둘 모두 똑같은 사진이다.
하지만 왼쪽은 JPG 사진이며,
오른쪽은 RAW 파일에서 조정 과정을 거친 사진이다.
각각의 사진에서 오른쪽 하늘이 밝다.
그 방향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의 사진에선 그 오른쪽 하늘이 거의 허옇게 날아가 버렸다.
JPG 사진에선 이렇게 허옇게 날아간 부분을 복원하는데 무리가 따른다.
RAW 파일의 사진은 그 부분을 섬세하게 살려낸다.
가끔 RAW 파일로 사진을 조정하고 있을 때면 놀랍기까지 하다.
노출값을 조정하면 하얗게 뭉개진 하늘에서
구름과 푸른 하늘이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세계에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허옇게 뭉개진 하늘 뒤편에 멋진 구름이 숨어 있을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0월 6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이 둘 또한 똑같은 사진이다.
마찬가지로 왼쪽은 JPG 사진이며,
오른쪽은 RAW 파일에서 조정 과정을 거쳐 밝기를 극대로 높인 경우이다.
왼쪽 JPG 사진도 원래 상태는 아니다.
검게 뭉개진 아래쪽 부분을 최대한 밝게 조정을 해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밝게 조정을 해도 한계가 있다.
RAW 파일을 조정하여 얻어진 오른쪽 사진에선
아래쪽으로 펼쳐진 것이 잔디밭이란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디지털의 세계에선 검게 뭉개진 암흑 속에서 푸른 숲을 불러낼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 사진은 찍은 날짜와 시간을 분초까지 남겨주며,
심지어 사용했던 카메라 기종과 렌즈까지도 빠짐없이 모두 기록해준다.
물론 알아서 들여다 볼 때까지는 절대로 스스로 보여주는 법이 없다.
거의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진만 달랑 내민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보이는 것의 이면에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
2 thoughts on “디지털 사진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육중한 셔터소리가 나는 롤라이 옆에서 디카를 들고 있으면 못마땅한 표정이 보이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애들은 전화기를 그리라면 휴대폰을 그린다고 하데요. 유선전화기라는 걸 모르니까요. 디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사진작가가 필카 사촌이 디카가 아니라 아예 다른 종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폰카도 디카로 쳐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필카보다 폰카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럼블 피시의 노래 중에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가 있어요. 중간에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어쩌구저쩌구 하는 가사가 나와요. 그 노래를 들은 한 비평가가 민들레꽃이 되어 날아가면 몰라도 어떻게 먼지가 되어 날아가서 사랑을 할 수 있겠냐고 도대체 요즘 노래 가사는 알 수가 없다면서도 요즘 애들이 민들레꽃과 그 씨앗을 본 적이 없을 터이니 또 이해가 가기도 한다고 해놓았더군요. 민들레꽃의 사랑은 옛날 구식이 되고, 이제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 사랑하는 시대예요. 아이들 이해하기가 많이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