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그림을 그려놓은 경우는
홍대앞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홍대앞의 그래피티,
그러니까 스프레이로 벽에 그려놓은 그림에선
다른 곳과 달리 자유의 냄새가 난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다른 곳의 골목 그림에서는
짜여진 기획 아래 진행되는 규격의 답답함 같은 것이 미세하게 감지되곤 한다.
하지만 홍대앞의 그래피티에선
그림을 어떤 규격 속에 가두려고 하는 그런 답답함이 없다.
홍대앞의 그래피티는 온통 자유이다.
7월 25일, 홍대앞을 어슬렁거리다
한 골목에서 그래피티 예술을 펼치고 있는 외국인을 보았다.
골목의 낡은 집 한채,
사람들이 스치는 제 몸의 바깥쪽 거의 모두를 캔버스로 내주고 있다.
지나가던 한 남녀가 홍대 문화에 적응이 안되는지 한마디 한다.
“이렇게 남의 벽에 마구 그려도 되는 거야?”
하긴 나도 궁금하긴 하다.
이렇게 마구 그려도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 말 안하는지.
하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욕 먹을지도 모를 일이
홍대앞에선 버젓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홍대 문화가 아닐까.
온몸이 콧구멍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숨쉬기 위해서 콧구멍 하나는 뚫려 있어야 한다.
홍대앞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가끔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자유가 숨쉬는 숨구멍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어느 낡은 집이 내준 그 숨구멍에서
한 외국인이 스프레이로 그림을 호흡하고 있었다.
그가 그림을 호흡하자 우리도 그림을 숨쉴 수 있었다.
집의 담벼락을 그림의 숨구멍으로 내주고
그곳에서 그림을 호흡하는 곳, 그곳이 홍대앞이다.
담벼락 아래쪽으로 벗어놓은 베낭으로 미루어보건데
아무래도 여행객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러다 이 골목을 지나면서 우리가 벽을 끼고 지나치는 길에서
그는 커다란 캔버스를 보았을 것이다.
그 유혹을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은 주머니를 털어
근처의 화방에 들리고 스프레이를 잔뜩 샀나보다.
지나던 연인들이 한참을 서서 구경한다.
나도 사진을 찍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웃어준다.
나도 웃었다.
서로 각자 웃는 것 같지만
그 순간 웃음을 주고 받는다.
그냥 곁에 서 있는 사람과는 그런 소통이 잘 안되는데
그가 그림을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두자
그와 스스럼없이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그는 그리고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를 웃음으로 이어주는 소통로이기도 했다.
그는 골목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골목에 그림을 채운다.
텅비어 있는 골목에 그림이 가득했다.
그리다가 잠시 그림과 사이를 두고
그림을 살피기도 한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는
가까이 가서 속삭여야 한다.
사랑도 그렇지 않던가.
가끔 둘이 그려가는 사랑의 그림을 거리를 두고 살펴보아야 하지만
정작 사랑을 그릴 때는 서로 껴안고 포옹해야 한다.
그도 그림을 그릴 때는 입이라도 맞추듯이
스프레이를 벽 가까이 가져간다.
스프레이의 대화는 단순하다.
그저 칙칙거리기밖에 못한다.
그래도 항상 그 대화에 색이 실린다.
난 궁금해진다.
당신은 왜 하필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가끔 우리는 있던 곳을 탈출하고 싶은 법이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캔버스는 그림들의 안온한 안식처같지만
그림들도 종종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한다.
안온한 휴식처는 시간이 흐르면서
따분하고 지루한 자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난 캔버스의 그림 속에서 그 지루함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색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 나랑함께 세상으로 도망가자.
그리고는 색들과 함께 세상을 떠돌다
오늘은 한국의 이 골목에서 잠시 거처를 정하기로 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알아서 챙겨듣는 내 버릇은 여전했다.
난 사실, 많은 구석이 구식이라
남자들의 귀걸이에는 잘 적응이 안된다.
말꼬랑지 머리도 그 중의 하나이다.
물론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귀걸이를 한 남자들이 몇된다.
대부분 홍대앞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과는 잘 어울리며 살고 있다.
내가 적응을 못해서 그렇지
잘 적응한 남들과는 원활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홍대앞에서 마주친 이 그래피티 예술가는
귀걸이가 아니라 코걸이를 하고 있다.
코의 한쪽 귀퉁이에서 작은 코걸이가 반짝거리고 있다.
그는 귀걸이가 귀에 묶여있으면
그것도 따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의 손끝에서 스프레이 속에 눌러둔 색들이 뛰쳐나가
그림의 호흡이 되고 있었다.
색들이 빨갛게 파랗게 호흡을 하며
그림이 되어 자리를 잡고 골목을 채워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의 그림을 호흡했다.
2 thoughts on “홍대앞의 그래피티 예술가”
한국까지 그래피티를 하고, 나름 ‘자유로운’ 사람이네요.
제가 스페인 같은데서 먹으로 벽에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요즘 엄마 일을 돕느라 홈페이지를 만들려고하는데,
생각보다 비싸네요. 그렇다고 딱히 마음에 들게 디자인 하는 사람도 없고.
기술이 없다는 게 참 한스러울 때가 많아요.
한국은 비 때문에 또 난리가 나고, 다시 무더위가 시작되나요?
여긴 가뭄과 함께 찾아온 무더위를 이틀간 내린 비가 다 식혀주고
기온이 36도에서 20도로 뚝 떨어져버렸죠.
비도, 더위도 조심하시고, 즐거운 저녁 보내시길요.
예술이 곧 자유니까요.
언젠가 충남 공주에 갔을 때도 그곳에서 설치예술을 하고 있는 외국인을 봤었죠.
정님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