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과 서운함 사이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물었다.
“동원이형,
동원이형은 왜 집에 들어오면
양말을 벗질 않고 중간쯤 걸쳐가지고 돌아다녀?”
(아무 말도 안해서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걸 알고 있었다니…)

내가 답했다.
“집안에서 양말신고 있으면 답답하니까 그렇지.”

그녀가 다시 묻는다.
“그럼 다 벗으면 될거 아냐.”

다시 또 내가 답했다.
“다 벗으면 서운하잖아.”

난 양말에 관해선 답답함과 서운함의 사이에 서 있다.
답답함은 밀쳐내고 서운함은 끌어당긴다.
바깥에서 돌아온 나는 양말을 밀고 당기고 있다.

6 thoughts on “답답함과 서운함 사이

  1. 역시 다 벗은 것 보다 벗을랑 말랑 할 때가 더 섹쉬하다는 걸 아시네요.
    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 아예 발목을 접어 신고 다닙니다.
    복숭아 뼈가 보일랑 말랑 하게요…

  2. 제가 아는 분 중에 양말을 벗은 것도 아니고 신은 것도 아닌 딱 저 정도로 걸치고 운전하시는 분이 계세요. 여자 분인데…. 저희 시누이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구요.ㅋㅋㅋ

    딱 느낌이 와요. 답답함과 서운함 내지는 허전함 사이.

    1. 이게요, 원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누가 물어보면 그때 즉흥적으로 대답을 찾는 거 같어요.
      옛날에 그런 여자가 있었거든요.
      원피스에도 허리띠가 있어서
      흘러내리지도 않는데 허리띠는 왜 있냐고 했더니
      그 여자가 하는 말이,
      허리가 어딘지 가르쳐 줄려고.
      알고 보면 질문이 대답을 만든다고나 할까.
      어제 책을 읽고 있는데 곤충은 왜 작은가라는 질문이 있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질문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곤충들은 다 작은 데 왜 작은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용을 읽어보니 절지 동물이나 곤충 가운데 허파가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허파를 대신하는 호흡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허파 이외에는 원활한 산소 공급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허파가 없는 절지 동물이나 곤충은 산소 공급이 원할치 않아서 큰 덩치의 몸을 가질 수가 없다더군요.
      곤충은 왜 작은가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에도 답이 있었던 거지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는 건 괜찮은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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