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 속을 들여다보다

꽃은 대체로 색이 곱다.
그 고운 색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이는 꽃들이 그 색을 땅 속에서 길어올린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태양볕이 보기에는 투명해도
그 빛속에 온갖 색을 다 갖추고 있으며,
태양볕이 땅을 똑똑 두드리면 그 소리에 꽃의 씨앗이 싹을 틔워 고개를 내밀고,
그러면 그때 싹마다 각각의 색을 쥐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꽃의 색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건
올해는 이상하게 꽃의 색이 다른 해와 달리 유달리 곱고 예뻤다.
꽃이 갖고 있던 원색을 올해 모두 일제히 내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선명한 원색의 꽃들은 자주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Photo by Kim Dong Won

꽃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았다.
꽃의 한가운데는 꽃잎의 샘이다.
그 곳에서 천천히 꽃잎이 솟는다.
샘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면 아직 그곳은 붉지 않다.
하지만 샘에서 솟은 꽃잎은 완연한 붉은 색으로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간다.
색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세상으로 향할 때 제 안에서 익혀가는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찔레꽃은 여리다.
그 순은 더 여리다.
어릴 때 종종 그 여린 순을 따먹곤 했었다.
순은 여리지만 그 속엔 통통하게 물이 올라있다.
순을 베어물면 입속에서 푸른 물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찔레꽃은 찔레나무가
톡톡 터뜨리는 투명하고 하얀 물장난이다.

Photo by Kim Dong Won

황매화는 줄기를 아래쪽으로 늘어뜨려
꽃을 허공에 걸어놓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진달래는 그 느낌이 슬프다.
아마도 자신을 버리고 가는 님의 발 앞에
진달래를 깔아주겠다고 했던 김소월의 본 뜻도
진달래에서 원천적인 슬픔의 색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김소월의 진달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 주어야할 때,
그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슴아픈 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진달래와 모양이 비슷하긴 해도
철쭉은 그 느낌이 슬프지 않다.
색감이 좀더 진하고 선명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가장 진한 슬픔은
오히려 그 색이 옅은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뭇가지가 팔을 내밀어 그 끝에서 작은 손을 펼쳤을 때,
흰꽃이 한움큼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속을 들여다보면 붉은 색도 보이지만
꽃은 흰색으로 보였다.
내 안의 열정은 붉어도
세상은 흰색의 순수로 물들이고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엉겅퀴는 대궁과 이파리가 온통 가시이다.
그러나 그 끝의 꽃은 곱기 이를데 없다.
그러니까 그 가시는 고약한 심보가 아니라
아무도 손못대게 하고
그 누군가에게만 꽃을 받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대궁이 가늘면 불안하다.
그러나 꽃은 그 불안에도 불구하고 가는 대궁을 길게 뻗어
당신에게 꽃을 내민다.
그러다 허리가 꺾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에게 꽃을 주고야 말겠다는 듯이.
그러니 어찌 꽃에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Photo by Kim Dong Won

꽃이 꽃잎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안에 꽃의 마음이 있다.
꽃잎은 꽃의 마음을 받쳐든 꽃의 손이다.
제 손으로 제 마음을 받쳐들 수 있는 것은 꽃밖에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꽃잎은 피어나면서 둥근 원을 그렸다.
그 안에 담긴 꽃의 마음도 원을 그렸다.
마음의 호수에 사랑이 날아들고
그게 둥글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 파장이 꽃이 된게 분명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배꽃이 나무의 허리춤에 피었다.
가지끝이 아니니 아마도 열매를 맺긴 어려울 것이다.
가지끝에 핀 배꽃의 꿈이 열매라면
허리춤에 핀 배꽃의 꿈은 함께 하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꽃잎은 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꽃잎을 뻗으면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거리에 누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장미는 당신을 향한 붉은 마음을
소중히 싸두었다가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미의 속에 있을 때는 분명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었는데
풀어놓으면 당신의 눈엔 꽃잎만 보인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정말 속상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 꽃잎을 펼쳐놓았을 때,
그 텅빈 붉은 꽃잎에서 당신이 장미의 마음을 볼 때가 있다.
장미는 그 순간을 위하여 해마다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5 thoughts on “꽃, 그 속을 들여다보다

  1. “꽃잎은 피어나면서 둥근 원을 그렸다.
    그 안에 담긴 꽃의 마음도 원을 그렸다.
    마음의 호수에 사랑이 날아들고
    그게 둥글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 파장이 꽃이 된게 분명하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 입니다.
    그 꽃 비슷한 꽃이 화면에 있기에 저희 컴 바탕화면에 꽂습니다.
    오늘 마포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자격증 시험보고 돌아온 아내가 옆에서 작품 평을 하는군요.
    김작가님 작품, 역쉬~ 대단하다구요~ ^^

    1. 이번 꽃들은 올해 상반기에 찍은 것 가운데서 아무래도 잘 찍은 것들만 고른 것이라…
      맨위부터 일산호수공원, 또 일산호수공원, 창덕궁, 창덕궁, 소백산, 창경궁, 창경궁, 구룡령, 서울숲, 서울숲, 서울숲, 김포고양2리, 강화 석모도, 그리고 우리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들이네요.
      그렇게 보니 여러 군데서도 찍었네요.

  2. 다른 꽃들도 예쁘지만 마지막 장미 사진 너무 예쁘네요.
    전체적으로 블러느낌이 나서인가… 아리아리해보이는 것이
    뭔가 터트려줄 것만같아 정지된 사진인데도
    계속 보고 있게 되요.
    디자인할때 이미지 소스로 사용하고 싶어지기도 하네요.

    1. 감사합니다. 작년에 주셨던 동백꽃 사진도 잘 사용을 했었더랬는데…
      안타깝게도 시안경쟁에서 밀려서 인쇄물로 나오지는 못했었지만요.

      이번에 들어가는 뮤지컬 작업이 있는데, 웬지 거기에 어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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