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앞: 사실 영화관 앞이라는 말을 쓰기가 쑥쓰럽다. 삼성역에서 내려 거의 성전에 진배없는 거대한 건물 속으로 한참을 들어간 뒤에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도착했으니 그건 영화관 앞이 아니라 영화관 속이다. 그런데다 지하철을 타고 갔으니 영화관이 보이지도 않는 아득한 거리에서 이미 속을 들어간 셈이다. 그렇게 속으로 들어가 속에 도착했는데도 속속들이 그곳을 알게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디 우주에서 길을 잃고 미래 도시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영화 보기 전: 입장권을 가진 커플들에게 사주와 궁합을 공짜로 봐준단다. 그래서 봤다. 내 유통기한이 “내일 모레”로 끝난다고 나올까봐 은근히 걱정했는데 점쟁이는 아직 많이 남았다고 했다. 나보고 올 후반부터 그녀가 잘 나가니까 꼬리내리고 납작엎드려서 빌붙어 살라고 했다. 또 나보고 머리가 아주 좋다고 하길레 “샴프는 항상 좋은 것을 쓰고 있으며 린스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물’이고 그녀는 ‘불’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린 “물불을 안가리는 커플”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영화: 제목은 <내 남자의 유통기한>. 그녀가 보고 싶어 했다. 원제는 <어부와 그의 아내>. 독일식 식사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 접시를 수직으로 세워서 깨끗이 핥아먹는 것이 독일식 식사법이다. 독일에 가면 꼭 써먹어 봐야지.
영화: 사랑은 가난 속에 머문다. 다시 말하여 부자에겐 사랑의 몫이 없다. 부자의 몫은 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은 싫어하고 부자들을 좋아하나. 하지만 개중에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부자들 중에도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러면 사랑도, 돈도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만약 그런 부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다. 좌우지간 마음이든 무엇이든 가난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난하면 사랑이 거저 주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난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돈도 없는데 사랑마저 없다면 너무 비참하다. 그러니 가난할 때는 더더욱 사랑해야 한다. 가난한 연인들에게 사랑은 일종의 의무이다. 그래서 가난한 애들이 가난 때문에 사랑을 깨버리면 더 신경질난다. 생각해보면 차몰고 둘이 떠났던 여행보다 지금은 없어진 용산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떠났던 어느 해 여름의 가난했던 여행이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기억을 들추어 들여다보면 지금도 우리의 사랑이 보인다. 그 사랑의 유통기한으로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계획이 지나치면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그 계획 앞에 포박당한다. 미래가 꽁꽁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냥 오늘 주어진 일이나 하면서 서로에게 눈을 맞추고 홀린 듯이 사는게 사랑이다. 사랑할 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계획은 돈을 벌려고 할 때나 세우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살다보면 둘이 사랑하는지 흐릿해진다. 상대방이 채찍을 들고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다그쳐도 그 말을 자신있게 할 수가 없다. 왜 사랑은 같이 살면서 흐릿해지는 것일까. 같이 살다보면 사는게 어렵고, 그 삶의 어려움이 사랑의 지우개가 되곤 한다. 그러다 너무 힘들다 싶으면 갈라서고 만다. 같이 살기 전의 사랑은 같이 살기 위한 사랑이지만 같이 살게된 이후의 사랑은 둘이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사랑이다. 둘이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같이 사는 사랑은 물건너 간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위대한 거다. 기억만으로도 곧장 복원이 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코엑스의 1층에 있는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에서 맥주마셨다. 음악도 생이고, 분위기 좋았다. 아는 노래가 많이 나왔다. 함께 영화본 홍순일은 “Stumblin’ in”이 나올 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알려주었다. 싱어의 목소리도 수지 쿼트로와 비슷했다. 흥겹게 따라불렀다. 술에 취하고 나니 속은 내가 울렁거리는데 그 거대한 건물도 속이 안좋은지 나를 바깥으로 토해냈다. 좀 많이 마셨는지 혓바닥이 약간 꼬이고 있었고, 발음도 받침붙은 말들이 받침을 슬슬 흘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 누군가 거리를 청소할 때, 내가 흘린 받침들이 그에게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거는 것은 아닐까.
뒤늦은 의문: 남자는 왜 그렇게 여자가 “사랑해”라고 말해 달라고 애걸하다 시피 했는데 그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혹시 여자가 욕조가 있는 집을 마련하여 드디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 그때까지 자신의 품에 있던 여자를 욕조에게 빼았겼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가 꿈꾸는 정원이 있는 보다 큰 집과 그것을 위한 미래 계획이 그들의 사랑까지도 밀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6 thoughts on “사랑은 가난 속에 있는 것이다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처음 만나서 정말 사랑이란 이렇게 핑크빛이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게도 같은것이구나..했어요.
제가 사랑에 빠진 시기에 저랑 같이 근무하는 후배도 사랑에 빠져있었는데
얘길나누다보면 어찌 그리도 마음이 같은지 웃곤했다니까요.^^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하고 결혼했죠.
너무 사랑해서 처음 몇년간은 집착에 집착을 더해가며 의부증아냐?란 말까지도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게 집착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하나 하나 포기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어딜가도 마음편히 보내주고.^^
요즘은 오히려 더 자주 같이 다니게되고 대화를 해도 마음이 잘맞고 그래서
참 좋아요. 가장 편한 친구같아요.^^
부럽사와요. 저는 그녀가 편한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무래도 나의 아내가 분명한거 같아요.
보통 사랑의 유통기간은3년이라고하네요. 그다음은 그추억을 꺼내어 반추하는 삶인것같아요. 그리고는 관심이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로 향하게되고…,
참 제가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라이브로들으니 너무좋더라고요.
영화도,그이후자리도 모두 기억에남을것같아요.
아니, 그 노래부르던 금발머리는 왜 그렇게 뇌살적으로 생긴거예요, 그래. 여자의 미모를 경계해야해. 예쁘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니까. 에잇, 나쁜 것들 같으니라구. 머리 속에서 생각을 뿌리채 뽑아 버리다니.
도리스 되리는 언제 우리집에 다녀간겨^^
사랑이란 바다가 보이는 사람의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사람의 텐트로 가서 자는 것이다.
제일로 좋은 경우: 호텔에 사랑도 있는 경우.
제일로 골치아픈 경우: 호텔에는 샤워시설만 있고 사랑은 없는데 텐트 속엔 샤워 시설은 없어도 사랑은 있을 때. 샤워를 안하고 살 수도 없고, 사랑없이 샤워만 하고 사는 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