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일본으로 보낸 8월 25일,
그녀와 나는 딸의 출국을 보고난 뒤
곧장 그녀의 합정동 사무실로 돌아왔다.
딸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의 일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일이 밀려 있어 집으로 가야할 형편이었으나
하루 저녁은 홍대앞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녀의 사무실로 함께 돌아왔다.
그녀는 사무실로 들어가 일을 하고
나는 홍대앞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거의 저녁마다 그곳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룹,
사운드박스를 다시 만났다.
지난 번 처음 만났을 때는 마지막 부분만 약간 맛보기로 스쳤지만
이번에는 준비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풀타임으로 함께 했다.
이제 막 공연 준비중이다.
시간은 저녁 7시경.
조촐하지만 조명을 설치하고,
팁박스를 펼친다.
내게는 팁 상자가 아니라 후불 관람료 상자이다.
보통의 공연은 보기 전에 관람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거리 공연은 보고 난 뒤에 내도 되며 각자의 사정도 봐준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은 입간판도 세워놓는다.
현장에서 실시간 문자도 받는다.
문자는 보내지 않았지만 이 날 나도 관람료 만원을 지불했다.
공연의 마지막쯤, 모인 금액을 슬쩍 훑어본 사운드박스의 한 멤버는
오늘은 모두 라면은 먹을 수 있겠다고 했다.
예술의 길은 배고픈 길이다.
먼저 온 멤버들이 악기의 음을 튜닝하고 있다.
튜닝곡은 Stairway to Heaven인 듯했다.
격정적인 뒷부분을 기대했지만
가볍게 악기의 몸만 풀어주고 그 부분까지는 가지 않았다.
정시에 함께 모여 일제히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오는대로 합류한다.
음악이란 넷이 해도 되고, 다섯이 해도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흘러가던 놀이터에 음악이 흐른다.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은 걸음을 멈춘다.
이제는 고정 관람객이 있는 듯하다.
멀쩡한 자리를 놔두고
무대 바로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는 관람객이 있었다.
멀리서 들으면 음악만 들리는데
가까이 앉으면 그들의 호흡까지 느낄 수 있다.
가까이 앉았을 때의 장점이다.
가장 기럭지가 긴 탭퍼가 무대로 나와 탭댄스를 춘다.
바닥엔 얇은 널판지 하나가 깔려있다.
무대치고는 너무 낮다.
탭댄서는 바닥에 납짝 엎드린 그 무대를 발로 두드려
리듬을 불러 일으킨다.
무대가 너무 낮기 때문일까.
발로 일으키는 리듬이 지면으로 깔리는 느낌이다.
무대는 좀 높아야 한다.
그래야 일어난 소리가 객석으로 뛰어내려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러면 모두가 뜨거워진다.
또다른 탭퍼의 등장이다.
그는 몸이 아주 좋았다.
가장 어려보이는 두 멤버.
한 사람은 머리가 주황이고,
다른 한사람은 윗옷이 주황이다.
호흡이 잘 맞아 보였다.
밤은 깊어가고 이들의 음악도 점점 뜨거워져 간다.
탭퍼의 발.
중간에 누군가 파란색의 플라스틱 짐받이를 들고 왔다.
바닥에 납짝 엎드렸던 무대가 무릎은 펼 수 있게 되었다.
훨씬 좋았다.
그 위에서 발바닥이 잰 동작을 놀리며 리듬을 불러일으킨다.
그 탭퍼의 얼굴.
그의 표정을 보면
그냥 발만 구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며 대지의 깊은 곳에서 소리를 길어올리는 느낌이다.
비트박스라 불리는 주황머리는
베이스 기타리스트의 머리를 레코드판 삼아 이리저리 돌렸고,
그때마다 빠각빠각 레코드판 돌리는 소리가 났다.
시간이 벌써 두 시간 가까이 흘러 아홉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는 노래도 있었지만 모르는 노래는 더 많았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음악이란 때로 일종의 부력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슬픔에 슬픔을 더 얹어 깊은 우울이 되기도 한다.
사운드박스의 음악은 대체로 즐거운 부력이 되었다.
관객 중에 앞에서 하품하다가 딱걸린 관객도 있었다.
관객은 당황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트집잡아 잠깐 웃을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종종 솔로 연주를 보여준다.
지금은 베이스 기타의 차례.
솔로 연주 때의 특징은 역시 손놀림이 현란하다는 것.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해지는 것일까.
탭퍼의 무대가 된 짐받이 발판은 사방 1m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탭퍼는 그 작은 공간에서
뛰고 나르고 또 춤춘다.
뛰고 달리기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음악을 위해 화려한 무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음악을 펼치기 위해 무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펼쳐놓는 곳이 그 어디나 무대이며
탭퍼가 달리면 그곳은 리듬의 대지가 된다.
그의 몸 속엔 새가 살고 있다.
그는 가끔 그 새를 꺼내 보인다.
새가 있는 곳은 사방 1m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러나 새는 그곳에 갇혀있지는 않았다.
여성 보컬 둘이 함께 나와 Proud Mary를 불렀다.
내가 기억하는 Proud Mary는 탐 존스의 것이지만
이 날 밤의 Proud Mary는 사운드박스의 것이었다.
지난 번에 보았던 그린걸과 블랙걸이
이번에는 핑크 레이디와 스카이블루걸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 신혜련은 이번에도 역시 뜨거운 댄스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사람들도 그녀의 춤에 함께 휩쓸렸다.
한번더.
그녀가 외쳤다.
그러자 Rollin, rollin, rollin on the river가 다시 흘렀고,
강에서 배가 일렁이는 듯했다.
두 여성 보컬이 보여준 헤드 뱅잉은 압권이었다.
시간은 이제 밤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 뒤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하지만 카메라의 카드가 다 차는 바람에
마지막 부분의 장면은 찍지를 못했다.
언제 홍대가시면 한번 함께해 보시라.
싸이월드 클럽에서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미리 팬이 되면 홍대앞 놀이터를 지나치다 이들을 만났을 때
더 반가울지도 모른다.
주소는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2390339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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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박스 – 홍대앞 놀이터의 뜨거운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