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장경사의 연꽃 구경

추석 다음 날인 10월 4일 일요일, 오후에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녀가 남한산성이라도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난 카메라에 삼각대를 챙겼고, 남한산성을 가자는 말을 버스를 타고 마천동으로 가 산을 오르자는 말로 받아들였다. 청바지 대신 등산복을 달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언젠가 추석 다음 날 그렇게 남한산성을 오른 적이 있었다. 나는 이번 추석에도 다음 날 그때 시작된 남한산성 행의 발걸음을 다시 반복하려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녀의 생각은 그냥 차를 몰고 간단하게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땀좀 흘리려고 했지만 결국 나 대신 남한산성까지 숨을 몰아쉬며 올라간 것은 우리의 차였다. 그래도 차는 오르막의 산 길을 막힘 없이 잘 올라갔다. 하지만 남한산성 동문에서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의 뒤꽁무니를 붙잡더니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차들이 밀리고 있었다.
바로 곁이 주차장이어서 체증이 풀릴 때까지 그곳에 차를 대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동문을 어정거리던 우리의 발걸음은 나중에는 어느 새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길을 따라 한두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고, 그러다 동문 쪽에 있는 장경사까지 와 있었다. 전에도 몇 번 와본 절이었지만 걸어서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큰법당 앞의 마당에 커다란 함지들이 놓여있었고 그 안에 드문드문 연꽃들이 앉아 있었다. 연꽃의 시절은 이미 지난 지가 한참이었지만 함지들에게서 안식처를 구한 덕분에 연꽃은 여전히 꽃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안식처를 잘 구하면 오래도록 버틸 수가 있다. 심지어 겨울에도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
돌면서 그 연꽃들을 구경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커다란 함지에 작은 수련 하나가 피어있다. 수련이 작기는 하지만 이렇게 작았나 싶다. 이제 연꽃의 시절이 지났음은 연잎들이 말해준다. 한쪽이 갈라진 푸른 연잎들은, 제 시절이었다면 매끄러운 초록의 윤기를 자랑했겠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헤어져 시절이 한참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갈라진 잎은 마치 한창 때의 기억을 향한 갈망을 가득 담아 멍하니 벌리고 있는 입만 같다. 제 시절이 지나가면 물에 떠 있어도 목마른 것인가? 아님 다른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 더욱 깊어지는 것인가? 잎은 많이 헤어져 있었지만, 그러나 연꽃은 꽃의 시간을 선명하게 붙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들여다 보면 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이다. 아마도 며칠 된 물일 것이다. 물을 갈아주었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수련은 그 물에서 이렇게 맑고 투명한 꽃을 엮어낸다.
흐린 물에서 놀아도 마음을 깨끗이 빚어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게 어려운 데 연꽃은 그것이 항상 가능하다. 우리가 보기에 흐린 물도 그 속에 맑음이 있는 것일까. 하긴 물 자체가 흐리고 맑음이 있겠나 싶다. 맑은 물도 며칠 내버려두면 흐려진다. 물은 원래 맑은 것이나 세상의 흐린 것들이 섞여들며 그것을 흐린다. 그것이 삶이다. 그렇지만 흐린 속에서도 물의 맑음을 골라낼 수 있다면 맑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연꽃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흐린 물 속에서 빚어내는 꽃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물 속에 그 꽃처럼 투명한 맑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연꽃 하나가 함지 바깥으로 길게 목을 뻗었다. 누워서 하늘을 보는 느낌이다. 하긴 같은 하늘도 누워서 보는 것과 고개를 젖혀서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온몸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든다. 지금 하늘이 연꽃 속으로 쏟아지고 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연꽃이 흰색을 빚어내면 투명보다 더 맑은 흰색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노란 수련은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약간의 잡티가 보인다. 미세한 주근깨처럼 뿌려져 있다. 너무 들이대면 어떤 미인도 견디기 힘든 법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잎 하나가 잎 밑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내밀고 있다. 제 그림자를 가시로 꼭꼭 찌르며 깨어 있어야 했던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그렇게 깨어 있어야할 절박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던 것일까.
마침 스님이 지나가면서 절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이 연잎이 큰 곳에서는 아주 크게 자라고 또 이렇게 함지처럼 작은 곳에서는 그곳에 맞게 작게 자란다고 했다. 여유있을 때는 몸을 불리지만 작을 때는 또 작게 몸을 줄여 과하게 욕심을 내는 법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름도 알려 주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잎의 크기보다 자꾸만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지긋이 찌르고 있는 가시가 더 눈에 들어온다. 마치 연잎이 아픔없는 삶이 어디에 있겠냐고 묻는 듯도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흰 연꽃의 속. 속이 아주 안좋은 상태인 듯하다. 추석 음식 잘못 먹은 사람들도 속이 저렇지 않을까.

Photo by Kim Dong Won

거의 새끼 손톱만한 초미니 연꽃. 잎으로 꽃을 싸고, 꽃잎으로 또 꽃술을 싸고 있다. 갖출 것을 다 갖추었다. 저렇게 작은 데도 꽃을 담을 수 있다니. 커야만 꽃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고 커야만 삶이 담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작은 삶에도 분명 삶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작은 데도 꽃을 담고 있는 작은 연꽃이 한참 동안 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철이 지난 잎은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황폐한 대지를 연상시킨다. 나무와 숲을 잃고, 이제 바람이 쓸고 가면 금방이라도 뽀얗게 먼지가 일어날 듯한 건조한 느낌의 대지이다. 황폐한 대지는 이상하게 느낌이 외롭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탓일 것이다. 그곳에 물방울이 하나 놓여있다. 물방울 하나로는 전혀 갈증을 달랠 수 없다. 목이 타는 갈증 앞에 물방울 하나는 오히려 갈증을 더 증폭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황폐한 연잎 위의 물방울 하나는 갈증을 증폭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왜 그런 것인가. 그건 아마도 이 물방울이 황폐한 대지의 작은 위로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위로는 작아도 황폐된 가슴에선 말할 수 없이 크다. 물방울 하나로 갈증은 풀어줄 수 없지만 위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비인지, 나방인지 연잎 위에서 죽었다. 아무래도 나방 같다. 한창 때는 꽃이 있었을 테니 꽃과 함께 놀았을 것이다. 지금은 꽃의 흔적은 없고, 시간이 초록을 뜯어간 연잎들만 초라하게 함지의 물위에 떠있다. 나방은 연잎 위에서 죽었다. 날개를 활짝펴고 마치 영원히 날고 있는 것처럼. 나방은 죽어서 날개짓을 접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잎들도 뜯겨져 나간 초록 잎을 물 위로 날개처럼 넓게 펴고 있었다. 살아선 물위에 떠있지만 죽어선 나방과 함께 물위를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연꽃의 몽우리 하나가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늘빛이 내려앉아 함지의 물이 하늘처럼 파랗다. 물이 하늘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느낌이다. 날이 가라앉고 있었으니 몽우리는 꽃을 하늘에 선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가을의 푸른 하늘은 맘껏 날았으리라.

Photo by Kim Dong Won

이렇게 작아도 연밥이 영그는 것일까. 마치 연밥의 미니어쳐를 보는 듯했다. 연꽃도 작고, 연잎도 작은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며, 심지어 연밥도 작았다. 작은 것에도 꽃이 담기고, 잎이 담기고, 연밥이 담겨 있었다. 모두 다 버리고 작은 삶을 가져도 얼마든지 삶을 담을 수 있다고 내게 속삭였다. 생각해보니 너른 연꽃 단지가 아니어서 함지들도 모두 작았다. 장경사의 작은 안식처에 연꽃이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12 thoughts on “남한산성 장경사의 연꽃 구경

  1. 아.. 먼저 보고 궁금했었는데…
    밑에 스님이 알려주셨다는 연이 가시연이랑 다른건가봐요?
    그냥 봐서는 가시연이랑 많이 비슷한듯 싶은데…
    투명에 가까운 흰 연잎이 시려보이기도 따뜻해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느 시간에나 감사한 사진들입니다..^^

    1. 저도 처음에 보고 가시연인가 했는가
      좀 다른 것 같더라구요.
      스님도 가시연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뭐라고 했는데 그곳의 연꽃을 다 일일이 설명하시니
      기억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이번에는 이곳에 갔다가 성을 따라 내려왔는데
      풍경이 아주 좋았어요.

    2. 그럼 혹시 개연이라고는 안하시던가요?
      가시연의 다른 이름이던데…
      아님 좀 알아봐주세요..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있는 1人입니당….^^;;

    3. 빅토리아연이라고 하는 거 같아요.
      관곡지에 가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의 크기까지만 자란다는 설명만 귀에 남았어요.
      작은데서는 작게 큰데서는 엄청 크게.
      개연은 가시연과 또다른 종류 같아요.

    4. 빅토리아연..
      이름이 아주 거창하네요..^^
      사진을 찾아보니 왜 이름이 그런가 싶게
      잎이 아주 근사하네요.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궁금한 건 당췌 참을 수가 없어서 완전 답답했거든요..ㅎ
      감사합니다….^^

    5. 원래는 유리알레 아마조니카(Euryale Amazonica), 그러니까 아마존의 가시연이란 이름으로 불리웠나 봐요. 빅토리아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해서 그리 되었다네요. 원래의 이름으로 봐선 가시연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 같아요. 잎은 직경이 큰 것은 3m 정도라고 합니다. 꽃도 피는데 이 날 꽃은 없었어요. 꽃은 첫날밤엔 흰색인데 둘째날 밤에는 핑크색이 된다고 합니다.

    1. 웃기는 건 사람들이 기른 꽃이 더 예쁘게 나온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말을 하지만
      암암리에 우리가 인공미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2. 사진들 너무 좋습니다.
    무슨 카메라 쓰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니콘 디90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월 말경에도 연꽃이 있을런지 궁금하네요.
    제가 서울에 그때쯤 가서요..

    1. 카메라는 무지 좋은 거 쓰고 있어요.
      같은 니콘 기종인데 D700 이라고…
      10월 말경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 꽃구경을 하시려면 팔당의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이란 곳을 가시면 되요.
      거긴 온실이 있어서 꽃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능동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도 실내식물원이 있어요.
      길동에 오시면 허브공원이라고 있는데
      그곳도 작지만 실내식물이 있어요.
      남산식물원이 딱 좋았는데 거긴 없어져 버렸어요.
      좋은 시간 되시길.

  3. 이런 포스팅은 꽤 오랜만이신거 같아요.
    커다란 함지가 아니라 연못에 있는 것같은 느낌이예요.
    카메라의 위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죽은 나방이 있는 사진은 멋진 그림같구요 초미니 연밥은 뭔가 열씨미 탐색하고 있는 잠망경같지요?ㅎㅎ

    1. 사진에서 카메라와 렌즈는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거 같아요.
      전에도 그건 많이 느꼈죠.
      똑딱이를 사용하다 DSLR로 갔으니까요.
      전의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고 나서 느낀게
      내가 여지껏 사진을 못찍은 것이
      순전히 카메라탓으로 느껴졌으니까요.
      하긴 뭐 그렇게 따지면 지금 사진 잘 찍는 건
      순전히 카메라 덕이죠.
      카메라가 참 이상해서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또 사진이 잘 찍히질 않아요.
      전에 라이카 R8을 며칠 사용했었는데
      그때는 별로 사진이 잘 되질 않더라구요.
      사진을 잘 하려면 좋은 자기 카메라가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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