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문곡리 – 고향의 이름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9월 26일 강원도 영월의 북면 문곡리에서

왼쪽의 흰 부분은 연덕천.
물이 말라서 허옇게 나오고 있다.
사진의 왼쪽으로 가면 정선,
오른쪽에서 남쪽으로 가면 영월,
오른쪽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평창이 나온다.

내 고향은 강원도 영월의 문곡리이다.
정선과 평창, 영월로 가는 길이
방향을 나누는 삼거리 동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문곡(文谷)이란 내 고향의 이름을
곧잘 “글월의 골짜기”란 말로 풀어쓰곤 했다.
그리곤 우스개 소리로
내가 말야 글월의 골짜기 출신이야 하는 말을 꺼내며
고향의 이름으로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건 괜한 일이 아니란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괜스레 멋지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 고향은
그곳의 이름으로 문곡리란 말보다
개간이라는 말을 더 자주 접했던 곳이었다.
우리는 그 말이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잘 쓰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입에선 그 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그때 개간이에서 멍멍이를 떠올리곤 했었다.
개간이의 개간은 한자로는 개간(開澗)이라고 한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열려있는 시냇물이나
냇물이 열리는 곳이란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고향 마을에선
두 개의 시냇물이 흘러들어와 하나로 합쳐진 뒤 마을을 빠져나간다.
그 합쳐짐을 열림으로 본 것일까.
하긴 합쳐짐이 크게 열리는 일이긴 하다.
둘 중 하나는 연덕천이고,
다른 하나는 마차천이란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물론 우리에게 그 시냇물은 그냥 물이었지
한번도 그런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었다.
연덕과 마차는 모두 우리 동네 위쪽으로
두 시내의 상류에 자리잡고 있던 마을이었다.
내 고향 마을의 원래 이름인 개간이의 어원은
그 두 냇물 사이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개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개는 열려있다는 뜻이 아니라 개울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수한 우리 말로 하자면 개울 사이 마을이었는데
개울에선 개자만 따고 사이는 한문으로 가져오면서
냇물의 뜻을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
사이간(間)자 대신 시내간(澗)자를 쓴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원래 내 고향의 명칭도 문곡리가 아니라 문포(文浦)였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면 “글월의 포구” 정도되니 멋지긴 하지만
어렸을 적 기억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곳에서 포구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하긴 두 냇물 중 하나는 홍수 때나 잠깐 물이 흐르고
나머지 하나도 그렇게 물이 충분한 편은 아니어서
포구란 말을 입에 올리기가 난망하고
그저 물과 연관을 짓는다면 물가란 말이 제격인 곳이었다.
어쩌다 글월의 포구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굳이 포구란 말이 어울리는 곳을 찾자면
나의 고향에서 영월쪽으로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 영월로 흘러가는 강이 있고, 그곳이라면 포구란 말이 어울린다.
그 강은 서강 줄기이다.
그곳의 동네에 있던 학교의 이름이 문포초등학교이긴 했다.
폐교가 되어 버려졌었는데
지금은 곤충박물관으로 바뀌어 유명해진 초등학교이다.
문곡이란 지명은 문포에서 ‘문’자를 따고
가느골이란 우리 아래쪽 동네에서 골짜기를 따와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두 마을에서 한자씩을 따오면서
글월의 포구가 글월의 골짜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정확히는 글월의 골짜기가 아니라 글월의 포구에서 성장을 했다.
언제 누군가 붙인 고향의 이름엔 그것이 문포이건 문곡이건
언제나 글월이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곳에서 개울이나 골짜기, 강의 기억은 선명해도
글월의 기억은 찾기 어렵다.
그러니 글월이란 말의 의미로 보자면
고향의 이름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3 thoughts on “내 고향 문곡리 – 고향의 이름

  1. 원래는 저희 마을이 북면의 면소재지였는데 면사무소랑 지서가 마차라는 곳으로 옮겨지면서 마을 모습이 크게 쇠락하고 말았죠. 마차는 한때는 영월군의 군청을 그리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했던 탄광촌이었어요. 지금은 폐광이 되어 그곳도 산골 마을이 되어 버렸지만요. 어릴 때 그곳에서 자란 건 큰 행운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현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것이 별로 좋은 점은 아니었던 듯도 싶어요. 마을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는데도 한참 걸렸으니까요. 전 자연과 문명 가운데서 분명하게 우열을 가르기가 어렵더라구요.

    영월가면 내가 속속들이 안내할 수 있지요.

  2. 일전에 저도 시내로 이사 나오기 전 시골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나 시골이었지 지금은 여름이면 닭백숙 먹으러 휭하니 가는 곳으로 변해있더군요.
    같은 곳을 시간의 차이를 두고 찍은 사진을 보면 상전벽해가 실감이 나는 걸로 봐서는 아마 문곡리도 아주 옛날 옛날에 포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기억하는 이가 없을 뿐이지요.

    1. 그런 추정을 좀 해보려고 해도 워낙 산골이라 도저히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요. 그냥 개간이, 그러니까 개울 사이 마을이 가장 좋은 이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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