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와 이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9월 5일 제주 한라산에서

한라산 오르는 길가에
시커먼 바위 하나 있었네.
그리 크지 않은 바위였네.
제주의 바위가 모두 그렇듯이
그 바위도 오래전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몸을 뒤채다
세상으로 뛰쳐나와 바위가 되었다네.
저 깊은 땅속에서 들끓는 용암으로 뒤척일 때는
뜨겁게 살아 꿈틀대었지만
스스로를 주체하질 못했었지.
바위는 꿈꾸었네.
이렇게 깊은 땅속에서 답답하게 갇혀사느니
하루를 살더라도 바깥 세상으로 나가
바람과 물을 마음껏 호흡하겠노라고.
그리고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결국은 세상으로 뛰쳐나왔다네.
제주의 바위가 세상으로 나왔더니
나오자 마자 그를 반긴 건
바로 오매불망 그리던 물과 바람이었지.
하지만 물과 바람은 그를 꽁꽁 묶어
꼼짝 못하도록 한자리에 붙박아 두었네.
물과 바람을 호흡하겠다고 나온 세상에서
들끓던 바위는 물과 바람에 묶여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네.
제주의 바위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네.
자신의 뜨거움으로는 물과 바람을 호흡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때늦은 일이었네.
제주의 바위는 호흡이 막혔고
낯빛은 까맣게 타들어갔네.
핏빛을 선연하게 내비치며 붉게 일렁이던 몸을 잃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네.

제주의 바위는 오랜 세월 비바람 맞으며
호흡마저 잊고 마냥 자리를 지켜야 했네.
그 바위에 서서히 파랗게 이끼가 덮여갔네.
이끼들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작고 푸른 숨을 내쉬었다네.
까맣게 굳어있던 제주의 바위는
그때쯤 코끝을 자극하는 바람과 물의 숨결에 눈을 떴다네.
이끼의 숨은 뿌리를 타고 바위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네.
바위는 바위가 아니라 마치 이끼의 허파 같았다네.
이끼의 숨은 바위의 깊고 푸른 호흡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네.
바람이 불 때면 마치 심장처럼 바위가 불끈불끈 뛰는 것 같았다네.
죽은 줄 알았던 바위는 살아났고
제주의 바람과 물이 바위의 호흡이 되어 있었네.
이제 제주의 바위는 맘껏 푸르고 깊게 호흡할 수 있었다네.
제 안의 뜨거움으로 숨쉴 수 없었던 제주의 바위는
그 뜨거움을 버리고 오랜 세월 제 몸을 내주며 숨결을 키운 것이라네.
그리고 결국 꿈꾸던대로 자신의 푸른 호흡을 얻을 수 있었다네.
한라산을 오르는 길에
여기저기서 제주의 바위들이 푸르게 숨쉬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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