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잎을 들여다본다.
초록색을 고르게 편 이파리에
잎맥이 솟아 여기저기로 흐른다.
물이 흘러가는 길일 것이다.
잎은 그러고보면 그냥 잎이 아니라
수많은 길의 결정체이다.
잎이 피어나고 자라는 것은 알고 보면
수많은 길을 허공으로 한뼘씩 넓혀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아마 그러하리라.
우리 속에 뻗은 수많은 핏줄 또한 우리의 길이리라.
우리 안의 그 길로 분주한 흐름이 있어
우리도 잎처럼 푸르다.
누군가는 자신이 우리의 길이요 생명이 되고자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 앞의 길이 아니라
혹시 우리 속의 길이 되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길이요 생명이 되는 그 동시 충족의 길은 그 길밖에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안의 길이 되고자 했던 그의 꿈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우리 앞의 길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밖의 길은 길을 인도하는 한편으로 굳어져 있는 길이다.
길은 한번 생겨나면 오랫 동안 그대로 굳어있게 마련이다.
언제나 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때로 다른 방향으로 옮기고 싶은 걸음을 막기까지 한다.
우리 바깥의 길은 방향을 인도하지만 동시에 그 방향으로 굳어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저 따라가야 하는 굳은 길을 원치 않았던 그의 꿈이
우리 안의 길을 꿈꾸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의 길이 우리 안의 길이어도
그것이 생명이 되려면 끊임없이 흘러가는 길이어야 한다.
길 위로 끊임없이 흘러가며 생명을 만들어내는 길,
그것이 그가 우리 안의 길에서 꿈꾼 것일 게다.
그 길에서 흐름이 멈추면 그 순간이 곧 우리의 죽음이다.
죽음이란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수많은 길을 가졌다가
그 길에서 흐름이 끊기면 그것이 죽음이다.
그는 우리 안의 길이 되어 그 길을 끊임없이 흐르며
우리의 생명이 되고자 했다.
그의 꿈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우리 앞의 길이 되어 우리들이 따라가야할 길을 닦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길이 되어 그 길을 끊임없이 흐르며
사람들의 생명이 되고자 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럼 이제 길을 닦고 열어가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라 사람들의 몫이 된다.
우리들이 살아있는 한
사람들의 그 길은 다양하고 새롭게 열릴 수 있다.
알로카시아의 잎에서 물의 길도
매번 잎마다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그 옆 은행나무나 감나무 잎의 길은 또 달랐다.
4 thoughts on “알로카시아의 잎, 그 속의 길”
눈 밝은 사람은 없는 길도 찾아내는군요.
어리석은 사람은 있는 길 위에서도 끊임없이 헤맨답니다.ㅠㅠ
물들이 눈이 가장 밝은 듯.
그 어두운 땅속에서 용하게 길을 찾아 푸른 잎까지 길을 가니 말예요.
그래서 물처럼 흐르면서 살라고 한 건지…
허공으로 흘러간 물의 길을 따라 잎이 달리고 그 길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람의 길을 제시하셨군요…..잎에서 본 길 멋집니다.
햇볕에 비춰보면 우리의 핏줄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