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흘러내린 축대의 중간쯤,
작은 풀 하나가 떨어진 낙엽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 있었다.
“못간다, 이대로는 죽어도 못보낸다.”
“놔라, 제발 내 발목좀 놔라.”
둘은 그렇게 싱갱이하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겠는가.
길을 따라 가파른 각도로 흘러내린 축대가 놓여있었고,
그 중간쯤에 작은 풀 하나가 살았다.
빗물도 빠르게 흘러내리며 가는 걸음을 재촉하는 곳,
그곳의 삶은 팍팍하기만 했고 언제나 목이 말랐다.
하지만 작은 풀은 그곳에서 고개를 내민 뒤로
한철을 잘 견디면서 그리 힘들지 않게 살았다.
때로 우리에겐 바라만 보고 있어도
목의 갈증을 거두어가는 그대가 있는 법.
작은 풀에게도 그런 그대가 있었다.
그건 바로 눈만뜨면 마주하는 머리맡의 나뭇잎.
작은 풀은 그중에서도 시선을 앗아간 딱하나의 잎에 꽂혔으며,
그 뒤로 언제나 그 나뭇잎에 시선 고정이었다.
나뭇잎은 작은 풀의 그대였다.
불행히도 나뭇잎이 꿈꾼 것은 골목길.
나뭇잎은 바람으로 하여금 등을 밀게 하고,
골목길를 떼구르르 구르며 질주하고 싶었다.
자동차를 피하여 이 골목 저 골목 몰려다니고
그러다 자동차의 뒷발에 차이기도 하는
위험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놀이를 즐기고 싶었다.
언젠가 나뭇잎을 잡고 있는 가지의 손끝에서 힘이 빠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골목길로 뛰어내리리라.
나뭇잎은 골목길을 꿈꾸며 한철을 살았다.
어느 늦가을 드디어 가지의 손을 뿌리치고
나뭇잎은 길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작은 풀이 나뭇잎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다른 데 마음 있는 놈,
발목잡고 늘어진다는게 좀 구질구질하고 구차했지만
평생을 나뭇잎만 쳐다보고 산 작은 풀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뭇잎을 보내면 인생이 완전히 뿌리뽑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풀은 온몸을 날려 나뭇잎의 다리를 걸었고,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고는 계속 저러고 있다.
못보낸다, 가야한다,
축대의 중간쯤에서 둘은 싱갱이였고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히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역시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그 남이 종마저 다르면 더더욱 그러하다.
8 thoughts on “낙엽과 작은 풀”
작은 낙엽하나라도 그냥 놓치지 않는 동원님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댓글이라도 남겨야 늘 찍사해주시는 노고에 작은 보답이라도 될까 싶어..^^
때론 섬세하게
때론 대담하게
동원님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고맙기는요.
그나저나 하늘에서 반짝이다 땅으로 내려오면 어떻게 한데요.
연말 잘 보내세요.
어제와 지난주일 저녁 케베스 스페셜 유태인 2부작에서
그들의 힘을 Story Telling으로 푸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하네요.
Story Telling이라 말씀하시니 너무 그럴듯해 보여요.
저는 주로 이빨의 힘이라고 하는데 말예요.
이빨은 돼지갈비 뜯는 데 쓰시구요.^^
동원님은 스마~트하게 스토리 텔링으로 하시지요.
그렇다면 즉각 실천에 들어가게
그녀에게 돼지 갈비좀 쟁이라고 해야 겠습니다. ㅋㅋ
돼지 갈비? 그럴까 그것좀 쟁여줄까…
고건 내가 쫌 하는데…ㅋㅋㅋㅋ
좌우지간 이빨은 풀던가 뜯던가 둘 중의 하나는 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