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 2

1년에 한번 갖는 고향 친구들의 모임이 올해는 인천에서 있었다.
12월 12일날 인천의 동암역 근처에서 모였다.
지하철 타고 갔더니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시간으로만 보면 거의 내 고향 영월가는 시간이나 다를바 없다.
이번에는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술취하면 동해 바다의 고래는 모두 불러들일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동네 사람들의 잠을 다 깨워놓았던 술주정의 기억을 들추면서
모두 낄낄 거리고 웃었다.
노름 얘기도 예외없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그것도 웃음으로 무마할 수 있었다.
세월의 좋은 점이다.
얘기 끝에 우리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다들 아버지는 닮지 않았구나.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로 자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를 버리고 우리들은 다들 새로운 아버지로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버리면서 좀더 나은 그들의 시대를 연다.
우리의 자식들도 우리를 버리면서 좀더 나아지고 살만한 시대를 열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를 버리지 않았다면
시대는 아버지의 시대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우리들의 아버지를 다 버리진 못했다.
아버지를 버리면서 우리는 그 자리를 우리의 어머니로 채웠지만
우리들 속의 많은 부분에 여전히 버려야할 아버지가 많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버지를 버리면서 새세상을 시작해가다 보면
언젠가 아버지를 이으면서 뒷세상과 앞세상이 화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그 행복한 시대는 살지 못했다.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를 버렸듯이
이제 우리는 자식들이 우리를 버리고 좀더 새롭고 살만한 세상을 열도록
자식에게 버림받는 설움을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남은 여생을 마무리해갈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아무리 잘되어도 버림받은 생은 서러운 법.
그런 생에선 1년에 한번씩 보는 친구들과의 모임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친구들의 얼굴 남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엄경호.
경호가 직장일로 바빠서 못내려온 서울의 도열이에게 전화를 건다
“이번부터는 빠지면 벌금 10만원이다.”
서울 도열이가 지지 않고 응수한다.
“내가 결재한 일이 없는데.”
우리는 얘기들으며 낄낄거리고 웃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이기훈.
이번에는 기훈이 본거지인 태안에서 모이는가 했는데
결국은 인천이 모임 장소가 되었다.
인천 가까이 사는 세 명의 파워가 컸다.
기훈이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잘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고 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엄기탁.
올해부터 대학원다니고 있다.
직장마치고 영월에서 원주까지 차몰고 등하교하는
고된 일정이라고 한다.
50의 늦은 나이에 공부시작한 친구는 장하기 이를데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노윤식.
클 때 아래윗집에 살아 정이 남다르다.
아마 동네 친구들이 가장 많이 모여서 놀았던 곳이
윤식이네 집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쉽게도 그 집들이 지금은 남아있질 않다.
서울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도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최동열.
동열이는 체구가 듬직하다.
나는 동열이 아버지께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신세만 지고 갚지는 못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권영준.
영준이의 특징은 간단한 수식어구로 요약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다름아니라 잘생겼다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김영재.
지난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가지 힘겨운 일을 겪었다.
지난 해를 돌아보다
너네는 부모님 한 분이라도 살아계신데 나는 이제 한분도 안계시다며
내가 부모님을 잘못모셔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눈의 한쪽으로 몰려간다.
사실 우리들 중에 영재만한 효자는 없다.
영재의 이 대책없는 착한 심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머니 모시고 고향 내려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난 말은 꼭 그렇게 할께라고 답하는데
어머니 모시고 내려가면 여기저기 일정이 많아
고향 친구들에게는 연락도 못하고 올라오곤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엄도열.
같은 이름의 고향 친구가 둘이다.
올해는 영월 도열이만 참석했다.
영월에서 인천까지 오는데 네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막히는 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살다가
꽉막힌 길을 한번 오더니
이제 다시 인천에서 모이는 것은 하지 말자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2일 인천 동암역 근처에서

나는 1차와 2차만 함께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언젠가 인천에서 모였을 때도 나는 끝까지 함께하질 못했다.
번번히 중간에 서울로 뜨고 만다.
그래도 항상 중간에 빠져나가는 나를 이해해준다.
내년에는 좀 일찍 고향에서 보기로 했다.
다들 건강하길.

4 thoughts on “고향 친구들 2

  1. 不R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부럽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어부인님과 같이 고향에서 만났던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만남이 지속되는 건 시골 촌놈 출신들만 누리는 특권 같습니다.
    숯불구이집앞에서 시선 교차없이 서 있는 모습들이
    누가 고고씽을 외쳐주길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2. 아~~고향 오라버니들의 모습 이곳에서 보내요. 참보기좋은 모습들을 간직하구 계시네요..늘 아련한 추억속에 있는분들 그속에 선머슴아 같던 울언니두 함께이면 참 좋을텐데~~언니게 오빠얘기를 아직 못했어요..언니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이야기하게 되면 언니전화번호 남길게요^^* 추운날씨에 항상 건강조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