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경림 선생님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1일 서울 경운동의 「낭만」에서
오른쪽이 시인 신경림 선생님이시다

아는 분들을 만날 약속이 있어
인사동 근처의 「낭만」이란 곳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시인 신경림 선생님을 만났다.
막 나가시는 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 사진 한장 찍어도 되나요” 했더니
스스럼없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내주신다.
그녀는 “나는 선생님 옆에서 찍고 싶다”며
얼른 선생님의 옆자리를 꿰찬다.
농민의 순박함이 그대로 담긴
예의 그 선생님의 얼굴을 얻었다.

아주 오래 전,
지금은 폐간되어 없어진 『문학정신』에
합평 방식으로 월평을 쓴 적이 있었다.
(그 합평의 자리는 그다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질 못하다.
견해를 나눈 또다른 한 명의 비평가와 이상하게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항상 으르렁대며 싸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잡지가 발행되고 나서 어느 날 한 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월평에서 언급된 시인이었다.
시인은 내게 신경림 선생님이 자신에게 전화를 했다는 말을 전했다.
한 젊은 비평가가 자신의 시를 알아주고 있으니 힘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나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시인의 시를 읽었다는 일방적 인연을 제외하고 나면
신경림 선생님과의 인연은 사실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다른 시인을 통해
한다리를 건너 얻어들은 얘기로 맺어진 인연이니
인연이라고 하긴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선생님을 만나자
불현듯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는데도
마치 너무나 잘아는 사이처럼 반가웠다.
아직 그때 전화를 했던 그 시인과는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그 시인은 내게 약간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사는 것이 바빠
몇 번 걸려온 그 시인의 전화를 무시해 버렸고
그것은 그 시인에게 상처가 된 듯했다.
하지만 좋은 시인이었고, 나보다 훨씬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신경림 선생님과 잠깐 스치는 사이에
젊은 시절에 가졌던 실낱 같은 작은 인연을 돌아보았다.
사진 몇 장 찍는 짧은 순간으로 함께 했지만 즐거움이 컸다.

11 thoughts on “시인 신경림 선생님

    1. 저는 술은 시인이 마셨는데 취하기는 왜 그대가 취했냐고 놀렸지요. 먼거리에선 몇번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코앞에서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1. 바쁘시니 보기에 좋습니다.
      저는 매일 일에 눌려 지내고 있습니다. 송년회라고 며칠 나가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굴뚝 같은데 토요일엔 가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못가더라도 앞으로 계속 블로그에서 뵐께요.
      선생님의 건강을 비는 마음을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해놓겠습니다. 내년 출판 때는 간송 전형필 바람을 일으켜 그 바람타고 한국와 미국을 왔다갔다 하시길요.

    1. 요즘은 이렇게 잠깐 스치면서 사진찍는 팬으로 함께 하는게 좋더라구요. 이날 요기에 문성근씨도 있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주인이 싸인받아주겠다고 했는데 방문 열고 방해하기가 그래서 그냥 나왔는데 다들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ㅋㅋ

  1. 그저 외모는 맘좋은 아저씨 한분 만난 것처럼 반갑더이다.
    살다보니 참 여러 사람을 만나는구랴.
    다음에 뵈면 꼭 시집에 싸인해달라고 해야 할텐데…^^

    1. 언젠가 한 비평가가 신경림의 시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어. 그럴 수야 있지만 문제는 내용이 너무 황당했다는 거였지. 농무가 내용을 보면 패배의식으로 가득차 있다나 뭐라나. 참 그걸 읽고 있는데 그 비평가란 놈이 한심하기 짝이 없더라고. 춤에 춤밖에 담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았는데 농무에서 한 삶의 아픔을 담아낸 그 눈을 보질 못하고 그따위 소리를 해대고 있으니 말이야. 그 비평가가 내가 대판 싸웠던 비평가라 가끔 내가 사람 본 눈이 빗나가질 않는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 날 전투적으로 만들던 인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믿었던 인간들에게 배신을 많이 당하다 보니 그냥 나나 나를 배신하지 않고 살아야지 하고 많이 소극적이 된 거 같아.
      신경림 선생님 보니 정말 반갑더라. 그 불콰한 얼굴도 정말 시인 같고 말이야. 이게 이런 계열의 시를 쓰는 사람들이 더 인간적인 면모는 있는 거 같어. 뭐 몇 사람 안되는 경험으로 이리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사람만난 걸로는 대체로 그런 느낌이 들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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