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를 만난 건 서울의 올림픽공원에서 였어요.
걔는 1940m라고 했어요.
그 1940m는 약간의 고저를 갖고 오르내리긴 했지만
올릭픽공원의 너른 땅에 누워있었어요.
누워있는 몸의 중간을 뚝 잘라
걔가 있는 곳을 곧장 파고든 나는
곧바로 1940m를 만날 수 있었죠.
나는 그래서 1940m부터 시작을 할 수 있었어요.
1940m가 땅에 누워있을 때,
내 걸음은 땀한방울 안 흘리고
바로 그곳을 시작으로 삼을 수 있었죠.
걔를 만난 건 제주의 한라산에서 였어요.
걔는 1900m라고 했어요.
걔는 절대로 중간을 뚝 잘라
걔가 있는 곳으로 곧장 걸음할 수가 없어요.
걔는 누워있질 않고 육중한 몸을 아득하도록 높이 세워놓고 있거든요.
1940m가 땅에 누워있으면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지만
그보다 40m가 짧긴 해도
1900m가 몸을 세우고 있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아마 우리나라 남쪽 땅에서 걔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한라산이나 지리산밖에 없을 거예요.
나는 몇시간 동안 걸음을
한걸음 두걸음 차곡차곡 쌓은 뒤에야
겨우 걔를 만날 수 있었어요.
1900m를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어요.
숨이 턱턱 턱에 차올랐고,
때문에 턱에 차오른 숨을 연신 뱉아내며
나를 비워야 했어요.
걔를 만나러 가는 길에선
몸안의 숨하나도 무겁게 느껴져요.
연신 숨을 퍼내 나를 버려야 했죠.
그렇지만 나를 모두 버리고 걔를 만났을 때,
정말 감격스럽기는 했어요.
약간 비딱하게 누워서 건방진 자세로 나를 맞아주었지만
다 용서할 수 있었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것만해도 어딘데요.
내가 만난 서울의 1940m는 땅에 누워있었고,
내가 만난 제주의 1900m는 꼿꼿하게 서 있었어요.
살다보니 그렇게 1940m가 누워있을 때도 있고,
그보다 짧은 1900m가 아득하게 서 있기도 했어요.
4 thoughts on “1940m와 1900m”
전생은 둘 다 천구씨네 집안 형제였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환생하며 하나는 서울로 갔고, 하나는 제주로 간 것 같은데
둘 다 사람이나 망아지 모습은 아니네요.
다만 키가 조금 작았던 천구가 해발이라는 호를 쓰는 걸로 봐서는
서울로 간 천구보다 공부를 더 해서리 유명해졌나 봅니다.
영어 공부도 한 모양 같은데 한 친구는 소문자만 외운 것 같고 한 친구는 대문자만 외운 것 같습니다…ㅋㅋ
거리와 높이에 관한 묵상거리를 제공해 주시는군요.
해발 높이에 비해 거리는 때론 경계나 기점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어
100% 믿을 건 못 된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 가서 한라산에 오른 덕에 생각이 미칠 수 있었죠.
설악산에 갔을 때는 저런 높이 표지판은 못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