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011 하고 누른다.
번호가 자꾸 232라고 찍힌다.
번호 버튼이 희미하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몇번 반복하며
번호 버튼을 확인하려 든다.
가운데 5자가 버티고 있고,
다른 숫자들이 그 5자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0이나 1이 보이질 않는다.
나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011 하고 누르고 있었지만
문자판의 숫자는 232하고 찍히고 있었다.
그녀와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그 대화는 그녀와 한 대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는 아니었을까.
나는 전화 번호를 정확히 누른다고 생각했었지만
종종 전혀 엉뚱한 번호를 누르고는
그녀와 말을 나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말은 몸이 아니다.
말은 온라인 세상의 것이어서
선을 타고 상대에게 간다.
내가 전화를 집어들면 전화선을 타고 가며
모니터 앞에 앉아 텍스트를 끄적거릴 때도
인터넷 선을 타고 누군가에게로 간다.
말과 달리 몸은 오프 세상의 것이다.
몸은 몸과 몸이 직접 부딪칠 때만 우리 앞으로 온다.
몸을 멀리하면
말의 맞은 편에 앉아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그녀가 아닐 수도 있다.
마치 잘못 걸린 전화의 맞은 편에
전혀 엉뚱한 사람이 내 말을 받고 있는 것처럼.
한동안 너무 몸을 멀리 했다.
4 thoughts on “꿈 속의 전화”
꿈 속에서 전화한 그녀는 애인이 분명합니다.
단축번호를 누르지않은 걸 봐서는…ㅋ
그건 아닌 듯 합니다.
그 번호는 019로 나가는데 뒷번호를 몰라 항상 주소록을 뒤져서 걸거든요. ㅋㅋ
신기하네요.
저도 그런 꿈을 꾸고 글을 쓴 적이 있어요. (한동안 자주 그런 꿈이 나타날 때가 있었죠)
이웃 분이 말씀해주셨는데
꿈에서는 원래 읽거나 쓰기가 잘 안되는 거라고 그러더군요. ^^
제 닉네임에 관련 글 걸어놓았어요. 🙂
가서 읽어봤어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체험이예요.
꿈꾸고 나서 그 꿈이 요즘의 내 처지와 너무 비슷한 알레고리여서 한참을 침대의 모서리에 앉아 머리를 낮추고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꿈이 무슨 계시 같았거든요.
꿈을 시와 연계시킨 시인 중에 김점용이 있었는데 그의 시집 <오늘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가 이렇게 얻어진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세실님 글 중에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노란 봄, 파란 죽음>이었어요.
그 글을 읽으며 처음에는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노란 개나리 그림을 생각했었는데 그 파란 죽음에서 선명한 대립을 보고 많이 충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내가 앞으로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할 때 그 파란 죽음을 얘기한 세실님 글을 많이 인용하게 될 듯.
아, 제가 그 글에 이 글을 트랙백으로 걸어서 엮어 놓았어요.
세실님도 연관이 있다 싶으면 제 글에 트랙백을 거시면 되요. 그럼 읽는 사람들이 관련글에서 언제든지 타고 들어갈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