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다니면서 친숙해진 길이 있습니다.
두물머리 갈 때,
112-1번 버스를 타고 팔당대교를 건너면
버스는 북쪽 끝을 빠져나간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곧장 버스를 세워줍니다.
그곳의 버스 정류소 이름은 하팔당 마을입니다.
이름으로 보면 그곳에 마을이 있을 것 같지만
집들은 보이질 않습니다.
대신 정류소 앞으로 2차로의 옛길이 남아있습니다.
이 길의 옆으로는 산쪽으로 새롭게 넓힌 철로가 있고,
강쪽으로는 역시 새롭게 낸 자동차 길이 있습니다.
사실 이곳엔 예전에는 마을이 있었던 듯 합니다.
실제로 오래 전 버스를 타고 이 곳을 지나다
길옆에서 가게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로가 확장되면서
그 가게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길들이 확장되고 또 새롭게 나면서
그곳에 있던 마을은 길에게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하팔당 마을이라는 버스 정류소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나는 두물머리 갈 때면
이 곳의 버스 정류소 앞에서 167번 버스를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정류소 앞의 옛길과 눈을 익혔습니다.
이 정류소 앞의 옛길은 오고가는 차들의 불균형이 아주 확연한 길입니다.
덕소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차는 많은데
내가 가고자 하는 양수리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차는 매우 드뭅니다.
아마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테지요.
길이 이 옛길밖에 없던 시절에는
길의 양편으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며
차들이 오고갔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팔당대교를 빠져나온 차들이
모두 덕소 쪽으로 방향을 튼 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한쪽으로만 이어집니다.
빠져나가는 차량은 많은데 이 길로 들어서는 차량은 아주 드뭅니다.
그러다 가끔 새 길을 버리고 옛길로 들어선,
바로 내가 타고 갈 버스가 한쪽 차선을 저 홀로 독차지하고선
정류소까지 터덜터덜 달려옵니다.
또 간혹 방향을 잘못 잡은 승용차가 이 길을 달려와선
혹시 이 길로 팔당대교를 올라탈 수 없을까 힐끔힐끔 엿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팔당대교의 북쪽 끝을 내려오는 차들이
그건 어림도 없다며 빵빵거리는 클락션 소리로 입을 악다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결국 길을 잘못든 차들은 차를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가끔 팔당대교를 내려온 차 중에 한쪽 길이 텅비어 있으니까
그 길도 모두 빠져나가는 길이려니 하고는
그 길로 마구 달려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쪽으로 줄을 서는 차들 때문에
이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는
급하게 그 줄 사이로 끼어듭니다.
그러면 길의 한쪽이 다시 텅 비워집니다.
예봉산을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버스를 타고 팔당대교를 건너 이곳에 내리면
함께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길을 건너 양수리로 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항상 나 혼자 버스를 기다립니다.
다시 하남으로 가려면 이곳에선 버스가 없습니다.
타고온 버스를 타고 나가 두 정류장을 더 간 뒤
큰 길에서 길 건너편으로 가야
비로소 타고온 버스를 반대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길이었으나
그곳에서 몇 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 길에도 이렇게 여러가지 사연이 생겼습니다.
아마 그 길옆에 있었을 마을의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사연많은 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이는 길 하나에도
얼굴을 익히고 나면 이야기가 생기고 사연이 생깁니다.
길이 이럴 진데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이는 평범한 삶에도
이야기가 있고 또 깊은 사연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2 thoughts on “하팔당 마을 버스 정류소의 옛길”
남한 천지 사연을 다 새기고 다니시네요….부럽….
낯을 익힌다는 건 단순히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쌓는 것이가도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