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산 자락에 자리한 정곡사로 놀러갔다. 절에 간 것은 아니었고, 절이 끼고 있는 계곡에서 더위를 피하고자 했던 것이 같이 간 사람들의 속마음이었다. 나는 다른 마음 하나를 더 품었다. 내가 품은 다른 마음 하나는 지난 해 늦가을에 보았던 폭포 하나와 다시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지난 해 가을에는 물이 거의 없었는데 비가 많이 온 뒤끝의 여름날이라 이럴 때 가면 물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물이 거의 없는 폭포와 물이 넘쳐나는 폭포의 느낌이 내 눈앞에서 어떻게 갈라서는지 보고 싶었다. 작은 폭포를 다시 만나 사진찍고 계곡에서 나무 그늘과 폭포가 선물해준 시원함을 벗삼아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간다고 인사하러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마음씨 좋은 정곡스님이 차나 한잔하고 가라고 하신다. 일행과 함께 마주 앉았더니 스님이 차를 내주며 슬쩍 화두 하나 던지신다.
“여기 뜨거운 물이 한 그릇있어요. 그런데 그게 뜨거운 줄 아무도 몰라요. 내가 물이 뜨겁다는 걸 전혀 말해주지 않고 어디 한번 물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했어요. 그래 다들 어떻게 하겠어요?”
내 반응은 이랬다.
“이런 세상에 믿을 놈 없군!”
일행이 와하하 웃었다.
일행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왜 손을 담가보라 하셨는지 물어볼 것 같아요.”
일행 중 또 다른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스님이 해보라고 한 일이니 무슨 심오한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것 같아요.”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들 손가락을 넣질 않았군.”
아하, 그렇구나.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했는데 우리는 다들 손가락을 넣지 않았다. 손가락을 넣었다면 다른 무엇보다 다들 ‘앗, 뜨거’를 먼저 외쳤을 터이니.
스님은 뜨거운 물이라 말했지만 알고 보면 그게 말 그대로의 뜨거운 물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도 때로 뜨겁게 들끓는다. 그런데 물이 아니라서 손을 넣어볼 수가 없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우리들은 손을 넣어 보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때로 끓는 마음을 진정시켜줄 생각을 않고 부채질로 불길을 올려 드디어는 마음의 울분이 끓어넘치기에 이르고 만다. 그때쯤 되면 이제 마음에 손을 넣어 보지 않아도 그 곁에 있는 누구나가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그냥 개인과 개인간의 일에 대한 비유 같지만 사실은 가장 분명한 예를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구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촛불 시위와 그에 대한 치졸한 탄압, 4대강 사업, 세종시 등등의 문제로 민심이 끓고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손을 넣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은 손을 넣어보았다고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손을 넣어 보았다면 뜨거운 맛을 보았을 터이니 모든 사업을 그렇게 밀어부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귀를 꽉 막은 채 모든 사업을 마구잡이로 밀어부치면서 불길을 더 돋우었다. 그러니 민심이 끓어넘칠수밖에. 6.2 지방 선거에서 이대통령은 드디어 뜨거운 맛을 보았다. 선거는 정치인들이 민심의 물그룻 속으로 손을 담그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민심의 온도가 투표 결과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선거 결과는 이명박 정권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직 착해서 그런지 아주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중화상을 입히진 않았다. 그런데 이 정도면 이제 정신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대통령이 하는 꼴을 보면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 민심을 살피지 못하는 것일까.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니 그런게 아닌가 싶다. 통계학자를 말할 때 입에 올리게 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통계학자란 한 발은 끓는 물 속에 집어 넣고, 또 다른 한발은 얼음물 속에 집어 넣고는 “평균을 내보니 아주 괜찮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란 얘기이다. 실제 통계에서야 그런 극단을 제외하고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들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그 대상이 되면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극단으로 갈리는 경우가 많아 그게 쉽게 잡힐리는 없을 듯 싶다. 결국은 민심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제 스스로 속아넘어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태를 희석시켜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된 통계학자 꼴이 되지 않으려면 끓고 있는 마음 속에 먼저 손을 집어 넣어 보아야 할텐데 현실에선 그와 정반대로 간다. 바로 이대통령이 그 꼴이다.
마음에 손을 넣어 끓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대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근데 그 일이 참 어렵다. 항상 끓어넘친 마음에 크게 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나마 그 정도면 다행이다. 대개는 중화상으로 일어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정치인을 욕할 것도 없이 나도 그렇다. 마음의 온도를 헤아리는 일에 너무 서툴다. 우리 모두.
4 thoughts on “마음과 끓는 물”
역시 수도승에게서만 엿볼 수 있는 심심한 화두를 얻고 오셨군요.^^
전에는 스님 혼자였는데 이번에 갔더니 해인사에서 출가했다는 푸릇푸릇한 젊은 스님이 한 분 더 계시더군요. 인사나누고 그랬습니다. 수도를 하고 그 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하는게 거의 10년 세월은 기본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담에는 통방산에 꼭 한번 올라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방산, 이름이 멋집니다.
저도 리스트에 올려 놓겠습니다.
제가 갔던 절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있는데 그 고갯길에서 절로 새지 않고 계속 가면 고갯마루에서 올라간다고도 하고… 절로 들어가다 보면 그곳에도 고갯마루가 있는데 거기서 올라가도 된다고도 하고… 대개의 산이 그렇듯이 길은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요기가 찾아가기가 은근히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