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두물머리를 나간 그녀가
풍경화 한 점을 얻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난 모르고 있었다.
어둠에 묻어둔 한밤중의 시간이
아침나절의 그림을 그려내기 위한
작업 시간이었다는 것을.
‘작업중 –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걸어두는 대신
그곳에선 작업 중엔 작업실을 어둠에 묻어둔다.
아침은 사실 새벽녘부터 걸음하여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항상 눈을 뜨면 바깥이 훤하게 밝을대로 밝은 나의 아침은
언제나 느닷없이 후닥닥 내 앞으로 와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마치 눈을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밤새 외는 듯한 나를 버려두고
그녀가 슬그머니 두물머리로 나갔나 보다.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두물머리에서 특별전을 하더라.”
그리고 비록 원화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가져온 두물머리 특별전의 프린트 하나를 내밀었다.
언제나 보던 그 강이었고,
언제나 보던 강건너의 그 산이었으며,
언제나 보던 작은 섬이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강변의 배 두 척이었지만
또 그것은 언제나 보던 그 곳의 그림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강변에 놓아둔 두 척의 배 가운데
오른쪽 배에 가득 고인 빗물이었다.
오늘의 특별전을 위해 어젯밤 밤새 작업을 하며
배 안에 빗물을 가득 담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 언제나 강물에 뛰어들어 텀벙대거나
산과 들을 두들기며 놀던 빗물들에게
배를 타고 노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몇몇 빗방울들이 강과 들을 버리고
배에 올라탔을 것이다.
배는 이상하다.
타기만 하면 물로 나가기도 전에 벌써 재미가 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져온 프린트에선 무엇보다 먼저
배에 올라 그것만으로도 이미 신이난
빗방울들의 즐거움이 보였다.
강의 너머로는 안개가 어렴풋하게 덧입혀져 있었다.
안개는 지금 강건너 산에게
윤곽을 선명하게 세우지 말라고 속삭이고 있는 중이다.
경계가 선명하면 갈라서는 느낌인데
이렇게 경계를 슬그머니 뭉개면 하늘과 뒤섞이는 느낌이 드니까.
하늘도 안개의 권고를 따라 한껏 몸을 낮추었다.
흐린 날 하늘은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추는 것이다.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갈라서는 날선 느낌을 버리고
경계를 슬쩍 지워버리고 하나로 뒤섞여 보라고 안개는 속삭이고
하늘과 산, 강은 그 권고를 따른다.
그렇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강변의 풀은 선명하기만 하다.
경계를 지워도 존재는 지워지지 않을테니 걱정말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거의 항상 두물머리의 상설전시만 보았다.
날좋은 한낮에 가면 그렇게 된다.
그러나 아침 일찍 두물머리를 찾으면
상설전시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특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전시는 상설 전시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때를 잘 맞춘 날,
카메라를 챙겨갔다면 특별전의 프린트도 한 점 얻을 수 있다.
원화를 아무리 찍어도
절대로 치사하게 촬영금지라고 막아서는 법도 없다.
그러나 두 번 다시 같은 특별전을 반복하는 법이 없다.
그녀가 운이 좋았다.
6 thoughts on “두물머리 특별전”
요건 길어서 사진만 보고 달아나야지…후닥닥…ㅎ
요건 사실 사진만 봐도 되는 거예요. ㅋㅋ
얼리 버드 상을 주셨군요.^^
특별전을 다녀와 건져온 이나
특별전을 알아보고 평하는 이나
막상막하십니다.
원화를 보지 않고 그림을 읽어내려니까 쫌 힘이 들기는 하네요. 자주 갔던 곳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듯 싶습니다.
동원님의 레이다에 제대로 딱 걸려든거 보니 수작임에 틀림없군요.
최고라고 담박에 인정한 저의 눈도 괜챦은거구요^^
동원님의 해설덕에 그림, 아니 사진이 한층 돗보입니다.
카메라 들고 몇년 지나니 드디어 좀 건져오는 군요.. ㅋㅋ
제가 요 카메라로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특히 기본 렌즈가 상당히 괜찮은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