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하늘만 보고 말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2

도쿄에서의 이틀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딸아이 집에서 일을 하다가
어젯밤에 어슬렁거렸던 공원이나 다시가서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밤에 보았지만 단풍이 아주 괜찮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조금 늦게 일어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아이가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도시락은 아니었다.
예쁘게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아이는 학교의 급식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그때는 아이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었고,
그 도시락도 내가 도시락이란 이름 아래 알고 있던
그 옛날 우리의 도시락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건 일단은 아주 예뻤다.
아이가 직접 싼 도시락을 보니
그 엄마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은 느낌이 들었다.
가르치지 않고 해주기만 해도 솜씨를 물려받을 수 있는 건가.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한국 있을 때 무엇인가 해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그냥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갈 줄 알았는데
그 도시락을 또 보자기로 싼다.
보자기도 어디서 예쁜 걸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밥은 넉넉하게 하여 도시락을 한번 쌀만큼의 크기로 나누더니
포장을 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매번 밥을 하지 않고 이렇게 미리한 밥을 냉동실에 넣어 얼려두었다가
그때그때 전자 레인지에 녹여서 싸간다고 했다.
채소는 금방 썩는다며 냉장고에 들어있던 양배추를 꺼내
그것도 몇 개로 분리하여 포장하더니 냉동실에 넣었다.
살림꾼 다 되었다고 하더니 빈말은 아닌 듯 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백과 함께 교재를 넣는 작은 비닐 백을 갖고 다녔다.
학교에서 샀다고 했다.
우리 학교 다닐 때는 남자들은 온통 시커먼 비닐 가방 일색이었고
여대생들은 좀 폭이 넓은 밴드로 책을 묶어서 갖고 다니곤 했는데
세월따라 그런 패션은 변해가는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딸은 12시쯤 집에서 나갔다.
베란다에서 학교로 가는 아이를 지켜보았다.
오늘 오후 두 시쯤 수업이 있다고 들었다.
대학생은 대학생이군.
이렇게 느지막이 느긋하게 학교로 가는 걸 보니.
오늘이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고 나갈 때 쓰레기도 함께 들고 나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착오가 생겼다.
열쇠를 주고 가야 하는데 딸이 아무 말없이 나가 버린 것이다.
나는 딸이 잊고 열쇠를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랍에 넣어놓고 간 것이었다.
전화를 로밍해오지 않아 도쿄에선 딸에게 달리 연락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딸이 사는 집은 열쇠가 없으면 바깥에서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집의 문은 잠그지 않아도 되지만 현관문은 나가면 자동으로 잠겼다.
꼼짝없이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열쇠가 있었다면 근처 동네라도 한바퀴 돌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한편으로 오늘 하루 쉬면서 일이나 하자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베란다에 나가 눈에 들어오는 앞집 풍경과 도쿄 하늘을 구경했다.
저녁에 딸이 돌아왔을 때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인터폰이 있는 집에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딩동하고 벨이 울렸을 때 딸이 열쇠도 가져갔는데 벨은 왜 누르는가 싶었다.
문을 열어보니 딸이 없다.
그래서 신발신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딸은 방금 들어오는 그곳 주민에게 따라붙어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와선 내려올 필요없이 인터폰을 들면
1층에 와 있는 사람하고 얘기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두번째 버튼을 누르면 아래층의 메인 현관문이 열린다고 했다.
딩동 울리면 항상 바깥을 내다보고 나가서 문을 열어주는 건
우리 집에나 있는 시스템이었다.
가끔 우리에겐 자신이 사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9일 도쿄의 주조에서

문을 열면 앞집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보이고
오른쪽은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의 한쪽 구석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지만
전선이 어수선하게 앞을 가려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다.
망원 렌즈를 끼우고 전선을 피해 가며 가끔 하늘의 구름을 구경했다.
근데 난 저런 구름을 보면
마치 살을 다 발라먹고 가시만 남겨둔 생선같은 느낌이 들더라.
오늘 풍성한 구름 생선으로 상을 받은 것이 누구였을까.
도쿄에서의 이틀째날 내가 구경한 것의 전부는
학교가는 딸과 도쿄 하늘의 구름이었다.

9 thoughts on “도쿄의 하늘만 보고 말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2

  1. 따님의 뒷모습…참 앙징맞고 이쁘네요
    대학생인데 앳된 뒷모습이에요 달랑거리는 머리묶음도 이쁘고요
    참….아빠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얼마나 이쁘고 대견하셨을까?
    그런 마음이 절로 듭니다^^

    1. 뭘 이렇게 고생하며 타국땅에 와서 공부를 하나 싶은 생각에
      좀 안타깝기도 하고…
      뒤를 잘 받쳐주질 못하는데
      혼자 잘 헤쳐나가는 거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 자랑스러운 마음… 등등 여러 마음이 뒤섞이더만요.

  2. 딸이 살림꾼이네요.
    도시락도 보자기도 이쁘기만 합니다.
    참 어진 아빠 명랑한 아빠 밑에 멋진 유학생 딸이 있네요…

    1. 도쿄와서 자신이 살림꾼 다 되었다고 하긴 하더만요.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너무 더럽지 않냐고 했더니
      항상 모든 현상의 이면을 봐야 한다면서
      이건 더러운 게 아니라 우리 딸이 지금 무지 바쁘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해서
      정말이지 할말이 없었습니다. ㅋㅋ

    2. 풉! 물 한 잔 마시다 일단 뿜고요.
      ㅋㅋㅋㅋㅋ
      ‘항상 모든 현상의 이면을 봐야한다. 이건 더러운 게 아니라 딸이 무지 바쁘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아무렇지 않게 눈도 깜짝 안하고 반전시키는 논리.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구요. 타코는 털보님의 따님이시다!를 완전 인증해드리고요.ㅎㅎㅎㅎ

    3. 아, 그리고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이건….
      타코의 아버님의 짝꿍님께 또 많이 들어본 멘트고요.
      ㅎㅎㅎㅎㅎ

      그야말로 독립적으로, 엄마빠의 짠한 마음이 무색하도록 잘 지내고 있는 타코를 보면서 저는 저희 아이들 양육의 청사진을 새롭게 해보기도 해요.

    4. 이건 뭐 뻔뻔스러운 건지.. 당당한 건지..
      내가 연극보고 나서 공연에 온 미국 아덜 멋있지 않냐고 하면서
      영어좀 하라고 했더니
      걔네들은 브로드웨이에서 싼 애들 데려온 애들인데 뭐가 멋있냐고 하는 둥, 좌우지간… 대화가 힘겨웠습니다.
      딸이 보통은 아닌 듯 싶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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