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름은 진표이다.
청년의 이름은 박석훈이다.
진표는 어린 아이이다. 정확한 나이는 나도 모른다. 박석훈은 청년 시인이다. 그는 뇌성마비의 장애를 갖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이동을 하려면 휠체어에 의존하거나 누군가의 등을 빌려야 한다. 언어도 명료하지 않으며, 그의 표현에 따르면 “목소리가 흩어져” 이야기를 주고 받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의 나이도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둘, 그러니까 진표와 박석훈의 사이에서 분명하게 본 것이 있다.
2005년 1월 21일, 나는 아내와 함께 서울의 한영교회 사랑부에서 떠난 겨울 성경학교에 동행했다. 미리 밝혀 두자면 나는 그 교회의 신자가 아니며 아울러 어떤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때문에 나의 시선은 종교적 색채로부터 한발 뒤로 물러서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뒤를 좇았던 나의 시선은 매우 일반적 성격의 것이다.
내가 그런 일반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종교적 색채의 모임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객원 사진 작가로 그 자리에 초대해준 그곳 사람들의 덕택이었다. 그들의 자리에 함께 했던 몇번의 경험으로 이제 많은 낯을 익혀놓은 나는 처음에 그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거리감을 상당히 가깝게 좁힌채 자연스럽게 그들의 표정과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그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초점을 멈춘 곳은 박석훈이었다. 그와는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그의 곁에는 진표가 있었다. 진표는 한영교회에 다니고 있는 홍순일·송선자 부부의 아들이다. 홍순일씨의 아내 송선자씨는 사랑부에서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번 겨울 성경학교에 아들 진표와 딸 하은이를 모두 데리고 동행하고 있었다. 홍순일씨는 직장을 끝내고 밤늦게 손수 차를 몰아 그곳을 찾아왔다. 바로 그 부부의 아들 진표가 박석훈의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하여 옆에 있다기 보다 옆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무엇인가 넘어가선 안될 선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는 아이처럼, 진표는 시선을 박석훈에게 주고 있었으나 그와의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 카메라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 박석훈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표현대로 “목소리가 흩어져”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흩어지는 그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귀를 모았고, 용케도 그것이 진표와 같이 사진을 한장 찍고 싶다는 말이란 것을 조합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진표에게 “진표야, 형이랑 사진 한장 찍자. 거기, 형 옆으로 서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진표를 박석훈의 옆으로 세워준 것이 아니라 아이의 등을 떠밀어 버린 꼴이 되었다. 아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멀찌감치 그 자리를 비켜 버렸다. 나는 일순간 당혹스러웠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라면 박석훈에게 남을지도 모를 상처를 염려하게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 당혹스러움을 “아직 낯이 선가봐”라는 말로 무마하면서 그 자리를 뜨는 것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저녁 다섯 시쯤이었다.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숙소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갔을 때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그 방을 찾았다. 시간은 여덟 시였다. 진표가 박석훈의 주위를 맴돌던 순간으로부터 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방을 들어간 나의 카메라는 빨려들듯 초점을 박석훈에게 맞추고 있었다. 아니, 진표와 박석훈에게 맞추고 있었다. 그 둘이 한 자리에 있었다. 세 시간 전, 내가 그들의 사이에서 보았던 그 보이지 않는 선은 이제 그들의 사이에서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진표는 그 선을 넘어가 박석훈과 시선을 맞대고 무슨 얘기인가 나누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진 한장이 있다. 흑인과 백인 아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뒷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다. 그 사진은 흑백간의 갈등이 여전하다고 하는 미국에서의 인종적 장벽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의 기억 속에서 들출 때마다 그 사진의 느낌은 언제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또 훈훈하다. 그날 그에 비견할 아름다움과 감동이 진표와 박석훈이 서로 시선을 맞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4 thoughts on “진표와 박석훈 이야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은 들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어찌 쫓아가겠어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고, 또 존경합니다.
사진을 시처럼 촬영하시는 군요. 깊은 내면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보고 느낀대로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서 그 자리에 함께 하며 지켜보고 그때그때의 내 느낌을 옮기는 수밖에요. 그 때의 무력함 때문에 나는 당신들의 하느님이 당신들에게 가지신 뜻을 당신들이 흔들리면서도 한편으로 굳건하게 가꾸어 가길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하느님 바깥에 서 있는 몸이나 가끔 당신을 위해 당신의 하느님께 손을 모아 보겠습니다.
내 가슴아픈 설레임을 하늘이 허락해 주셨다면 아마 저만한 아들이 있었을 겝니다.
진표에겐 단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