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의 거리는 약 8km 정도이다.
20리가 넘는 거리이다.
그날 내가 걸었던 눈길의 미끄러움을 생각하면 체감 거리는 그것보다 더 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리는 좀 아팠지만 그러나 참을만한 길이었다.
갑자기 햇볕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 위에 빛이 부서지자 눈이 부셨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흘러가는 개울은
한겨울인데도 수량이 상당히 풍부했다.
눈밭을 걸어가면 어김없이 흔적이 남는다.
때로 우리의 마음도 눈밭 같아서 누군가 남긴 흔적을 오래 동안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
상원사와 월정사 사이의 개울물은 좀 이상하게 보였다.
바닥이 쌀뜨물을 흘린 듯 허옇게 보였기 때문이다.
두터운 얼음이 바닥을 덮고 있었고
물이 그 얼음 위를 썰매를 지치듯 미끄러지며 흘러가고 있었다.
앗, 빙산이다!
빙산의 아래쪽은 서슬이 푸르다.
개울, 눈, 나무, 산.
제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 어울려 풍경이 된다.
이번에 또하나 깨달은 것은
눈이 오면 밤도 하얗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길은 밤이 되어도 하얗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처마 끝에서 눈이 낼름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올려다 보며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지붕 위의 용두가 눈속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붕 위의 용두를 보자 킥킥 웃음이 나왔다.
용이 갑자기 지붕을 홀랑 벗겨들고 날아오르는 상상 때문이었다.
월정사의 사천왕상은 다른 곳과 달리 독특했다.
근데 나는 그를 보자 갑자기 개그맨 박명수와 함께 그의 우이씨가 떠오르고 말았다.
나의 경망스러움에 맞은 편의 또다른 사천왕상이 눈을 부라렸다.
조금 미안했다.
문의 저 끝과 이곳이 모두 바깥이건만
왜 저곳은 안이고 이곳은 바깥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알고보면 들어가고 나감의 경계가 없건만
문의 이쪽에 서자 나는 문을 나와 속세로 돌아온 느낌이 역력했다.
내가 가진 속세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8 thoughts on “월정사 가는 길”
겨울길은 또 이렇군요.
같지만 다른 길.
걷긴 좀 힘들었을지 몰라도
기억에는 오래오래 남겠네요. ^^
여름엔 좀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눈오면 사람이 거의 없어요.
길과 풍경을 독차지하고 걷는 맛도 아주 괜찮았어요.
19년전에 가 봤지요. 그리고 아직 내 가슴에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월정사 가는 길”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사진 정말 잘 보고 갑니다.
이날 참 많은 것을 보았던 기억입니다.
상원사를 시작으로 적멸보궁까지 올라갔다가 월정사를 가장 나중에 들렀죠.
눈발이 가늘었다 굵어졌다 하면서 날렸던 날이었어요.
온통 눈이 뒤덮어 오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사람 발자국이 하나도 없던 날이었습니다.
19년전의 월정사는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들러주신 것 고맙습니다.
너무 좋은구경 했어요^^
꼭!!가보고 싶네요…혼자만의 여행
그래도 저보다는 나으시네요..
전 아직 못가봤습니다..
ㅡ.ㅡ
덕분에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모아서 책으로 내셔도 되시겠어요..
^^
항상 멋진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 이겠지요?
타고난 감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그리고 옆에 계신 분들의 노력과 품성일 테구요.
부럽습니다.
너무너무 멋있는 광경이네요.
설경을 눈앞에서 본 것이 언제적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라도 보게되니 기분이 매우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