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산성은 경북의 문경에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그 험한 산세에 지레 위축되어 산성이 비어 있었는데도 꼬박 하루를 정찰한 뒤에야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검은 야욕 앞에선 비어있어도 두려운 곳이나
그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이들에겐 그저 풍경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사람사는 세상일 뿐이다.
예전의 산성을 복원 중에 있으며, 극히 일부만이 복원되어 있다.
사실 산성에 올랐다는 말이 쑥스러울 정도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매미 울음 소리가 정겨웠고, 농촌 마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보내는 시간의 여유가 좋았다.
고모산성에서 내려다 본 모습.
강에 자그마치 다섯 개의 다리가 이리저리 포개져 있다.
가운데로 보이는 다리는 철교이며, 진남교라 불린다.
강의 이름은 영강이며 낙동강의 지류이다.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가장 굵직한 길의 다리이다.
강에선 낚시하는 사람들이 몇명 눈에 띄었다.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철교를 건너가면 저 터널의 앞쪽으로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기차는 다니지 않고 있다.
철로 자전거가 다니는 길로 이용되고 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마을이 나온다.
마을은 신현리라고 한다.
철교에서 내려다 본 영강의 물빛.
물빛은 투명했으며, 그 한가운데 작은 관목이 물살에 시달리며 섬을 이루고 있었다.
진남문.
문을 통과한 뒤, 성으로 오르지 않고 그냥 곧장 가면 마성면 신현리로 이어진다.
작은 농촌 마을이다.
그 마을에서 버스를 내리면 내가 간 길과는 거꾸로 이 산성으로 오르게 된다.
그 길은 평탄하다.
산성에서 내려다 본 진남문.
원래는 산성으로 산을 둘러싸려 했을 테지만
성이 갖는 방어의 의미가 사라지고 나자
자연이 성을 품고 있었다.
아직 많은 부분에서 세월에 무너진 성벽 그대로이며,
그곳을 풀과 나무가 덮고 있다.
복원한 곳은 어찌보면 자연의 품안에서 잠들었던 성을 일으켜 세운 셈이다.
성을 두고 예전처럼 싸울 일이야 없겠지만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살 수 있는 삶의 각박함이 성의 잠을 깨우고 있다.
성황당.
귀신은 어디로 가고 집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철로의 침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몸을 숨기는 게 되는 송장 메뚜기.
신현리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만난 박꽃.
마을의 밭에선 한 부부가 콩밭을 메고 있었다.
마을에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가 V자를 그려보인다.
아이의 이름은 황인성이라고 했다.
농촌에 내려가면 그곳의 사람들은 그곳 풍경의 일부이다.
그러나 도시를 살던 나는 그곳에 내려가면
내가 이제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유리되어 버렸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그런 나에게 나도 자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위로하는 것은
고맙게도 바로 자연과 하나로 엮여 있는 느낌의 그곳 사람들이다.
콩밭에서 일하던 부부나 인성이 모두가 그랬다.
그곳에 아직 사람이 있어 농촌이 푸근하다.
4 thoughts on “문경 고모산성에 오르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세 자매가 여행하곤 우연히 훌쩍 여행하게된 일주일. 점심을 먹으며 간곳이 님이 다녀간 고모산성입니다. 글과 함께 풍광도 넘 섬세히 담아 놓으셔서 감탄을 했읍니다. 홈피에 글을 올리려니 내용이 좀 필요해서 읽다보니 님의 글을 읽게 되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그게 아마도 내가 시골 출신이어서 내 감정이 깊이 이입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보통은 시골에 대해 그곳의 자연 풍경을 떠올리지만 그 자연 풍경에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피폐한 느낌이 강한 것이 저의 입장이거든요.
말하자면 사람이 없는 자연은 잘 보존된 자연이 아니라 마치 버려진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많아요.
사람이 너무 많아도 안되지만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그것 또한 자연에 못할 짓이란 생각이 많이 들어요.
농촌에 내려가서 사람 만나면 반가운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마치 잃어버린 나의 옛모습 같아요.
왤까요… 이번 Eastman님의 글을 읽으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