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표네 가족과 남한산성에 올랐다.
가끔 나는 가족의 중심이 그 가족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가령 우리 가족의 경우, 김동원이나 조기옥의 가족이 아니라
역시 문지네 가족이 가장 자연스럽다.
홍순일씨와 송선자씨의 가족도
진표네 가족이나 하은이네 가족일 때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
가족은 아이들을 그 가운데 두고 재편이 되며,
그 작은 아이들이 가족의 핵심적 구심점을 이룬다.
가족의 중심이 된 아이들은 경이롭기 이를데 없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내며,
가족 전체를 행복으로 감염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한 가족은 주변의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행복한 가족은
자신들의 행복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므로
그들이 행복한 것으로 벌써 세상에 행복을 베풀고 있는 셈이다.
진표네 가족은 행복하다.
그 곁에 있을 때면 우리도 행복하다.
아빠는 나의 하늘.
아빠의 하늘로 날아갈테야.
아빠의 하늘을 나를 때의 기분이 어떠냐구요?
제 표정을 보면 그 기분을 분명히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진표가 아빠의 하늘을 나를 때면
그 하늘은 긴장한다.
하늘이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진표는 절대로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진표네 가족.
왼쪽부터 아버지 홍순일씨, 첫째딸 하은이, 아내 송선자, 진표, 할머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멀리 화곡동에 사시지만 일요일마다
진표와 하은이가 보고 싶어 1시간여 지하철을 타고
둔촌동으로 오신다.
산에서 야호하고 소리치면
새들과 다람쥐들이 놀란대요.
그래도 소리치고 싶으면
입모양만 야호하면 되요.
근데 입모양만 야호했더니
영 재미는 없네요.
우리 눈엔 나무였지만
진표 눈엔 어엿한 의자.
몸이 자라면서 어른들의 눈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사과를 먹는 아주 특별한 방법.
어른들은 자라면서
사과 하나를 먹을 때도 갖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잃어 버린다.
사진을 찍을 때면
아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필사적으로 V를 한다.
하은이와 진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필사적으로 V를 했으며,
진표는 아예 두 개를 펼쳐들었다.
산을 내려오다 몇번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깔깔대며 산을 내려왔는데
내려와보니 진표의 손목이 약간 까져있고, 피도 조금 나 있었다.
그때부터 손목이 마구 아프기 시작한다.
진표는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우리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하은이는 동생의 뒤에서 머리 위로 뿔을 세웠다.
왜 아이들 때는 보이지 않을 때는 하나도 안아프던 상처가
그것을 보는 순간부터 아프기 시작하는 것일까.
혹시 통증은 눈으로 느끼는 감각이 아닐까.
집으로 가는 길에 하은이가 이렇게 물었다.
–아저씨, 왜 길에 태극기를 걸어놓았어요?
–오늘이 한글날이라서 그래.
–한글은 어떻게 만들었어요?
–세종대왕이 만들었지.
–세종대왕이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세종대왕이 아주 작정을 하고 만들었지.
–그럼 영어는요.
–영어는 그냥 지껄이다 보니까 영어가 됐어.
–아저씨, 오늘 한글날인데 왜 세종대왕 사진은 안찍으셨어요.
–그분이 돌아가신지 오래돼서 말이야, 사진찍기가 어려워. 저기 하늘 나라에 계시거든. 그래도 한번 하늘에 대고 오늘 한글날인데 얼굴 한번 내밀어 주세요, 그래볼까.
–지금 깜깜한데 나오신다고 어디 보이겠어요. 아까 구름있을 때 그래보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구름이 얼굴 모양이 됐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좋은 아이디어를 왜 지금 내놓니. 아까 얘기하지.
–그러면 천원짜리 돈에서 찍으면 되는데.
–천원짜리가 아니고 만원짜리야. 천원짜리에 있는 건 퇴계 이황이고, 만원짜리에 있는게 세종대왕이지.
–그럼 두 사람 이름이 모두 똑같네요. 이황, 세종대황이니까요.
–야, 무슨 세종대황이야? 세종대왕이지. 세종대왕이 황당하시겠다.
–그럼 세종대왕은 성이 세종이고 이름이 대왕이예요?
–아니야. 세종대왕도 이씨고 이름이 있어. 지금 생각이 잘 안나네. 집에 가서 아빠랑 같이 인터넷으로 찾아봐.
–아무래도 이름이 세종같아요.
–그런가. 혹시 그 세종은 종이 세개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가.
–그럼 아저씨, 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 이렇게 부르는 노래가 세종대왕 노래예요?
그때 갑자기 진표가 끼어들었다.
–아저씨, 저는 세종대왕 이름 알아요?
–아니, 니가? 그래 뭔데.
–슈렉이요.
–뭐, 슈렉. 아니 세종대왕께서 언제 만화영화에 출연하셨데냐. 다음에 내가 세종대왕을 만나면 품위를 지키시 옵소서라고 한마디 해야겠구나.
얘기는 중구난방 제멋대로 흘러갔지만 우리는 내내 낄낄대며 즐거웠다.
4 thoughts on “진표네 가족과 산에 오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가 아닌 어른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게되요. 사진, 글, 그리고 아이들과의 대화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낌니다. 많이 부끄럽고요…, 제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진표네 가족이랑 같이 하는 산행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이요 붕어없는 붕어빵이예요…ㅎㅎ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더니 정말 맞는 말씀이예요^^
저는 남한산성 아래 많은 술집들로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단풍들어가는 고즈넉한 산성길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아… 털보는 그날 마신 쌀막걸리도 아주 좋았다고 하던데요^^ ㅎㅎ
이번 주 남한산성은 단풍이 좀더 들겠지요.
이번 달은 남한산성을 매주 오르면서 계절을 만끽해보자구요^^
귀한 사진 찍어주시고 게다가 웃음이 절로나는 글까지 써주시니 꼭 연예인 가족이 된 기분이네요.ㅎㅎㅎ
우리가 행복한 것은 기옥언니 부부와 그녀의 주변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두분 뵙기에 참 편안하고 좋아보여요.
아이들은 모두 책 서너 권은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진표 얘기 듣고 있노라면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울 정도.
시대가 좋은 시대라서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해놓고 곧바로 적어놓을 수 있는게 행복하기도 하고.
사진 정리하면서도 보니까 우리 아이 사진도 디지털 카메라 사고는 참 무던히도 많이 찍었더군요. 사진보니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참 좋아요.
진표는 사진 모델을 마다않으니 더더욱 제가 사진찍을 때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