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령을 넘어 양양에 가다

18일날 미사리의 한강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가
그녀의 전화를 통해 강원도의 눈소식을 전해들었다.
19일날 떠나려고 마음 먹었는데
그 전날의 과음으로 인하여 결국 늦게 잠을 깬 나는 강원도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날 자꾸 눈에 어른 거리는 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카메라 장비를 꾸리고 나설 차비를 했다.
그때 그녀가 물었다.
“오늘 같이 갈까?”
전날 일을 끝낸 그녀도 날이 비어있었다.
이게 왠 횡재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승용차를 이용한 여행은 편하기 이를데 없고,
일정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더구나 운전을 내가 하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둘이 집을 나선 것이 11시쯤이었다.
양평을 거쳐 홍천까지 1시간 가량을 달렸지만 어디에도 눈은 없었다.
결국 화양강 휴게소를 지난 뒤
항상 가던 인재 방향의 길을 버리고
우리는 상남 방향의 샛길로 들어섰다.
그 순간부터 간간히 마주치던 차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나홀로 길을 가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샛길을 들어서서 어느 정도 가다가
길의 한가운데 버티고 선 나무를 만났다.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 듯 했다.
그녀는 길 한가운데 나무가 있는 경우는 많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매우 눈에 익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은 가면 갈수록 자꾸 눈에 익어 보였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홍천의 서석이란 곳이었다.
우리는 결국 서석의 검산리에서 차를 멈추었다.
그곳 길가의 옥수수빵집에서 빵을 사먹었던 기억이
갑자기 선명하게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때처럼 빵을 사는 동안 나는 동네의 나무 사진을 찍었다.
나무는 엄나무이며, 수령은 2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나무가 저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냥 자란 것이 아니라
하늘을 꿈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꿈꾸는 갈매기가 멀리 높게 나른다면
하늘을 꿈꾸는 나무도 오래 높이 자란다.

Photo by Kim Dong Won

차는 검산리를 지나 계천리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다.
산자락 아래, 밭 한가운데,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이 한채 놓여있었고,
밭고랑에 남아있는 눈들이 모두 그 집으로 놀러가려는 듯
와와 몰려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이제 이 길이
어느 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길을 가다가
결국은 동해로 넘어갔던 옛추억의 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들추니
우리의 기억에서 이름이 지워져 버린 어떤 자연휴양림이 하나 있었다.
이번에 우리는 그 휴양림이 삼봉 자연휴양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구룡령을 사이에 두고
영동쪽에는 미천골 자연휴양림이 있고,
영서쪽에는 삼봉 자연휴양림이 있다.
옛기억을 좇아 얼어붙은 길을 따라 휴양림으로 들어갔더니
그때처럼 눈이 나무 벤치에 길게 몸을 눕히고
따뜻하게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구룡령 밑에서 오대산으로 빠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따라
구룡령으로 올라섰다.
구룡령 휴게소는 문이 잠겨 있었다.
나는 휴게소 뒤쪽의 길을 따라 산의 정상까지 올려가려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아 중간에서 포기하고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휴게소에서 내려다보니
아직 계곡의 나무들이 눈을 그대로 뒤집어 쓴채였다.
나무가 눈을 뒤집어쓰면
눈꽃이 핀다.
뒤집어쓰면서 피어나는 신비가 바로 눈오는 날의 나무에게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구룡령 휴게소 앞의 나뭇가지에선
열매 두 개가 머리를 맞댄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겨울 바람에 봄기운이 묻어있어 따뜻했지만
사람이나 열매나 둘이 붙어있으면
항상 겨울 추위도 무색해지는 따뜻함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구룡령의 정상을 넘어서자
동쪽으로 시야가 펼쳐진다.
우리는 지금 저 멀리 낮게 몸을 감추고 있는
동해 바다를 찾아가는 중이다.
한참 동안 구비구비 고갯길을 내려가야 할 것이다.
내려가는 동안
동해로 가는 차는 우리 차밖에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드디어 바다에 도착했다.
낙산해수욕장의 바다가 해변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바닷가에 서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낙산해수욕장에서 둘이 함께
사진 한장을 찍었다.
이번에 구입한 리모트 컨트롤 셔터로 찍었다.
이때가 5시 30분쯤.

Photo by Kim Dong Won

바다를 찾아가면서 길가에서 봐두었던
갈치조림집에서 먹은 갈치 조림.
이 갈치조림집의 이름은 <오슈>였다.
우리는 “알았슈”하면서 그 집으로 들어갔다.
양양의 남대천 소방서 옆에 있으며
전화번호는 (033)673-2009이다.
갈치의 조림국물에 밥을 말아먹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나도 비리질 않았다.
나는 술도 한잔 걸쳤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주문진항에선
생선이 바다 공기를 쐬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주문진항에서 젓갈을 비롯하여
반찬거리를 많이 샀다.
건어물집의 아주머니는
이 오징어는 산오징어로 만든 거라 보통 싱싱한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이거 물에 담가놓으면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그 순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돌발적 질문에 아주머니가 당황한 눈치였지만
“그냥 그 정도로 싱싱하다는 거지”로 무마를 했다.
8시 30분쯤 주문진을 떠나 영동과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3시간이 안걸려 집에 도착했다.
역시 그녀가 운전은 잘한다.

9 thoughts on “구룡령을 넘어 양양에 가다

  1. 건강 하시고 즐거워 보이시네요^^
    삼년전인가 저도 구룡령을 넘어서 양양을 갔던적이 잇었지요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두분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진도 글도 넘 좋고 마음에 닿습니다

    1. 이번에는 동해를 가는 새로운 길을 하나 봐 두었어요.
      구룡령 위쪽에 지금까지 넘어보지 못한 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울러 구룡령에서 오대산으로 가는 길도 봐두었구요.
      그 두 길이 모두 괜찮을 것 같아서 다음엔 그리로 가보려구요.

    1. 지난 번 사랑부 겨울수련회 때 못가서 얼굴 못본지 좀 되었네요.
      봄 나들이 때는 아마 갈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 고생하셨다고 얘기 들었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원철씨가 오늘 사진 가져와서 아마 내일쯤 인터넷으로 올려드릴 수 있을 듯.

    1. 가는데 걸린 시간 6시간 30분, 오는데 걸린 시간 3시간.
      역시 여행은 천천히 해야 사진이 남는 거 같아요.
      이번에는 여행가게 되면 어디가서 한 3일 정도 묵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곳의 새벽 풍경과 일몰을 볼 수 있어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