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의 느낌

Photo by Kim Dong Won
상암동 하늘공원 입구에서

둘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미사리 한강변에서

둘이 타고가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미사리 한강변에서

둘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길을 가면 홀로라는 말이 따라붙고,
둘이 길을 가면 함께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홀로라는 말의 느낌은 쓸쓸하고
함께라는 말의 느낌은 따뜻합니다.

그런데 그 둘의 따뜻한 느낌을 사진에 담을 때마다
사실 나는 그 모든 둘의 위나 뒤, 혹은 아래에 홀로 있었습니다.

나는 홀로였지만
그다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내가 흘린 것이라며
내 뒤에서 쓸쓸함과 외로움을 잔뜩 주워 내게 건넸다면
나는 “그건 제 것이 아닌데요”라고 고개를 저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그저 혼자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길 위에서 동행의 둘을 모아
따뜻한 온기로 세상을 덮혀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함께 길을 갈 때 더욱 따뜻했는지
그건 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홀로 가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쓸쓸함을 흘리게 되고,
둘이 가면 따뜻함을 흘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니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어떤 느낌을 흘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둘러메고 그 느낌을 줏으러 다닙니다.
대상이 없으면 그 느낌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느낌은 대상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정말 그들이 흘린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나는 홀로 있을 때 전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느낌을 흘렸다며
그것을 주워 내게 건네준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주워올린 느낌은 대상의 것도,
또 내 것도 아닌 중간의 영역에
애매하게 놓여있습니다.
느낌이란 대상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참으로 애매한 것입니다.
동행의 느낌을 모으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동행의 느낌은
대상과 나의 사이에서 샘처럼 솟는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그 느낌은 따뜻함으로 솟았지만
그 느낌이 언제 다른 느낌으로 솟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대상을 찍으러 다닌다기 보다
아무래도 대상과 나 사이에서 솟는 그 느낌을 찍으러 다니는가 봅니다.

갑자기 김승강의 시 한편이 생각나는 군요.

꽃이라 해서 늘 아름답지는 않지
모든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딱 한 순간 있다네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아
아무도 쉽게 눈치 채지 못하지
꽃 스스로도 마차가진 것 같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눈치 채지 못하는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늘 나는 운수가 좋았다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는 꽃을 보았거든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그 순간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거나
짐짓 먼 산을 보고 있었더라면
너무 억울할 뻔 했어

길을 갈 때
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지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네
아무에게나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거든
나는 그때 꽃에게 쫓아가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네
: 당신은 지금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게 낫겠네
혼자만 기억하기로 하겠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으니
아름다움은 꽃의 것도 아닌 모양이네
세상이 꽃으로 해서 잠깐 환해졌다 해도 마찬가지지
아름다움은 누구 것도 아닌 것 같아
내 손이 닿기도 전에 꽃잎에 맺힌 이슬이
몸을 던져 땅으로 투신하고 마는 것을 보면
–김승강, <운수 좋은 날> 전문 (시집 『흑백다방』에 수록되어 있음. 곧 출판 예정)

카메라를 둘러메고 돌아다닐 때마다
운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그게 괜한 느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운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6 thoughts on “동행의 느낌

  1. 아~아~! 글이 너무 좋아요. 감동 먹었어요
    다른 대상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는 때가 있듯
    나의 아름다움에 다른 이의 시선을 빼앗아본 적이 나도 있었겠죠?
    그냥 기분이 좋아지네요~ 호호!

  2. 시가 참 아름답네요.
    오늘아침 동아일보에 김이연씨가 요즘 시인들의 시가 길어지고 있다고하셨지만 전 시는 좀 길고 깊은시가 좋더군요.
    짧고 간결한 시도 가끔 오랫동안 뇌리에 남긴하지만.^^
    원태연님의 시인의 자격같은 시.^^

    1. 아직 시집은 출판이 안되었는데 곧 나온다고 하더군요.
      울산살고 있는 시인인데 딱 한번 본 적이 있어요.
      문학판이란 잡지의 신인상을 받았을 때였어요.
      시집은 2월초쯤에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1. 오늘 스튜디오 오픈하는 친구가 있어 그 자리에 갔다가
      기분좋게 취하고 들어왔더니
      더더욱 취하게 하는 댓글이 저를 기다리고 있군요.
      감사드립니다.
      좋은 사진 찍으러 많이 돌아다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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