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는 섬이다. 비록 다리로 연결되어 이제는 배없이 차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섬의 기억은 그대로이다.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것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진도에선 바다를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산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아무래도 바다를 보러가야 할 것 같았다.
첨찰산의 쌍계사에서 만난 동네분은 우리가 어느 나무를 보고 느티나무라고 하자 그 나무가 느티나무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이곳에는 느티나무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려준 그 나무의 이름은 팽나무였다. 팽나무 얘기를 들으니 진도의 팽목항이 떠올랐다. 그러면 팽목항에 가면 팽나무 숲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아저씨에게 혹시 그럼 팽목항의 팽목이 팽나무를 뜻하는 거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그건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진도 남쪽의 팽목항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팽목항을 향해 달리던 차가 걸음을 멈춘 것은 팽목항이 아니라 훨씬 전인 죽림리의 강계 해변이었다. 바다가 나오자 마자 우리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바다는 보고 흘러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서 걸음을 멈추고 머물게 한다.
마을회관을 보이는 어느 집앞에 정박한 차와 경운기. 여기선 차가 아니라 경운기가 대세이다. 바다 곁이 아니었다면 주차해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바다에 물든 눈으로 보자 경운기와 차가 정박해 있는 듯 보였다.
바다 한번 보고 마을 한번 또 바다 한번 보고 하면서 걸음을 옮긴다. 좌우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육지와 바로 앞으로 떠 있는 커다란 섬 접도가 거친 파도를 막아주고 있는 아늑한 바다였다.
강계 해변은 바닷가의 길을 따라 굴집이 죽 늘어서 있다. 굴을 보자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한 집을 골라 오늘 하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모두 가족이란다. 설날이라고 모인 가족들이 굴파티 벌이는 중이었다. 고향찾아 맛보는 남다른 재미일 것이다.
그 바로 옆의 큰샘골을 기웃거렸더니 그곳엔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굴을 구워먹고 있었다. 그녀가 엿보면서 맛있겠다고 하자 손님 중의 한 사람이 맛보겠냐며 냉큼 구운 굴을 하나 내준다. 그녀가 받아 먹고는 너무 맛있다고 한다. 우리도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굴회를 먹기로 했다. 아주머니가 아주 맛나게 말아주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아주머니가 맛있게 말아준 굴물회이다. 막걸리를 섞어서 만다고 했는데 막걸리 맛은 나지 않았다. 이 한 그릇에 만원. 내가 막걸리도 있냐고 했더니 옆의 수퍼에서 사다준다. 옥천 막걸리였다. 주소를 살펴봤더니 전남의 해남에 있는 옥천이란 곳에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었다.
큰샘골에선 아주 예쁜 젊은 처자와 총각 한 사람이 아주머니를 도와 굴을 까고 있었다.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 집의 딸과 아들이다. 자식들이 명절날 찾아와서 일도와주니까 좋으냐고 했더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
난 사실 굴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굴의 비린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굴은 전혀 비린내가 나질 않는다. 봄에 갓나온 햇나물 맛이었다. 먹다가 남은 굴을 종이컵 두 개에 나누어 담고 먹다남은 막걸리도 챙겨서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호젓한 바닷가로 자리를 옮겨서 컵라면과 아침에 약간 덥혀 가지고 나온 햇반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를 한잔 걸친 우리의 바닷가에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런 풍경이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또 이런 풍경이 맞아주었다. 제대로 익지를 않아 밥알이 구르는 햇반과 일단 삼킨 뒤에 뱃속에서 누그려뜨려야 하는 컵라면 면발의 식사는 초라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종이컵에 담아온 굴회의 맛과 눈앞의 풍경은 그 식사 시간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밥을 먹은 뒤 차를 몰고 길이 막다른 지점으로 걸음을 막을 때까지 들어갔다 다시 마을로 나왔다. 마을로 나오는 길에 보니 마을분이 바닷가의 방파제 위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도 방파제로 들어가 방파제를 거닐었다.
방파제에서 보니 작은 배 서너 대가 나란히 마을을 바라보며 마치 주인이라도 기다리는 듯 목을 빼고 있다. 그 기다림의 끝엔 항상 바닷물살을 하얗게 가르는 신나는 질주가 있으리라.
아저씨 한 분이 열심히 무엇인가 하고 계시다. 궁금한 그녀가 물었다. 일 나가시는 거예요? 돌아온 아저씨의 답은 조금 난해했다.
“배 세우고 있어요.”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 아저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내가 말을 붙였다. 지금까지 하신 일이 배세우는 일인 건가요?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며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저씨의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차를 주차시키듯이 바다에서도 배를 잘 세워놓아야 하고 그것이 주차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지난 번에 배를 좀 잘못 세워놓았더니 누가 줄을 끊어버려서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했다. 주차 잘못해놓으면 끌어가거나 차를 북 긁고 지나가는 것과 똑같은 일이 바다에서도 벌어진다.
잘 세워놓은 배는 바다 멀리 놓여있지만 줄을 당기면 배가 육지로 끌려온다. 줄을 반대로 당기면 방파제에서 떨어져 닻을 내려놓은 곳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처음으로 바다에 배 세우는 것을 보았다. 아저씨를 마을까지 태워다 드렸다.
나오다 바닷가에서 둘이 각각 사진 한 장씩을 찍었다. 그녀가 먼저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한쪽 다리를 꼰다. 나도 나중에 따라했다.
같은 카메라로 나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번 여행에선 모자를 쓰지 않고 거의 내내 긴 머리를 그대로 풀어놓고 다녔다. 그러고도 사람들과 말걸고 얘기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사람의 스타일에 대해 많이 관대해진 느낌이었다.
팽목항은 그냥 항구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곳에서 관매도 가는 배가 있다고 한다. 차들이 그 배를 타려고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그게 줄인 줄도 모르고 냉큼 그 줄에 차를 세웠다. 언젠가 줄을 서서 배에 차를 싣고 관매도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항은 공사중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항의 모습이 안정되어야 돌아볼 수 있을 듯했다. 팽나무 숲으로 보이는 곳이 한 곳 있었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팽목항은 항구를 한바퀴 돌아서 나가게 되어있었다.
나가는 길에 보았더니 아이들이 2월의 추위도 아랑곳않고 바닷가에서 맨발을 바닷물에 적시고 놀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온 것이 분명했다.
6 thoughts on “진도 강계 해변의 굴회 – 6일간의 설여행 Day 3-4”
굴물회 와~ 맛있게 보입니다.
해산물이 정말 몸에도 좋고 위에 부담도 덜 되고
육지고기보다 훨씬 맛있고….
게다가 먹고 나면 이상하게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죠. ^^
체형이 저랑 비슷합니다. ㅋㅋㅋ
저도 굴 비린내를 싫어해서 입가심으로 나오는 것을 잘 먹지를 않아요.
그 시원함을 한 번 맛보려다 비린내를 맛보면 다음 음식도 먹기가 어려워서…
머리 관리 힘들어서 이제 좀 잘라야 할 듯 싶어요. ㅋㅋ
여기 굴은 누구나 먹을 수 있을 듯 싶어요.
굴물회. 점심 먹고 왔어도 맛나 보이네요.
초장을 푼 것 같진 않고, 양념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데요.
만원 한 장이면 저 푸짐하고 맛있는 물회를 먹을 수 있다니요.
양이 정말 푸짐하죠?
굴구이도 상당히 맛있을 듯해요.
비린내는 죽은 맛인듯 싶어요.
이 굴물회는 비린내가 전혀 없는 살아있는 맛 자체였죠.
맛도 살아있는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