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대화

Photo by Kim Dong Won


아이 키우는게 쉽지가 않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니 부모 생각도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하긴 나도 그랬었다.
어쩌다 내가 말 한마디라도 대거리를 하면
아버지는 “그래, 학교에서 애비한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디?” 하고 묻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해요.”
그 말하고 그 날 한대 얻어맞았던 기억이다.

종종 식탁 위에서 아이랑 대화를 하게 된다.
며칠전 식탁에서 내가 플레이보이에서 읽었던 숙제에 관한 유머를 한토막 꺼냈다.
그러자 아이가 어제 국어 시간에 숙제 안해온 아이들, 상담실 청소 시켰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숙제가 뭐였는데?”
그러자 아이의 대답: “내가 왜 그걸 아빠한테 얘기해야 되는데요?”
순간 당혹스러웠다. 아무래도 그건 예상을 멀찌감치 벗어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경우 부모들은 그런 당혹감을 “아니, 무슨 이런 싸가지가 다 있냐?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학교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디?”라고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래 전 그런 일반적 아버지에게 한마디했다가 한대 얻어맞았던 씁쓸한 기억의 나는 그 대본을 다시 반복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1급 비밀이냐? 그거 말해주면 우리 나라가 큰 위기에라도 빠지는 비밀 같다야.”
아이가 피식 웃더니 “문제 풀이 해오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며칠전엔 서점에 나가더니 책을 한 권 사갔고 들어왔다.
오늘 사온 책좀 보자고 했더니 책 대신 “그걸 왜 아빠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요?” 라는 물음이 되돌아 왔다.
그 날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책인지 더더욱 궁금해 지기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 뭐 그걸 굳이 보여주지 못할 이유는 또 뭐냐?”
그러자 아이가 책꽂이에서 그 책을 꺼내더니 내게 건네 주었다.
아이가 그렇게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냥 한 그룹 사운드의 사진집이었다.
그룹 사운드 멤버들의 사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책.
아빠가 그걸 보면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아이의 말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아이 키우는게 쉽지가 않다.
그건 결국 부모가 되는게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지겨워했던 그 일반적인 부모와 아이 사이의 틀에 박힌 대본을 우리 집에선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도닦는 일같다.

11 thoughts on “식탁 위의 대화

    1. 그것도 다~~아 옛날얘기랍니다…
      =_=;;;;

      아, 대니사진 좀 올려주세요~~
      작업실에서 할마시윙크 뒷치닥거리하고 있으니 다로와 비온이가 늠늠 보고싶은거 있죠~
      ㅋㅋㅋ
      워낙 둘다 재롱둥이다 보니….

  1. -_-;;;;;
    자식키우는 건 마치 수련이나 고행같군요…
    이제와서 자식을 낳기도 안낳기도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렸고….
    음…그러고보니 별을 딸라믄 하늘을 봐야하는데….하늘도 못보고있군요..=ㅁ=;;;;

    얼마전에 18살 초보엄마 육아일기를 봤는데…
    머..남들은 자랑이냐…하면서 비난의 글도 있지만…엄마가 될라믄 좀 일찍 되는것도
    나쁘지않다고봐요…
    그리고 그 적정나이도 저는 18~22살까지로 보고있답니다…

    1. 우린 스물아홉, 스물일곱에 결혼했어요.
      일찍 결혼해서 애낳으면 좋을 것 같기도.
      엄마나 애나 모두 애같아서 애 키울 것도 없이 같이 크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나이 먹으면서 철드는 건 너무 징그러운 것 같기도 해요.
      나이먹어서 철안들면 그건 더 징그럽기도 하지만.

  2. 정말..저와 똑 같은 경험을 하셨네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꼭 위의 글 처럼 ..ㅎㅎ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부모님들도 달라지긴해야하는데..쉬운일이 아니더군요…오흐~너무나 많이 이곳에서 배워야겠습니다.

  3. 그죠? 힘들어요.ㅡㅡ;;
    우리 큰아이가 6학년인데 외모에 신경쓰는거보니 남자친구에게 관심도 생긴 모양이더라구요. 무슨 쪽지 쪼가리를 제가 발견했거든요.ㅋㅋ
    은근히 제 경험담같은거 얘기하면서 요즘 남자아이들은 어떠니? 하면서 물으면
    줄줄 나와요.ㅋㅋ
     
    요즘은 막내 동원이가 반항을 시작했어요.
    앞니가 두개 빠지더니 여지없이 반항하네요?^^;;
    ” 나 이제 엄마가 시키는일 하나도 안할거야!”하더군요. 헐..
    “아~그래? 나도 그럼 동원이 간식준비 이제 안할래~~” 그랬더니
    그건 자신에게 불리했는지 시키는일을 하더군요.^^

    1. 오늘 아침에는 뭘 잊고 가서 학교까지 가지고 가게 되었어요.
      학교까지 갔더니 다른 학교 앞에 있다고 하는 거 있죠.
      또 그 학교 앞에 가서 주고 왔죠.
      진작 다른 학교 앞에 있다고 하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참았죠.
      은근히 부아가 치밀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 세대가 가졌던 아이에 대한 서운함은 가급적 마음에 담지 않고 키워보려구요.
      자식 때문에 행복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런 서운함은 사실 말도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2. 갑자기 더 그럴듯한 대화가 생각났어요.
      아들이 엄마가 시키는 일은 하나도 안할거야 라고 나왔을 때 요렇게 나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래, 정말 이제부터는 엄마가 시키는 일 하나도 안할 거야? 그래도 엄마는 너가 원하는 건 계속 해줄 텐데. 간식도 해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좋은 데 같이 구경도 가고. 그럼 네가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지 않을까. 너는 착하니까 분명히 엄마한테 미안해질 것 같은데. 그래도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척 엄마가 시키는 일 안할 거야?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나는 그래도 너한테 맛있는 간식을 계속 해줄 거야. 엄마는 널 무지무지 사랑하니까.”
      너무 가식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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