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선 진도에 도착한 뒤 군청에 들러 받아온 관광지도를 들고 다녔다. 커다란 지도에 진도의 모든 것이 아주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매우 유용했다. 일단 그 지도로 진도를 한눈에 살펴볼 수가 있었다.
팽목항을 빠져나와 남도석성을 둘러본 우리는 서로 마음이 나뉘었다. 해떨어지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낙조 풍경에 마음이 쏠린 나는 우리가 굴회를 먹었던 강계 해변의 앞쪽에 떠 있던 커다란 섬으로 가자고 했고, 그녀는 진도까지 왔는데 어떻게 아리랑 마을을 그냥 지나치냐고 하면서 아리랑 마을로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이제 별로 시간이 없다고 했고, 그녀는 어제 세방 낙조에 갔다가 진도읍으로 나올 때보니 여기선 차를 갖고 다니면 어디나 다 금방이라고 했다. 나는 어디든 들어가면 한 시간이 날아가기 때문에 그냥 섬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아리랑 마을을 그냥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마음의 미련까지 접은 것 같지는 않았다. 진도도 마음의 갈등없이 모두 둘러보려면 며칠 묵어야 하는 큰 섬이었다.
차를 몰아 수품항이 있는 접도로 들어갔고 드디어 수품항에 도착했다. 차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일몰을 보려면 30분 정도 걸어서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 듯 보였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항구를 뒤로 하고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섰다.
항에 서 있던 안내도에서 접도의 한가운데 있는 남망산으로 올라가는 임도 하나를 보았다. 나오다 보니 왼쪽으로 그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올라가니 산의 정상이 턱밑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산으로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다. 산에 오르면 동서로 모두 경관이 트일 것 같다. 차로 올라간 곳에서도 우리가 차로 지나온 황모리 포구가 한눈에 보였다.
수품항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았던 나무이다. 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쳤다가 나오는 길에 찍었다. 덩굴식물이 휘감고 올라가 나무의 몸을 이루었다. 마치 나무가 손가락없는 장갑을 끼고 있는 듯하다. 여름에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덩굴 식물과 구분이 가지 않을 듯 싶기도 하다. 덩굴 식물과 나무는 얽히면서 하나가 될 것이다.
차를 세워놓고 금갑리 해변의 방파제를 거닐다 물 위에 세워놓은 배 옆에서 신기한 것을 보았다. 멸치처럼 보이는 자잘한 고기들이 엄청난 떼를 이루어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구름처럼 서서히 물 속을 떠돌았다.
금갑리 해변을 나와 신비의 바닷길로 가는 중에 언덕을 넘다 전망좋은 공원을 하나 만났다. 삐에르랑디 공원이라고 했다. 신비의 바닷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나중에 집에 와서 지도를 들여다보다 알았는데 그냥 아리랑 마을로 들어갔어도 이 고개로 나오는 길이 있었다. 군청에서 나누어주는 지도가 아무리 자세하다고 해도 인터넷으로 들여다보는 다음의 스카이뷰나 구글맵만은 못했다. 어쨌거나 배들이 섬처럼 떠 있는 저 바다가 갈라진다니 믿기질 않기는 하다.
드디어 바다가 갈라진다는 해변에 도착했다. 여긴가 싶어 바다로 나가다가 동네 아저씨로 보이는 분한테 물어보니 여기가 아니라고 한다. 조금더 위쪽에서 대각선으로 갈라진다고 일러주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은 지는 해를 바다가 아니라 산너머로 마중한다. 물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해변 웅덩이에 고여있는 물에서도 지는 해가 붉게 몸을 담그고 있다. 산 위의 해와 물웅덩이 속의 해에게 동시에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바다가 갈라진다는 해변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저 섬까지 갈라지는게 아닌가 싶어 하염없이 눈앞의 섬만 바라보았다. 섬의 이름은 금호도이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사진을 살펴보고 온 그녀가 말한다. 저 섬이 아니라 저 섬이래. 응, 저 섬이 아니야? 이 산이 아닌가벼가 아니라 이 섬이 아닌가벼가 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바닷길은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있는 섬까지 갈라진단다. 아래쪽 섬의 이름은 모도이다. 모세의 기적이라 모세에서 모자를 따와 모도라고 섬 이름을 붙인 건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여긴 모세 이전에 이미 섬으로 있었을 테니까. 굳이 순서로 보면 모세가 모도 출신이겠지.
바다 밑에 길을 숨기고 있다가 1년에 딱 사흘만 그 길을 열어주는 신비한 바닷가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배로 훌쩍 갈 수 있는 시대이지만 현대 문명이 선물한 그 편리함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 걷고 걸어 섬에 도달해야 채워지는 무엇인가가 사람들에게 있다. 바닷속의 길은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어도 같은 자리에 걸어서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또다른 섬이 있다고 속삭인다. 섬은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다. 배로 도달하는 섬과 걸어서 도달하는 섬이 다르다. 사람들이 편하고 빠르게를 추구하는 이 시대에 느리고 힘들게 걷고 걷고 또 걷는 이유이리라.
신비의 바닷길을 끝으로 진도와는 안녕을 고했다. 밤길을 달려 완도로 향했다. 완도에 들어간 것은 밤 8시경이었다. 두 시간 여 밤길을 달린 듯하다. 다음 날 청산도에 들어갈 것에 대비하여 일단 완도 여객선 터미널을 가장 먼저 찾았다. 완도 전망대에서 레이저쇼를 하고 있었다. 설날이라 특별히 하는 행사라고 한다. 설날 여행하니 이래저래 구경거리가 많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하루에 배가 11대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평소에는 하루에 4대가 다니는데 설날이라 특별 수송편을 마련하여 11대가 다닌다는 것이었다. 첫배의 시간을 물었더니 새벽 6시 40분이라고 한다. 10분 뒤에 다시 또 한편이 있고, 그 다음에는 8시에 있다. 원래는 8시 배가 첫배이다.
저렴한 숙소를 찾느라고 다섯 군데를 들락거리며 숙박료를 물었다. 완도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비엔나 모텔에 묵기로 했다. 프론트의 아저씨는 3만5천원을 불렀지만 나는 3만원으로 내렸고, 그러자 아저씨가 허허하고 웃더니 현금으로 3만원 달라고 했다. 아저씨의 아주머니가 한다는 바로 옆의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물을 얻어다 햇반과 컵라면으로 식사했다. 같은 3만원인데 어제 진도에서 묵은 모텔만은 못했다. 아침 일찍 배에 탈 것에 대비하여 짐을 싸놓고 잤다.
2 thoughts on “진도의 수품항과 물에 잠긴 신비의 바닷길 – 6일간의 설여행 Day 3-6”
완도 앞 비엔나 모텔이라, 이름 한 번 재밌군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게 엽서 같습니다.
도로변 장갑 낀 나무는 흔히 볼 수 없는데, 특이합니다.
2만5천원쯤에 묵을 수 있는 여관이 있었는데 3층에 있어서 짐을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가기 싫어서 엘리베이터 있는 비엔나로 들어가 버렸죠. 호텔도 기웃거렸는데 호텔은 8만원이더군요. 이틀을 더묵고 식사 한끼도 할 수 있는 돈이라 주저없이 나와버렸죠. 완도의 밤거리를 잠잘 곳 찾아 이리저리 돌아본 거 같아요. 하긴 뭐 그런게 여행의 재미이기도 했지만요.
요기 남망산은 한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을 듯 했는데 그냥 지나쳐서 좀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