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에서 곧바로 청산도로 들어가기로 하고 여행 넷째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에도 완도에서 배를 싣고 제주도로 간 적이 있다. 원래는 목포에서 가려고 했는데 이미 배에 차가 가득차 있어서 차를 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완도로 가면 빈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목포에서부터 부지런히 차를 달려 완도로 갔었고, 그곳에서 또 제주로 갔었다. 완도에서 제주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때 남는 뱃시간에 완도를 잠시 돌아본 것이 완도 구경의 전부였다. 이번에도 완도는 그냥 스치고 청산도로 들어간다.
전날 밤, 완도 여객선 터미널의 아저씨는 첫배를 타고 청산도로 들어가려면 몇 시쯤 와야 하냐고 물었을 때 차를 싣고 가려면 선착순으로 하기 때문에 1시간 전쯤 와야 한다고 했다. 그 배가 8시 배였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 배를 타고 들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첫배는 그다지 차가 없으니 10분 전에 와도 배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는 않았다. 첫배에 차를 싣고 일찌감치 섬으로 가는 길을 나선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아서 배는 차로 가득차기에 이르렀다.
차는 따로 탄다. 돈도 따로 받는다. 그녀는 무슨 생이별할 일이 있냐며 나를 보고 같이 타는 것이라고 했지만 차 한 대에는 운전자 한 명만 탈 수 있었다. 그녀의 차가 막 부두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배를 탈 개찰구이다. 문을 열면 바다가 펼쳐질 듯한 느낌이지만 이른 시간이라 나가니 나를 맞아준 것은 시커먼 어둠이었다.
개찰을 하고 배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그녀가 막 차를 배에 싣고 있다. 새벽 날씨가 그래도 쌀쌀한지 차의 뒤꽁무니에서 흰김이 새고 있었다.
그리고 배는 완도를 떠났다. 육지를 밀어내고 뭍과 안녕을 고했다. 섬으로 가려면 뭍을 밀어내야 한다. 어슴프레한 어둠에 묻힌 완도가 저 멀리 밀려나고 있었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붙잡고 가는내내 배의 갑판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안에서 따뜻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고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대부분 청산도를 고향으로 두고 설날을 맞아 섬으로 온 사람들로 보였지만 몇몇 여행온 중년의 남녀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옆에 자리한 중년의 남녀 중 한 여자가 입을 한발쯤 내밀어 지금 심기가 틀어졌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고, 그것을 달내느라 남자가 절절매고 있었다. 또 한쌍의 중년 남녀는 자리를 잡고 곧바로 눈을 붙였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완연하여 금방 구별이 되었다. 난 사람들을 배안에 버려둔채 갑판으로 나와 바닷 바람과 함께 했다. 배의 뒤쪽으로 배가 밀어낸 파도가 하얗게 꿈틀대며 까마득하게 밀려나고 있었다. 우리는 뭍을 밀어내고 섬으로 가고 있었다.
배의 어디에도 빈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오른쪽 줄의 앞에서 두번째가 우리 차이다. 아슬아슬하게 차를 배에 실었다. 하지만 설날이라 특별히 11대의 배가 드나들기 때문에 10분 뒤에 곧바로 배 한편이 또 있기는 했다. 평상시 겨울철의 경우에는 하루에 4대만 다닌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 첫배로 청산도로 들어간다.
바다의 한가운데 등대가 있다.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눈을 꿈벅꿈벅이는 듯했다.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그때부터 등대는 눈을 붙이리라.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날아간다. 나르는 등대처럼 코앞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하늘에서도 바다의 배를 본 적이 있다. 저 정도 높이라면 우리 배도 잘 보일 듯 싶다. 비행기에서도 누군가가 하얀 포말을 꽁무니로 길게 늘어뜨린 우리의 배로 시선을 주고 있을까. 어느 날 누군가의 글을 읽다 비행기를 타고 새벽의 완도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아래쪽으로 하얗게 바다를 가르며 어느 섬으론가 향하는 배가 있었다는 글을 읽게 된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그러면서 저 배는 어디로 가는가를 궁금해한 거짓말 같은 우연을 만난다면 내가 말해주리라. 바로 그 배가 청산도로 가는 우리의 배였다고.
처음에 터미널에서 듣기로는 한 40분 정도 간다고 했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그게 배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1시간이 넘어서야 작은 섬 하나가 보였다. 나는 섬이다라고 소리쳤다.
청산도가 고향이라며 아이들 데리고 섬으로 설을 쇠러 들어가는 아저씨 한 분이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익혀둔 뒤였다. 지금은 대구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저씨에게 저게 청산도냐고 물었더니 아직 아니라고 했다. 그냥 지금 눈앞에 나타난 섬은 무인도란다.
아저씨가 잠깐 동안 청산도 얘기를 풀어놓았다. 자신은 청산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근처의 섬들은 안가본 곳이 없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청산도의 경우에는 물이 들고나는 물때가 열두 물때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물때는 일곱 물때라고 했다. 그때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고 물나갔을 때 갯벌에 나가면 먹을 것도 지천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물때도 안좋을 때인데 하필 이런 때를 골라 청산도에 가냐고 했다. 그래도 도시의 우리는 그냥 물때랑 상관없이 바다가 그 품에 안고 있는 섬으로 간다는 것이 좋았다. 물때를 모르는 우리는 가는 때가 우리의 물때였다.
드디어 청산도가 나타나고, 그 청산도의 산위로 해가 머리를 내밀고 우리는 반겼다. 배위에서 맞는 아침해였다. 초행의 청산도 길을 섬과 해가 동시에 맞아주었다.
배가 계속 청산도로 향하면서 해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저만치 청산도의 항구가 보였고 잠시 산의 뒤로 몸을 숨겼던 해도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붉게 홍조를 띤 해였다.
항구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바닷물을 깊게 깔아서 품에 안듯 사람을 맞아주는 곳이 항이다. 바다는 그 품에 청산도를 안고 있었고, 우리는 청산도의 도청항으로 들어가 그 섬의 품에 안겼다.
내릴 때는 그녀의 차에 타고 같이 내리면 되는 것을 표검사를 하는 줄 알고 따로따로 내리고 말았다. 배로 여행한 적이 한 번 있었지만 오래 전이라 많이 헷갈렸다.
대구에서 오는 고향 아저씨는 차를 완도에 내려놓고 몸만 배편에 싣고 들어왔다. 나갈 때 차를 배에 실으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갈 때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어차피 설날 연휴를 지나고 나갈 계획인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을 듯 싶었다. 아저씨는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어차피 섬을 돌아보아야할 우리는 그냥 우리도 어디든 가야 하니까 우리 차에 타고 고향집까지 가시라고 했다. 집이 섬의 남쪽 끝이라고 했지만 섬이 작아 차를 이용하면 어디나 금방이었다. 정말 금방 도착했다. 신흥리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양지리라는 마을이었다.
아저씨 일행을 내려드리고 잠시 서 있는데 조금 있다가 버스가 동네로 들어온다. 버스는 빠앙 빠앙 클랙션 소리를 크게 울리며 동네로 들어왔다. 버스가 조용한 섬 동네에서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버스 들어오니까 타고 나갈 사람들 준비하라고 알리는 소리였다.
아저씨를 내려드린 우리는 다시 우리가 들어왔던 항구로 나갔다. 항구로 나가다가 바깥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차를 세웠다. 읍리란 곳이었다. 논이 물결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리산의 둘레길을 걷다가 상황마을에서도 이런 다랭이 논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물결처럼 흘러내리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논의 규모가 크고 반듯반듯하게 직선으로 구획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덩치가 크고 구획이 반듯반듯하면 그 자리에서 굳어진다. 그러나 청산도의 다랭이 논은 규모가 작고 경계가 모두 곡선으로 불규칙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논이 아니라 파도가 끊임없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듯했다.
논의 가장 아래쪽에선 길이 하나 아득히 산너머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 길을 따라가면 바다가 나온다. 우리는 바다 풍광이 좋은 곳을 쫓아 집을 마련하지만 이곳에선 바닷 바람을 피해 아늑한 곳으로 삶의 거처들이 모여있다. 난 편안한 삶의 거처에서 바다로 가고 싶었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바다로 가는 길은 그냥 걷기만 해도 내가 바람이 될 것 같았다. 보기만 했을 뿐 섬에 머무는 동안 읍리에서 바다로 가는 그 길은 아쉽게도 한번도 걸어보질 못했다. 저 길을 걸어가면 도달하는 바다에도 가지 못했다. 저 길을 걸어가면 갯돌이 파도 소리에 몸을 굴리는 바닷가가 있다. 그 바닷가를 그냥 스치기만 했다.
4 thoughts on “배 위에서 맞은 청산도의 해돋이 – 6일간의 설여행 Day 4-1”
오늘도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많네요.
성경공부 할 때 관찰-해석-적용 과정을 거치는데,
거기에 맞는 문장들을 골라 봤습니다.^^
>>>우리는 뭍을 밀어내고 섬으로 가고 있었다.
관찰을 참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날이 밝으면 그때부터 등대는 눈을 붙이리라.
해석도 수준급이시구요.
>>>물때를 모르는 우리는 가는 때가 우리의 물때였다.
적용은 그야말로 거침없구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섬세하게 읽어주시다니.
관찰은 위치에서 얻어지는 거 같아요. 배의 선실에 있었으면 아마도 사람들만 계속 관찰하거나 배의 창에 서린 뿌연 김을 관찰했을 듯. 다들 선실에 있을 때 후덜덜 떨면서 배의 바깥에 있었기에 주어지는 다른 관찰을 선물로 받은 듯.
해석은 해석이라기 보다 대상에 영혼을 주면 대상이 그것이 고맙다고 내게 내주는 선물같아요. 등대에게 영혼을 주는 순간, 불이 점멸하는 것이 눈을 깜빡이게 되니까요.
적용은 지금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수단 같아요. 강력한 생존 본능이랄까. 생존 본능이 없었다면 아저씨의 물때 얘기는 아마도 하나의 정보가 되었을 것이고 저는 정보의 포로가 되어 그 얘기에 묻어가고 말았을 거예요. 저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는데 동시에 그 정보에 저항하는 측면이 많은 듯 싶어요.
그러니까 좀더 다른 위치, 모든 것의 영혼이 살아 있는 정령의 세상, 남다른 생존 본능이 제 모습을 만들어내는 듯 싶다는.
청산도 꼭 가봐야할곳.
바다는 내 심장의 열기를 살포시 눌러 주겠지.
강추!!
들어가는 날, 항에서 내려 도락리.. 당리.. 화랑포.. 새땅끝.. 그리고 바다의 벼랑을 따라 한 다섯 시간 걷고 난 뒤에 권덕리에서 여장 풀고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음 날 다시 동쪽으로 계속 걸어서 항도라는 섬까지 갔다가 그곳의 동촌리에서 묵고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나오면 되지 않을까 싶은게 한번 가본 나의 생각이라는. 하루 더 묵을 수 있다면 그 다음 일정으로 섬의 중간을 가로 질러 산을 두 개 정도 넘은 뒤 북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고.. 나 청산도 너무 훤히 꿰고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