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항상 돌아가는 길로 마무리가 된다. 돌아가는 길의 끝엔 집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 말했었다. 집을 사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 돈으로 그냥 중간 수준의 호텔에서 묵으면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고. 그는 집이 맞아주는 아늑함을 모르는 사람이다. 집은 호텔이 갖고 있지 못한 아늑함으로 사람을 맞아주며, 아무리 누추한 집도 그 아늑함은 예외가 없다. 설날 연휴를 남쪽을 떠돌며 보낸 그녀와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은 항상 우리들이 탈출을 꿈꾸게 만드는 지겨운 곳이지만, 우리에겐 무시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마력은 바로 그곳에 있는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그 집으로 돌아왔다. 설날 연휴라고 해도 붐빌 때를 피해서 그런지 막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길이 막히면 좋은 여행도 지루해지기 일쑤인데 이번 여행에선 그런 경우는 없었다. 막힘 없이 길을 달려 서울로 돌아온 우리를 집은 변함없이 아늑함으로 맞아주었다.
청산도로 들어갈 때는 1시간이 넘게간 바닷길이 나올 때는 금방이었다. 아저씨 한 분이 나와 추운데 왜 뱃전에 있냐고 했다. 쉽게 내려올 수 없는 곳이라서 온 김에 실컷 보고 가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배는 금방 완도에 도착했다. 아저씨에게 갈 때는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때 타고간 배는 임시로 빌려서 운행하는 배로 속도가 1노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배는 이곳의 정기 여객선으로 속도가 1.5노트란다. 한창 사람들이 몰려드는 성수기 때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몰려들고 그때는 버스 4대면 배가 꽉차고 만다고 했다. 성수기의 하루는 정말 정신없이 보낸다는 말을 덧붙여 들었다. 얘기 나누는 사이에 벌써 완도가 눈에 들어왔다.
완도에서 곧장 서울로 올라가질 않고 언젠가 완도에서 제주갈 때 잠시 들렀던 바닷가를 다시 찾았다. 구계등이라 불린다고 한다. 갯돌이 아홉 개의 계단을 이룬 곳이란 뜻이라고 되어 있었다. 사실 이 바다에서 기억나는 것은 갯돌의 해변이 아니라 숲이었다. 그 날은 비가 가늘게 뿌리고 있었는데 이곳의 독특한 방풍림 숲속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풍경은 음산하면서도 환상적이었다. 오늘 그 바닷가에 다시 선다. 그때는 인가고 건물이고 전혀 없는 바닷가였다. 가다가 논 사이로 난 길 하나가 숲으로 가는 것을 보고 차를 길가에 세워놓은 뒤 무작정 그 길을 따라 들어가 숲으로 들어가고, 그 숲을 빠져나가 바다를 만났었다.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에 건물들이 많았다. 그래도 여기 안내소의 화장실 하나는 끝내주게 깨끗하고 좋았다.
그때의 바닷가가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또 그때의 바닷가가 아니기도 했다. 오랜 기억의 장소는 위치는 맞는 것 같은데 느낌은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무 것도 없고, 오직 바다와 숲, 그리고 바다에서 잡아온 멸치를 열심히 쪄내던 젊은 처자와 아버지가 있었던 오래 전의 바닷가가 못내 그리웠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갯돌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바닷 물결은 여전했다.
바닷가에 섬들을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도 마련되어 있다. 마치 망원경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맑은 날엔 청산도는 물론이고 제주도도 보인다고 한다.
방풍림 숲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그녀는 바닷가를 어정거리고 나는 숲속을 어정거렸었다. 이제는 탐방로도 마련되어 있었다. 덩굴성 상록수인 송악을 만났다. 송악이 자라고 있으니 이곳의 기후가 따뜻하다는 뜻이 된다. 넌 기후가 따뜻해서 여기 있는 거니, 아님 네가 있어서 여기 기후가 따뜻한 거니?
아마도 멸치를 찌는 곳이 아닌가 싶다. 정확히는 알 수가 없고 그냥 짐작일 뿐이다. 제주로 가던 날, 바닷가에서 아버지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열심히 멸치를 쪄내고 있었고, 그녀는 그날 갓쪄낸 멸치를 얻어 먹었었다. 그때의 철은 5월이었다. 멸치가 몰려올 때쯤 남쪽 바다로 내려와 그때보았던 멸치찌는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나이드니 오래전의 기억을 오늘의 바닷가에서 다시 마주하고 싶어진다.
송악잎 두 장이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뭐하는 거니? 너희들 무사히 올라가라고 기도해주는 거지. 아이구, 이렇게 고마울데가. 우리는 정말 무사히 올라왔다. 사실 올라오는 길에 우리의 약간 앞에서 차 한 대가 졸음 운전을 했는지 앞이 왕창 찌그러진 채로 고속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송악잎의 기도 덕분에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그 위험을 피해갔는지도 모르겠다.
관광지가 되버린 옛추억 속의 구계등은 마음 속을 반가움으로 채워주기 보다 무엇인가 허탈함으로 비워버렸다. 길을 가다가 그냥 관광지가 아닌 마을로 들어가서 그 허탈함을 채우고 싶었다. 당인리라고 되어 있는 바닷가의 마을로 들어갔다. 할머니들이 미역을 길가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미역을 담은 양동이를 들어올리질 못하자 그녀가 거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두 번 정도 들어다 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미역을 한보따리 내주었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단다. 집에 와서 며칠은 먹었다. 미역의 맛을 비로소 맛본 기분이었다.
그녀가 완도에 왔으니 완도대교를 하나 찍어가자고 했다. 모양은 번듯한데 아직은 공사중이다. 그 아래쪽의 다리가 현재 통행을 하고 있는 다리이다. 이제 공사는 거의 다 된 듯 보인다. 다음에 또 내려오게 된다면 아마도 저 새다리를 건너게 될 듯하다.
완도를 빠져나온 우리는 목포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원래는 광주로 가서 호남고속도로를 탄 뒤 공주를 거쳐 서울로 올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둘이 수다를 떨다가 그만 광주로 가는 길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둘은 좀전까지 있던 광주가 갑자기 어디로 갔냐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계속 앞으로 달려간 차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목포였고, 우리는 결국 목포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올라섰다. 오후 1시 30분쯤 완도를 나온 우리가 군산으로 향하고 있을 때의 시간은 오후 네 시였다. 가도가도 전라도를 벗어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멀긴 멀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내려온 길을 그대로 복기하며 서울로 가고 있었다.
군산휴게소에서 쉬었다.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우동을 먹었는데 이곳의 우동은 휴게소의 그 천편일률적인 우동맛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우동맛이라고 했다. 내려올 때의 군산휴게소는 휴게소는 작고 사람은 엄청 붐비는 곳이었는데 올라갈 때는 여유가 있었다.
옆으로 활어를 실은 트럭 한대가 지나간다. 완도에서 올라온 차량이다. 우리도 완도 갔다가 오는 길인데. 완도라는 이름이 갑자기 친숙해진 느낌이다.
내려갈 때도 안개가 자욱한 길을 달려갔는데 올라가는 길에서도 안개가 여전했다. 차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냉기가 다르다. 역시 북쪽이 춥기는 춥다.
서해대교 한가운데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한참 동안 쉬었다. 서해대교의 교각이 잘 보이질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다. 넉넉하게 쉰 뒤에 다시 길에 올랐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설연휴에 떠난 6일간의 여행이 마감되었다.
2 thoughts on “완도 정도리의 구계등과 당인리의 미역 – 6일간의 설여행 Day 6-2”
구계등 망원경이 정말 저를 보고 있는 느낌이네요.
멸치와 미역 이야기가 나오니 이곳이 바닷가라는 게 실감납니다.
기옥님 우동 드시는 모습은 며칠을 굶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들여다보면서 관찰당한 느낌이예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