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동안의 해넘이와 해돋이 – 6일간의 설여행 번외편

때로 사람들은 내일도 해가 뜬다는 자명한 사실에서 희망을 얻는다.
그래도 내일 해가 뜰 것이다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리면
무릎을 꺾어놓았던 절망의 오늘이 뒤로 물러서고
내일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들을 일으켜 세운다.
가끔 우리에겐 그렇듯 무엇인가 전혀 예외가 없는 것이 희망이다.
설연휴 6일 동안, 여행하는 곳의 어디에서나 해가 뜨고 또 지고 있었다.
매일 뜨고 지면서도 우리에게서 잊혀져 있던 그 해를 만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1일 충남 대천의 고정리 해변에서

여행 첫날, 우리의 하루를 마감해준 해는
충남 대천의 고정리 해변에서 만났다.
오천항에서 대천항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바닷가이다.
우리는 언제나 해를 좀더 근사하게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만남과 더불어 근사한 작별을 꿈꾼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2일 충남 대천에서

여행 둘째날의 아침해는 대천 거리에서 만났다.
해는 동해에서만 뜨는 것이 아니라
충남 대천의 길거리에서도 뜨고 있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 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동해나 바닷가로 해를 찾아 떠나는 것일까.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2일 전남 진도의 가학리 해변에서

여행 둘째날의 석양은 진도에서 마주했다.
해는 각홀도의 뒤로 떨어졌다.
어제보다 훨씬 멋진 작별이었다.
작별이 슬픔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가득 채워주고 갔다.

Photo by Cho Key Oak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의 운림산방에서

여행 사흘째의 아침해는 그녀가 마중했다.
진도 운림산방의 연못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산 위로 상당히 높이 솟아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의 금갑해변에서

여행 사흘째의 저녁해는 진도의 금갑해변에서 보냈다.
바다에 뜬 배들이 작별의 시간을 함께 해주었다.
우리도 가끔 둘이 함께 뜨는 해를 맞고 또 지는 해를 보내고 싶어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 들어가는 배 위에서

여행 나흘째의 아침해는 배위에서 맞았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배였다.
누가 오나 보는지 산위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주 노골적으로 눈을 맞추었다.
해는 산의 윤곽선을 따라 숨었다 나왔다 하며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말탄바위에서

여행 나흘째의 저녁 해는 청산도의 말탄바위에서 작별했다.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아름다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5일 청산도의 말탄바위에서

여행 닷새째의 아침해는 어제 저녁 해를 보낸 자리에서 다시 맞았다.
아름다운 작별을 남기고 간 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상도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바다에 새기며
빛의 물결을 뻗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5일 청산도 보적산에서

여행 닷새째의 저녁해는 청산도의 보적산에서 손을 흔들어 보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보낸 해였다.
작별은 견디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작별은 오히려 내일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낙조가 아름다운 해변에 서고자 한다.
작별의 힘으로 내일을 견디기 위하여.
오랫 동안 보지 않으면 우리는 무너질 것이나
아름다운 작별은 오랫 동안 보지 못해도
그 기다림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해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6일 청산도를 떠나는 배위에서

여행 엿새째의 아침해는
청산도를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배위에서 마주했다.
처음 봤을 때는 엄청난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듯 말듯 하더니
이제는 사흘동안 낯이 익었다고
대놓고 떠나는 나를 바라보며 잘가라고 인사하고 있었다.
아침해와 작별을 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얀 포말로 들끓는 배의 뒷전으로 난생처음 아침해와 작별했다.
우리는 뜨는 해를 찾아, 또는 지는 해를 찾아
바닷가를, 또 산위를 찾는다.
해는 그냥 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만남과 작별의 힘으로 안기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서울은 그러고보면 희망이 없는 도시이다.
해는 엿새 동안 여행하는 곳곳에서 뜨고 졌지만
서울로 돌아온 뒤 또다시 해가 뜨고 지는 것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서울은 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는 곳이다.
원래 그런 곳에선 살 수 없으나 우리는 그곳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바닷가 어느 곳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뜨고 지는 해가 있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6일 동안의 해넘이와 해돋이 – 6일간의 설여행 번외편

  1. 이렇게 일출, 일몰 장면만 시간 순으로 모아 제출하시니
    모범생이 틀림없으십니다.^^
    번외편이지만, 종합판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1. 날이 좀 좋았으면 더 좋은 일몰 풍경이 나왔을 듯 한데.. 여행하는 동안 날씨가 맑지는 않았어요. 요즘 맑은 날씨 드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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