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해는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한낮의 해는 부릅뜬 눈이다.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고 해보라.
마주하기 보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해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서쪽으로 넘어갈 때쯤
겨우 눈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 해는 부릅뜬 눈을 거두고
비로소 온화한 눈빛을 갖는다.
그 눈빛은 붉다.
붉지만 그렇다고 충혈되어 눈은 아니다.
그것은 은근한 눈빛이다.
눈을 마주했을 때,
사실 우리들의 눈도
때로 바로 그런 은근함으로 물든다.
그것은 상대를 빨아들이려는 눈빛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눈빛이다.
우리는 그렇게 눈을 마주하고
은근한 붉은 색으로 서로에게 물들면서 살고 싶어한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들이 언제나 그랬었다.
그러다 우리는 그 눈빛을 잃고
부릅뜬 눈으로 온하루를 살아가고
저녁 때마저 그 부릅뜬 눈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낙조에 집착하는 것은 알고 보면
그 눈빛을 잃어버린 망각의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던
우리들의 눈빛을 다시 되찾고 싶어서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저녁 때마저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노려보게 되었을 때,
그때는 서둘러 서쪽 바다로 가서
붉게 지는 낙조와 마주해야 한다.
2 thoughts on “붉은 눈동자”
햇빛과 눈빛을 직조한 멋진 인생론 한 편입니다.
이런 건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는데,
금슬 좋은 노부부의 비결 중 하나가 부부 사이에 성이 났을 때
다음날까지 안고 가는 게 아니라, 한 편에서 “해가 지네!” 하면
다른 편에서 보조를 맞춰 화나 분노의 감정이 날을 넘기지 않게 하는데
있었다고 합니다.
몸둘 곳 모르게 무슨 그런 황송한 말씀을요.
전 아무래도 낙조지는 곳에 가서 한해내내 살아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