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게 있어 동백섬이란 이름은 부산의 것이 아니라 여수의 것이다. 순서로 보면 나에게 동백섬이란 이름이 가장 먼저 불러 일으키는 지명은 여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수의 동백섬엔 두 번이나 다녀온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난 해운대의 안내판에서 동백섬이란 지명을 보았을 때 부산에도 동백섬이 다 있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동백섬에서 동백꽃을 본 것은 부산이 처음이었다. 여수의 동백섬엔 두 번 갔었지만 모두 꽃의 때는 놓치고 난 뒤였다.
몰운대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있어 그 이름이 환기시키는 지명은 강원도의 정선이다. 하지만 부산에도 몰운대가 있다. 해운대와 그 옆의 부산 동백섬을 돌아본 나는 부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부산역 앞에서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지나는 버스들이 옆구리에서 안내하고 있는 행선지를 이것저것 훑어보다가 다대포란 지명에 홀려 그곳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말았다. 그리고 다대포에서 내렸을 때 그곳에 몰운대가 있었다. 언젠가 부산사는 플님으로부터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곳이다.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바로 옆의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공사 차량이 작업을 하면서 일으킨 흙먼지 때문이었다. 흙먼지는 바람을 타고 뽀얗게 일어났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다.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걸음을 서둘러 몰운대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자 곧바로 오르막길이다. 조금 올라가니 길이 좌우로 나뉜다. 난 왼쪽 길을 선택했다. 표지판은 내가 가는 방향이 화손대 방향이라고 했다. 나는 화손대를 가리키고 있는 표지판의 손짓 앞에서 왜 몰운대를 왔는데 화손대로 가라고 해라고 묻지 않고 그냥 몰운대를 왔다고 해도 일단 화손대부터 둘러보라는 말로 알아 들었다. 이름으로만 보면 꽃의 자손이니 아무래도 꽃이 좋은 곳인가 싶다. 그러나 아직 꽃의 철은 아니다.
길은 조금 올라가자 곧바로 다시 내려간다. 그리고는 바다를 따라 나무숲을 흘러가기 시작했다. 걷기에 좋은 길이었다.
숲길에선 멀리 다대포항이 보인다. 멀리 보냈던 시선을 거두어 바로 밑에서 찰랑거리는 바다로 가져왔더니 물 위로 머리를 내민 바위 하나를 가운데로 두고 물결이 제법 일고 있다. 물결의 노래는 어지럽지만 바위는 그 가운데서 견고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위는 어느 정도 물결을 닮았다. 물결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싶었는지도 모르며, 그렇게 중심을 잡고 싶은 물결의 꿈이 바로 바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올라가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나무 하나를 보았다. 다리를 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놀려먹고 싶어서 슬쩍 묻는다. 왜, 쉬 마렵냐?
이제 화손대에 거의 다 와간다. 숲길을 올라가면 경관이 트이게 되어 있다. 아직 잎들이 나오질 않아 빈가지 사이로 숭숭샌 햇볕이 길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화손대에 도착하니 경관이 트인다. 여기저기 섬이 눈에 띄었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섬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모자섬이라 불린다. 모자처럼 생기긴 했다. 나는 가오리섬으로 부르고 싶었다. 하늘을 날다 날렵하게 착륙한 가오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한 척이 모자섬 앞의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지나간다. 섬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생각을 바꾸면 배가 지나갈 때마다 뒤로 밀려날 수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사실은 옆차가 움직이는데 마치 내가 탄 차가 뒤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은 경우였다. 움직이지 못해도 움직이는 것들을 곁에 두면 움직이는 것들이 지나갈 때마다 뒤로 밀려나는 듯한 움직임을 맛볼 수 있다. 배가 빠르게 섬의 옆을 가로질러 지나갔지만 아울러 섬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배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화손대는 낚시터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한가보다. 낚시하는 분들을 상당히 여러 명 만났다. 눈앞에서 고개를 낚는 광경은 보지 못했지만 이미 낚아 놓은 고기는 아주 풍성했다.
화손대에서 몰운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가다 딱딱대는 딱다구리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작은 녀석이다. 식사 거리를 잘 찾아냈는가 모르겠다. 나무가 속에 품은 벌레를 어떻게 귀신같이 찾아내는가 모르겠다. 설마 나무가 지나는 딱따구리에게 벌레가 어디에 숨었는지 꼰지르는 것은 아니겠지? 렌즈의 성능이 좋질 않아 정확히 어떤 딱따구리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쇠딱따구리가 아닌가 싶다.
부산 해변에는 여기저기 자갈마당이 있다. 몰운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파도 소리를 친구삼아 몇몇 사람들이 자갈 마당에서 술 한잔씩들 하고 있었다. 나도 나중에 곁을 지나다 끼어들어 소주를 한잔 얻어 마셨다. 안동 소주라고 했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술 한잔 얻어먹는데 아마도 둘러맨 카메라와 긴게 늘어뜨린 머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몰운대에 서니 동쪽으로 화손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에 서 있던 곳이다. 화손대 앞에서 보았던 모자섬도 함께 보인다. 화손대에서 몰운대까지 오는 길은 거의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화손대와 몰운대 사이의 바다는 아늑하게 뭍에 안겨 있었다.
몰운대 옆 자갈마당으로 내려가 보았다. 파도가 쉴새 없이 들락거린다. 육지는 해안선의 굴곡을 따라 바다를 들락거리고 있고, 바다는 육지를 들락거리고 있다.
몰운대는 이름대로라면 구름에 젖어보는 곳이다. 그러니 어찌 이곳에 와서 구름을 지나치고 갈 수 있으랴.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몰운대의 이름에 값하는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이럴 때는 그냥 바위에 자리를 정하고 앉아 구름에 젖어 들어야 하는데 나는 사진찍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나저나 흐린 날 오면 몰운대에선 그 이름을 실감하기 어렵고, 화손대는 꽃이 피지 않은 시절에 오면 또 그 이름을 실감하기 어려운 듯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돌아다니는데 호젓했다.
하지만 구름이 아쉬운 날엔 파도를 구름 대신으로 삼아도 된다. 해변을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구름으로 삼게 되면 구름을 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파도가 끊임 없이 몰려와 하얀 구름을 해변에 깔았다 거두어가고 있었다.
2 thoughts on “부산 몰운대 – 무박 3일의 부산 여행 4”
물결과 바위.. 몰운대의 구름 한 점 …
모두 넘 이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윤이 나는 자갈들도…
여행기는 참 넉넉합니다 덕분에 잘 보고 가요!~
좋은 한 주간 보내세요*^_^*
이 날 날씨는 참 좋았어요.
사실 예쁜 구름이 간간히 나타났는데 좋은 촬영 지점 찾아서 급하게 이동하다 보면 구름이 없어지곤 해서 좀 안타깝기는 했었죠.
도토리님의 좋은 한 주를 함께 기원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