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산에서 가장 친숙한 항구는 남항이다. 부산항의 남쪽에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들었다. 부산 송도로 내려갔던 두 번의 걸음이 남항과의 인연을 친숙하게 엮어준 계기였다. 부산의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도 남항에 있다. 남항을 사이에 끼고 마주한 지역이 송도와 영도이다. 그 남항을 마주보면서 다리 하나가 바다를 건넌다. 바로 남항대교이다. 몰운대를 돌아본 나는 송도가는 버스를 집어타고 송도로 이동한 뒤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다리 위에서 남항을 구경했다.
남항대교의 송도쪽 끝부분 다리 밑에서 본 바다 풍경이다. 몰운대를 돌아본 길이 상당히 길었는지 다리가 좀 아팠다. 그래서 이 풍경을 앞에 놓고 다리를 풀면서 이곳에서 한참을 쉬었다. 오늘 하늘은 비워서 푸른 색을 이루고, 바다는 물로 가득 채워 푸른 색을 이루고 있다. 하늘의 빈 공간도 투명이고, 바닷물도 투명이건만 그 투명의 깊이와 높이는 투명을 버리고 색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투명이란 색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투명의 저편에서 색을 길어올리는 색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가 투명하여 올라가는 동안 다리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다리 끝으로 보이는 산의 이름이 봉래산이라고 들었다. 내 고향 영월에도 봉래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부산에 와서 이름을 같이 나누고 있는 산이나 섬을 자주 만나고 있다.
남항의 전경이다. 가운데 탑이 높이 솟아있는 부분은 용두산 공원이다. 가보지는 못했다. 바로 옆으로 부산항이 붙어 있지만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배 두 대가 항으로 들어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란히 들어가면 줄은 선 느낌인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느낌으로 채색을 하면 둘 사이의 느낌이 더욱 다정해진다.
다시 또 배 한 척이 항구로 향하고 있다. 마치 대형 검정고무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때 고무신을 배삼아 물위에 띄워놓고 놀곤 했었다. 그러면 고무신은 배가 되어 물살을 가르며 내달리곤 했었다. 그 놀이가 괜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고무신처럼 생긴 배가 있으니 말이다.
배 한척은 들어가고 또다른 배 한척은 항을 나오면서 풍경을 엮어낸다. 항구의 풍경은 항구가 엮어내는 것이 아니라 배가 엮어낸다. 배들은 항구를 들락거리면서 내게 풍경을 선물한다. 배에게 안전하기로는 항구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배들은 잠시 항구에서 쉬고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미국의 신학자인 윌리엄 쉐드는 말했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세워두려고 배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배들이 다 안다는 듯이 남항을 드나들며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 두 대의 배가 항구로 들어갈 때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두 대가 줄을 잘 맞추자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느낌이다. 줄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느낌도 달라진다.
모든 배가 빨리 달라진 않았고 물위로 나와 있는 몸체의 정도도 달랐다. 이 배는 아주 수면 가까이 몸을 붙이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수영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대의 배가 항구로 들어간다. 둘일 때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느낌이었는데 세 대가 들어가니 와와 몰려가는 느낌이 났다.
배는 지나가면서 바다를 하얗게 갈라놓는다. 갈라진 바다는 곧 봉합이 된다. 길게 이어진 하얀 물거품이 마치 수술을 끝내고 꿰맨 봉합 자국처럼 바다 위로 남아있다. 곧 수술 자국마저 깨끗하게 아물 것이다.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항구 뒤쪽으로 있는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어떨까 싶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이곳 바닷가 근처의 산에 오르고 싶었는데 번번히 그 기회를 놓친다. 아무래도 바다와 먼 곳에서 살다보니 바다에 오면 산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바닷가에서만 놀다 가게 된다.
배가 술취한 것은 아니겠지? 비틀비틀이다. 물결이 밀면 배도 슬쩍슬쩍 밀리는가 보다.
어린이 네 명이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매일매일 이 다리를 건너다 보면 구름 좋고 배들이 그려낸 흰거품의 뱃길이 유난히 아름다워 한참 동안 눈길을 얹어두었다 가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항구에 눈길을 주기 보다 그저 저희들끼리 나누는 얘기에 여념이 없다. 풍경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바다 없는 대도시의 삶에 한번 부대껴 보면 나이들고 나서 문득문득 다리 위를 걸으며 보았던 남항의 풍경이 더더욱 눈에 어른거릴 때가 있을 것이다. 이곳의 아이들은 좋은 곳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울 때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서울은 그리울 때 떠오르는 풍경이 없는 곳이다.
남항대교의 영도쪽 끝에 있는 다리밑으로 내려왔다. 세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분명 한 사람은 걸어서 저기까지 가면 얼마나 걸릴까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 좀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다른 한 사람은 오토바이로 가는 자신이 제일 빠를 것이라며 뿌듯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에이 무슨 소리야, 헤엄잘치는 사람이 제일 빠르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송도쪽 다리밑에서 바다를 바라본 때문일까. 마치 균형이라도 맞추듯이 이번에는 영도쪽 다리 밑에서 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다리를 건너오기 전의 시선과 다리를 건너온 시선이 한 바다에서 교차되고 있었다.
4 thoughts on “남항대교에서 바라본 남항 풍경 – 무박 3일의 부산 여행 5”
바다… 바라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에요
물은 무섭지만… 바다풍경은 동경하게 되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래요 어려서 스치듯 지난간 그 풍경들을 다시 꺼내서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얼마나 그 추억이 행복한것인지에 대해 감사하게 되지요…
저역시 그래요 어린시절 보았던 나뭇잎도 기억하는걸요^^ 반짝 윤이 나는 …4월의 나뭇잎이라던지…비 개인 오후에 바라본 나뭇잎도요^^
글과 풍경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마음이 들어서 참 좋습니다!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바다는 어디 바다든 보기만 해도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제일 좋은 바다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역시 언젠가 배타고 가서 며칠 보고 왔던 제주 바다예요.
부산에 내려갔던 날은 날은 좋았는데 남항대교 위는 바람은 엄청 불더만요.
전 이상하게 저 용두산공원의 탑에 몇 번을 올라가도 어지럽고 멀미할 것 같아요.
남산 타워는 올라가 보니 그냥 높은 탑이나 아파트에 올라 간 느낌인데
이상하게 저 타워는 흔들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남산타워도 올라가본 적이 없고.. 용두산탑도 올라가본 적이 없지 뭐예요.
용두산은 바다가 눈앞에 있어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 건가요.
용두산 말고 용두산 뒤쪽에 있는 높은 산에 올라보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