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의 봄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3월 27일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우리의 봄은 언제나 우리의 높이로 왔다.
골짜기의 얼음이 풀려
한겨우내 발목을 잡혔던 계곡물이
다시 걸음을 떼어놓고
간만의 외출을 콧노래로 흥겨워하며
봄의 기별을 전해도
우리는 바람끝이 차면
봄이 온 것인가를 의심했다.
우리는 바람끝이 훈훈해질 때까지는
봄을 마중할 가슴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가슴 높이에서
따뜻하게 안을 수 있을 즈음에 가서야
바람과 햇볕에 실려온 봄을 맞곤 했다.
냉이의 봄도 언제나 냉이의 높이로 왔다.
냉이의 봄은 그 높이가 우리와 달라서 언제나
땅속의 뿌리를 두드리는 봄의 기별로 시작되었다.
봄의 기별이 전해지면 냉이는
잔뿌리를 뻗어 봄소식을 받아들었고
곧 땅위로 낮게 깔려 밀려들 봄을 맞기 위해
지상으로 싹을 내밀었다.
아울러 곧 잔뿌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봄소식을
넉넉하게 받기 위해
뿌리를 길게 내려 더욱 안정되게 중심을 잡았고
잎을 넓게 펼쳐 봄의 자리를 마련했다.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우리의 봄이 아직 의심스러울 때
냉이의 봄은 가장 낮은 곳으로 이미 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바람끝의 쌀쌀함으로 봄을 의심할 때
우리들 발밑의 냉이는
이미 온몸이 봄에 젖어 있었다.
우리들이 아무리 봄을 의심해도
냉이 무침이나 냉이국을 먹고 나면
봄이 분명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가장 낮은 자리로 가장 늦게 봄이 왔지만
냉이가 사는 세상에선
가장 낮은 자리로 가장 먼저 봄이 왔다.
냉이의 세상이 좋은 것은 알아서
항상 봄이 오면 무엇보다 먼저 냉이국을 먹고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3월 27일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6 thoughts on “냉이의 봄

  1. 사람들은 왜 계절에 (미리) 갈증을 낼까요?
    특히 봄은 더욱 그런 거 같아요.
    저 냉이 하나로도 반가운 마음을 공유하는 거 보면…인간이란 자연에 기대지 않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엾는 존재인 건 맞어요, ^^

    여전히 잘 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봄, 이쁘시길요~

    1. 올해는 더더욱 봄에 대한 갈증이 심한 듯 싶어요.
      아마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웠던 듯.
      일 끝내고 간만에 남이섬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시간 때문에 가까운 두물머리 한바퀴 도는 걸로 끝날 듯.
      봄날이 따뜻해지면 대구라도 한번 다녀오자구요.

  2. ‘좋은 것은 알아서’~ㅡ.,ㅡ 부끄부끄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냉이,, 예지,,

  3. /우리는 항상 가슴 높이에서
    따뜻하게 안을 수 있을 즈음에 가서야
    바람과 햇볕에 실려온 봄을 맞곤 했다/
    부드럽고 배려심 깊은 글에 냉이가 싱긋 웃을것 같아요
    작고 낮은 냉이도 김동원님의 사진과 글감이 되니까 아주 심오한 마음이 들어요
    역쉬……*^_^*
    좋은 주말 보내세요!

    1. 날이 흐리니까 아침 9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어두컴컴하네요.
      계속 아직 날이 안밝네 하다가 시간 보니 아홉 시가 되어 가고 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일마무리하고 놀러가려구 맘먹고 있어요.
      도토리님도 즐거운 주말과 함께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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