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대국을 부르자 순대국이 내게로 왔다.
어떤 집에 가면 부를 필요도 없다.
그냥 하나나 둘이라고 하면 순대국이 알아서 달려온다.
오직 순대국만 사는 집이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집에선 순대국을 불러야 했다.
부르지 않으면 순대국이 아니라 머릿고기가 달려올 태세였다.
홀로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데려다 주었다.
순대국이라고 했지만 순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뽀얀 국물을 면사포로 둘러 얼굴을 가린채 그 뒤로 숨어 있었다.
순대국은 순대국의 맛을 갖고 있을 것 같았으나
뜨거움을 핑계삼아 숫가락에 아주 조금 담아 내준 맛은 아무 맛도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순대국은 순대국만으로는 아무 맛도 내질 못했다.
옆의 파가 자신이 돕겠다고 눈짓을 보냈다.
파가 순대국의 뽀얀 면사포를 걷고 그 품으로 뛰어들었다.
파가 말했다.
아마도 알싸한 맛이 날꺼야.
바로 옆의 썰어놓은 고추가 그 뒤를 이어
다시 순대국의 품으로 향했다.
원래는 다진 고추가 나서는 법인데 이 집에선 썰어놓은 고추가 나섰다.
고추가 말했다.
매운 맛을 염려하지는 마.
음악도 협주를 하잖아.
너는 맛의 협주를 경험하게 될거야.
깨가 눈짓을 보냈다.
이번에는 자기 차례란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도 있잖아.
우리는 뭉쳐서 순대국으로 살아온지 이미 오래된 몸들이야.
새우젓이 자신을 내세워 간을 맞춰보라고 했다.
간이 뭐지?
싱겁다와 짜다의 경계선에 놓인 일종의 과녁이지.
정확히 그 가운데에 놓인 간의 과녁에 맞추면 맛의 점수가 극도로 높아져.
나는 내 손의 감을 믿으며 간을 향하여 새우젓의 화살을 당겼다.
화살은 빗나갔다.
세 번째 화살이 겨우 간의 과녁 근처에 맞은 듯 했지만 점수표는 나오지 않았다.
간의 점수표가 확실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나의 앞에 소금이 나섰다.
그럼 내가 확실하게 도움을 주지.
다같이 바다에서 왔지만 새우젓보다는 내 미소가 좀더 농염짙지.
난 소금의 농염짙은 미소를 순대국에 풀어놓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순대국은 맛의 3할만을 내놓은채
나머지는 그 허연 면사포의 뒤로 움켜쥐고 있었다.
다대기가 말했다.
날 잊으면 안되.
그럼 순대국은 결코 면사포를 벗질 않아.
난 맛의 날얼굴을 보여주도록 순대국의 열정에 불을 지피지.
그러니 나를 집어넣어야 해.
다대기가 순대국의 품에 안겼다.
드디어 순대국이 내게 맛을 내주었다.
순대국의 맛은 순대국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의 알싸함과 고추의 매운 맛, 깨의 고소함,
새우젓의 바다 내음, 소금의 농염짙은 짠맛,
그리고 고춧가루와 뒤얽힌 양파향의 다대기가 엮어낸
맛의 협연이었다.
난 많은 것의 도움을 얻은 뒤끝에서
드디어 순대국의 맛을 만났다.
12 thoughts on “순대국의 맛”
흐흐 재미있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멋진 수염도 여전한지, 여전하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없애버리시는 않았느지…ㅎ
수염은 가끔 변장이 필요할 때 쓱 밀어버리고 있어요.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로 현실을 견딘다는 느낌이 자꾸들어요. 슬픈 일이긴 하지만요. 그냥 시인들이 시를 쓰면서 삶을 자맥질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좋은 시대가 다시 올까요? 요즘 세시봉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인기끈다는 얘기들으면 다소 심기가 불편하기까지 하다는.
김춘수 시인이 오신 줄 알았습니다.^^
순대국도 요즘은 7천원 하죠. 전형적인 서민음식인데..
저희는 상일동 로타리에 있는 병천순대를 종종 가는데,
확실히 옛날맛은 안 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큰 냄비 들고 가서 요즘 돈으로 만 원 정도 내면
푸짐히 담아줘 그걸로 여러 식구가 맛나게 먹던 때가 기억나는군요.
울궈먹기 딱 좋죠, 뭐. 김춘수 시인의 그 시가.
요기는 6천원하더라구요.
양은 푸짐하게 주는 거 같아요.
국수리의 음식점들을 하나둘 순례해 보던가 해야 겠어요.
따로 또 같이,, 이젠 저도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때가 되었군요~
행복하세요^^
행복한 시간 가지시길요.
담에 부산 오시면 돼지국밥의 멋진 연가도…
돼지국밥의 경우 새우젓은 간보다는 단백질과 지방의 소화를 돕기 위한 궁합으로…
지난 번에 부산갔을 때도 순대국을 먹었는데.. 뭐가 잔뜩 나오긴 하더라구요. 먹는 법을 몰라서 옆사람 먹는 거 힐끗힐끗 쳐다보며 따라서 먹었어요. 맛은 부산거가 더 좋더구만요.
흥에 겨워 소금간에 손가락이 함께 하는 모습들이 …ㅎㅎㅎ
김동원님의 글은 재미있고도 평화의 힘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그런 여유있는 이유있는 웃음이 있었으면
돌아 다니는 비닐봉지라도 생명을 실을 수 있을것 같아요
ㅎㅎㅎ
순대국 결혼식에 하객들이 참 짭잘하고 매콤하고… 아주 지대로에요 ㅋㅋ
매번 가는 칼국수집이 있는데 오늘은 다른데 가보자며 들어간 집이었어요.
그나저나 두물머리 구경시켜 준다고 해놓고 여직 말만이네요.
이제 날 좋아졌으니 언제 시간 내볼께요.
흐~ 이거 한컷한컷 담으실 때마다
주위에서 막 쳐다보고 그러지 않았을지
마구마구 그런 생각이 듭니다.ㅋㅋ
순대국 무자게 좋아하는데
울동네는 저렇게 순결한 순대국이 없어놔설
낼은 아쉬운대로 양념 다 넣어
숟가락 푹 꽂아나오는 집이라도 가야겠습니당..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새우젓은 추가해 먹을거에요.. ㅎ
현장을 보신 듯.
정말 쳐다보고 그랬어요.
forest님이 냄새도 안나고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넣은 것을 까먹어서 맛을 세 가지로 먹은 거 같아요.
여기 오면 대접해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