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랑가지 – 고향의 추억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7월 3일 강원도 영월의 문곡에서

고향에서 자랄 때 그곳엔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여러 가지 지명들이 있었다. 음달말(음달이 지는 마을), 울병뜰(소리를 치면 병창이 울리는 뜨락에 있는 마을), 빛바위(갈라지면서 빛이 번쩍났다고 하는 거북등 모양의 바위), 골마차(마차라는 마을에 속하지만 골짜기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는 마을), 장터거리(예전에 장터가 있던 곳), 노루골(노루가 많은 골짜기) 등등이 그것이다.
대개의 이름은 해명이 되었지만 나에게 한가지 해명되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랑가지란 이름이었다. 그곳은 내 고향 문곡에서 마차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곳으로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부분이었다. 위에 첨부된 사진에서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 길이며, 그 길의 끝부분이 바로 모랑가지이다. 나는 그곳을 왜 모랑가지라 부르는지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렴풋하게 그 이름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보게된 어떤 단어 하나였다. 실마리가 된 단어는 모롱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산모롱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의미는 산모퉁이와 비슷하다. 일단 모롱이라는 말은 모랑가지라는 말이 그 말에서 파생되어 왔을 것임을 시사하기에 충분한 발음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 계속하여 찾아보자 강원과 충청 지역에선 산모롱이를 산모랭이로 부르기도 한다고 되어 있었다. 더더욱 눈길을 끈 것은 모롱이의 평안북도 방언인 모롱고지였다. 이 정도면 산모퉁이를 뜻하는 모롱이가 내 고향에서 모랑가지로 변형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모랑가지는 모롱이, 즉 산모퉁이를 감싸며 휘어져 돌아가고 있는 부분을 뜻하는 말의 변형이란 것이었다.
이 모랑가지는 산을 깎아 길을 낸 부분으로 한쪽 부분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었다. 절벽 부분에는 돌로 쌓은 축대가 있었고, 길은 이 축대가 받치고 있다. 그런데 밤에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내려오던 동네 어른들이 이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있곤 했었다. 다행이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고 아래쪽이 논이어서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시냇물에도 작은 보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이곳의 보는 이미 내가 살던 시절에 상류에서 밀려 내려온 자갈로 메워져 깊이가 아주 얕기 이를데 없었다. 살던 곳에서 멀어 이곳까지는 잘 놀러가질 않았었다. 고향의 산과 물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지만 이곳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모랑가지와 관련하여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점은 이곳이 바람이 엄청나게 센 곳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곳을 통과하여 마차에 있는 마차 중학교를 3년 동안 걸어다녔으며, 그 3년 동안 항상 이곳을 지날 때면 강한 바람과 싸워야 했던 기억이다.

4 thoughts on “모랑가지 – 고향의 추억

  1. 제 고향에도 ‘모랑가지’로 불리는 곳이 있어요.
    산을 깎아서 깍아진 산 아래를 돌아가는 길이 있고
    모랑가지 바위틈에서는 봄에 뱀들이 기어나오곤 했지요.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1. 결국 모랑가지는 어디서나 산모퉁이 길인 셈이네요.
      여행다니면서 길을 물어보면 원래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많이 다르더라구요. 심지어 꽃 이름도 부르는게 달라서 그것 알아가는 재미도 상당히 좋았어요.
      언제 얼굴 한번 봐야 하는데 말예요.

    1. 그게 마차가 한문으로는 갈고 닦는다는 뜻이더라구요. 갈마, 갈차라고 되어 있었어요.
      마차가 어떻게 마차가 되었는지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그렇다고 돌을 가는 곳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구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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