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와 그 남자 – 조각가 한미의 작품을 보고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5월 24일 조각가 한미의 작업실에서

그 여자와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5월 24일이었다.
조각가 한미가 아직 물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진흙덩이 속에서
그들을 불러내 내게 소개시켜 주었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란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물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그들은 색이 진했다.
원래 모든 사랑은 처음에는 농도가 짙다.
그날 그 곳에서 함께 두 사람을 소개 받았던 시인 김주대는
어느 날 들판으로 소풍을 나간 자리에서
“바람이 흘린 눈물이 풀꽃”이라고 말했었다.
그 얘기는 우리들이 소풍을 나간 들판에선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얘기를 한미의 작업실로 가져오면
내겐 오히려 대지가 흘린 눈물을 받아낸 자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풀꽃이다.
말하자면 풀꽃은 대지가 흘린 눈물을 풀꽃으로 빚어낸다.
그러니까 대지 속엔 눈물이 있고, 그 눈물을 풀꽃이 풀꽃으로 받아낸다.
조각가 한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우리는 또한 알 수 있었다.
진흙덩이 속에 사랑하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고,
그 둘을 사랑으로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풀꽃이 대지의 눈물을 받아내듯
조각가는 진흙덩이 속에서 남녀의 사랑을 형상으로 받아낸다.
그렇게 하여 나는 조각가가 불러내 소개시켜준
그 남자와 그 여자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보았다.
남자가 여자의 허리쯤에 팔을 두르고 있는 것을.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팔로 감아 여자를 안고 있었고,
여자는 그 팔을 방치한채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품에 있었고,
여자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사랑할 때 남자는 안고 싶어하고
여자는 안기고 싶어할 것이니 큰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시 그 여자와 그 남자를 만난 것은
열흘 정도 시간이 지난 6월 3일이었다.
처음 그 둘을 만났을 때와 다른 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여자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남자의 팔이
여전히 여자의 허리로 향하고 있었지만
허리를 덮었던 그 팔이 이제는 허리쯤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여자와 그 남자를 그 자리에 눕혀보고 싶었다.
만약 그 여자와 그 남자를 눕히면
여자가 남자의 품에 안겨있거나
남자가 여자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 위에 여자가 둥둥 떠있는 느낌이 날 것만 같았다.
처음에 둘을 만났을 때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내게
사랑은 서로 안아주고 안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열흘이 지난 뒤에 그 둘은
사랑은 한 사람이 물결이 되어 누군가를 그 물결의 품에서
둥둥 떠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우람한 근육질로 뭉쳐진 뒤쪽 남자의 몸은
근육이라기보다 마치 물결로 일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이제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몸을 막 유영하고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열흘 동안 그들의 사이에선 그렇게 사랑의 변화가 생겼다.
왜 안고 안겨있던 둘의 사랑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을까.
아마도 열흘 전의 사랑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유영할 품이 되어주고
그 품에서 마음대로 유영하는 것이 더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그 열흘의 짧은 시간에 알아차린 것일까.
아직 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난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엿보았다는 느낌이다.
진흙은 내가 만난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이 태어나는 토대이다.
무엇이나 탄생의 토대는 있어야 한다.
말을 바꾸면 그 토대는 물적 조건 정도가 될 것이다.
물적 조건은 버려두면 그대로 토대로 머물고 만다.
그곳에서 아무 것도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토대가 그 토대에서 태어날 모든 것을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건은 그저 조건에 불과할 뿐.
사람들은 종종 그 물적 조건의 제한을 뛰어넘는다.
때문에 나는 토대에 대해선 큰 관심은 없었다.
내 관심은 그 토대의 다음 단계이다.
조각가는 토대의 다음 단계에서 진흙으로부터 형상을 불러낸다.
그곳에서 불러낸 바로 그 형상이 때로 사랑의 원형질이 된다.
이번의 그 여자와 그 남자가 보여준 사랑은
안고 안기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게 유영의 공간이 되어주고,
그 공간을 마음껏 유영하는 사랑이다.
그것이 이 둘이 엮어낸 사랑의 원형질이다.
내가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제 마지막 작품이 탄생하면 그것은 둘의 색채가 될 것이다.
색채는 원형질을 똑같이 공유한 사랑에게
다양한 느낌으로 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원형질이라기 보다 그 사랑의 색채가 될 것이다.
보통은 그 사랑의 색채에 가려
사랑의 토대도, 또 원형질도 잘 보이질 않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유약을 입히고 가마에서 굽는 과정이 남아있다고 했다.
뜨거운 사랑이 곧 둘을 휘감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결과는 나로선 상상이 가질 않는다.
다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려볼 뿐이다.
난 완성된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불길로 타오른 뒤,
둘이 보여줄 사랑의 색채를 기다리고 있다.
난 둘이 엮어낸 사랑의 색채가 무엇이든
그 둘의 중요한 비밀, 바로 사랑의 원형질을 엿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6월 3일 조각가 한미의 작업실에서

9 thoughts on “그 여자와 그 남자 – 조각가 한미의 작품을 보고


  1. 저는 이런 데 이름이
    슬쩍 등장하면 기분이 좋아진단 말입니다.
    동원님의 애정어린 해설에 흙속의 남녀가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1. 그때 풍경님이 도토리님에게 원래 팔을 허리에 감는게 자연스럽지 않냐고 물어본 것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시의 등에 업혀 세상으로 나설 때가 제일로 좋은 듯.
      만나서 시집 줘야 하는데..
      시인에게 시인의 시집을 주는 최초의 사람이 될지도. ㅋㅋ

  2. 열흘 사이에 작품속 두 인물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네요.
    작품에 스토리가 더해지니 독자들의 상상력이 한 뼘쯤 자라는 것 같습니다.

    1. 실제 구워내면 최종 작품은 어떻게 될까 많이 궁금해요.
      작가의 작업실에 찾아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들으니
      훨씬 더 작품에 대한 이해가 빠르더라구요.
      시인도 작품에 대해 물으면 잘 대답을 해줘서
      마찬가지로 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통에 아주 잘만났다 싶어 자주 보게 되네요.

  3. 아…. 동원님이 이렇게 제 작품을 이야기해주시니까…
    저에겐 또 색다른 느낌인걸요^^
    고마워요… 색채가 입혀진 작품앞에서 동원님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어지네요…

    “니~들이 동원님의 필력맛을 알아?!!” ㅎ

    ….근데요^^ 아무리 읽어 봐도 작품을 빚어내는 저보다
    동원님의 이야기가 더 솔깃한것이 …너무 멋지다요…

    1. 조각가 만나서 제가 호강하는 거죠, 뭐.
      주대 시인도 자기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 공개해주고
      한미님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 공개해 주니까
      보는 사람으로선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듯 싶어요.
      예술 작품은 생각이라기보다 거의 몸에 가까운 듯 싶어요.
      눈앞에서 보기 전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질 않는데
      직접 보고 나면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2. ㅎㅎ 동원님이 느끼시고 좋아해주시는 그런 마음이…
      실은 제가 동원님과 기옥님을 뵈면서 갖게 되는 마음이에요
      제가 미쳐 느끼지 못하고 표현 못했던 부분에 대해
      이리 잘 ..이야기해주시는게 신기해요
      좀 더 훨씬 멋지게 써주셨어요^^
      감사 드려요 그리고 디게 좋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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