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이란 사람이
한진중공업의 부당해고에 맞서
부산 영도 조선소의 85호 타워 크레인에 올라
6개월여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진숙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찍어서 내려보낸
동영상 속에서 말했다.
“노을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은 노을이 없어요.
그냥 갔어요, 해가. 인사도 없이” 라고.
그 얘기 속의 그녀는 내게 속삭인다.
노을은 하루를 마감한 저녁해가
우리와 나누는 작별 인사라고.
날이 흐린 날은 저녁해가
우리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날이라고.
그래서 흐린 날은
저녁을 보내는 시간의 아쉬움이 크다고.
그녀가 그 얘기를 할 때, 나는 보았다.
그녀 속에 살고 있는 시인을.
그녀가 일했던 한진중공업에선
17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내쫓고
그 명단을 발표한 다음 날
경영진들이 174억원을 주식 배당으로 챙겨갔다.
돈은 끌어안고 사람들은 내쫓은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들이 한 짓이 사람들을 내쫓고 일자리를 빼앗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맑은 날 저녁해와 노을빛으로 나누던 작별 인사의 평화를,
흐린 날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보내며 가지는 아쉬움을,
모두 핏빛으로 칠한 것이란 사실을.
노동자의 피눈물로 그 저녁을 덮어버린 것이란 사실을.
단순히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그들을 내쫓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저녁을 빼앗고, 작별 인사의 평화를 빼앗고,
그녀 안의, 그들 안의 시인을 짓밟았다는 것을.
다행히 그녀는 그들이 짓밟으려 했던
그녀 안의 시인을 아직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들은 비록 그녀를 일자리에서 내쫓았지만
그녀 안의 시인은 아직 짓밟지 못했다.
그녀가 그녀 안의 시인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녀 안의 시인이
저녁해와 나누는 노을빛 작별 인사의 평화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듯하다.
다만 내가 그녀의 편임을 밝혀두고 싶다.
특히 나는 그녀 속 시인의 편이다.
부디 무사하길.
6 thoughts on “해와 노을”
저 분 내려오시면 시를 써야할 것 같네요.
크레인에 오르는 독특한 등단식을 치른 시인…진숙 씨….
이번에 진숙씨는 노동자가 투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이란 것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 거 같아요. 반면에 자본가들은 사람도 아니란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고. 공선옥이 얘기한 사람을 내쫓으면서 174억의 돈잔치를 벌인 그들도 사람으로 믿고 싶다는 얘기는 그들이 사람이라고는 믿기질 않는다는 얘기로 들리더라구요.
세월이 만으로 2년을 흘러와도 변하는 것이 없군요.
김남주의 시가 이제 아득한 엣시절의 유산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시가 다시 오늘을 말해주는 시대를 살게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저 답답하고 울화만 치미는 세상이라는.
그녀와 그녀 속 시인이 크레인에서만 아니라
지상에서 해와 노을을 노래하게 되기를.
그나마 눈막히고 귀막혀 지내는 세월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워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으니 자본 권력도 무시는 못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