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읍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삼옥리와 문산리는 영월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영월에선 어라연이 워낙 유명하니
어라연 가는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는 것이 또다른 설명이 될 듯하다.
산을 휘감으며 흘러가는 동강 때문에
내가 자랄 때의 이들 마을은 강건너로 고립된 오지들이었다.
두 곳 모두 다리가 없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삼옥리는 내 초등학교 때 은사인 이장학 선생님이
이곳의 학교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한 번 가봤던 기억이 있다.
강변에 와서 소리치면 누군가 배를 내줄 것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강변에서 선생님을 소리쳐 불렀더니 누군가 나와서
우리를 강건너로 데려다 주었다.
고립된 덕택에 잘 보존이 되었고,
지금은 모두 사람들이 와서 쉬고가는 휴양지로 개발이 되었다.
곳곳에 펜션이 들어서 있다.
친구가 이곳에 새로 생긴 콘도에 방을 얻어주어
하루를 그곳에서 묵고 삼옥리와 문산리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었더니
베란다의 쇠난간에 빗방울이 잡혀 있다.
비가 가늘게 날리고 있었다.
바로 앞으로 동강이 있었고,
그 강의 건너엔 동강을 내려다보는 산이었다.
그 옛날의 고립된 곳에서
오늘은 강건너 사공을 부르던 곳을 바라보며 아침을 연다.
산책을 나가다 보니
비에 젖은 초록빛 풍경이 창에 한가득이다.
가을과 겨울의 풍경은 또 많이 다를 것이다.
얼음이 잡히면 강을 걸어서 건널 수도 있을 것이다.
비가 내린 때문에 강물은 많이 불어나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 때문에 산엔 안개가 많았다.
숙소의 바로 앞 산의 풍경이다.
안개가 온통 산을 감싸고 흘러간다.
안개가 감쌀 때마다 산의 윤곽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하여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산의 낯빛이 하나가 아니다.
이 풍경만 보고 아침 시간을 보내도 좋을만한 풍경이다.
묵고 나서 강의 안개가 만들어내는 아침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가치가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멀리 산중턱으로 인가 하나가 보인다.
산의 품에 들고자 한 사람이 저곳으로 터를 잡은 것일까.
아니면 산중턱으로 펼쳐놓은 밭을 따라 터를 잡은 것일까.
오르고 내려오는데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올라가면 바람이 다리의 피곤과 땀을 식혀주지 않았을까 싶다.
숲의 풀과 나무들 사이에서 노닐었을 나방이
콘도가 들어서면서 그 숙소의 불빛에 끌려 날아들었나 보다.
유리는 나방에게 투명하고 단단한 허공일 것이다.
투명하고 단단한 허공이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나방이
그 불가사의한 유리의 세상에 달라붙어 이해를 고민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산은 지상이 펴든 날개이다.
지상이 산의 이름으로 편 날개는
산안개가 피어오를 때 완연해진다.
날개짓에 안개가 하늘로 솟구치고
골짜기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로 펼친 날개는
하얗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숙소를 나와 삼옥리의 아침 풍경을 뒤로 두고
아침을 먹으러 영월 역전으로 나가는 길이다.
가운데 바위를 두고
동강의 물줄기가 둘로 나뉘어 흘러가고 있는 곳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영월에서 고향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아무래도 술을 과하게 먹게 된다.
그때면 아침에 속을 푸는 곳이 이 집이다.
내가 어릴 때는 골뱅이라고 불렀던 것을 다슬기라고 하는가보다.
올갱이라는 말도 쓰는가 싶었다.
이곳에 다슬기 해장국집이 여럿이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다슬기촌이라는 가장 촌스런 간판이 붙은 집이다.
다슬기 해장국과 다슬기 순두부가 주종인데
친구는 다슬기 순두부를 먹으라고 권했다.
그녀가 반찬이 맛있어서 그냥 반찬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비우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많아 잠시 기다려야했으나 기다릴만한 집이다.
손님이 많다고 했더니
주인이 휴가철이 지나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식당의 바로 앞에 영월역이 있다.
이렇게 한옥 형태로 되어 있는 역은 그다지 흔치가 않다.
나는 영월역 이외에는 한옥으로 되어 있는 역을 본 기억이 없다.
역에 들어가 보았더니 대합실에 컴퓨터도 마련되어 있다.
잠시 인터넷을 이용했다.
이곳에서 서울가는 첫차를 동차라고 부르곤 했었다.
왜 서울행 첫차를 동차라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열차를 이용하면 서울의 청량리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제는 차로 2시간이면 영월까지 내려올 수가 있다.
길은 많이 좋아졌다.
빗줄기가 아주 많이 굵어졌다.
영월역사의 기와골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올려다보니 빗물이 곧장 떨어지질 않고
약간 안으로 휘어져 들어갔다가 떨어진다.
역은 타는 곳과 나오는 곳이 다르다.
그녀가 개찰구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풍경 못지않게 그녀의 몸매도 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언젠가 사진찍는다고 들어갔던 문산리란 곳이 있다.
문산리에서 강줄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정선이 나오지만
정선에선 들어가는 길이 없는 동네이다.
영월에서 삼옥과 거운리는 거쳐 들어가는 길이 문산리에서 끊긴다.
어라연은 삼옥과 문산리 사이에 있다.
문산리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처음 그녀를 데리고 영월 내려왔을 때
강이 길을 끊어 차를 멈추었던 자리에 이제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다 흘러내려오는 강줄기의 위쪽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예전에는 터널이 있었던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 갔더니 터널이 생겼다.
터널을 빠져나가자 산의 중간쯤에 구름이 띠처럼 둘러쳐져 있다.
오가는 차들이 중간중간 마련된 넓은 곳에서 속도를 줄여
서로 피하면서 가던 좁은 길이었는데
이제는 2차로로 나뉘어 있어 편하게 오가고 있었다.
속도를 내라고 해도 낼 수 없던 길이
이제는 너무 빨리 달리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길이 되어 있었다.
문산리 강가에 도착하니 안개가 더욱 심해진다.
심한 안개가 산의 윤곽선을 지우고 드러내면서
내게 그림 한 장을 선물한다.
삼옥의 강건너에서 날개를 폈던 산이
여기선 부채살처럼 가지런히 능선을 겹치면서 중첩되어 흐르고 있었다.
문산리로 들어올 때 건너게 되는 다리이다.
이곳은 동강 래프팅의 출발 지점이기도 하다.
때마침 한 팀이 래프팅을 하러 강가에 도착하고 있었다.
영월에는 두 개의 래프팅 출발 지점이 있다.
하나는 이곳 문산리에서 출발하고,
다른 하나는 고씨 동굴 앞에서 출발한다.
문산리에서 출발한 래프팅은 이곳으로 들어오며 사진을 찍었던
거운리의 다리 위에서 멈춘다.
고씨 동굴 앞에서 출발한 래프팅은 단양으로 흘러간다.
둘 모두 경치가 좋다.
비가 내려 춥지 않을까 모르겠다.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이다.
난 물을 타는 재미보다 그냥 보트에 몸을 싣고 가면서 구경하는
풍경의 즐거움이 더 좋다.
어릴 때라면 나도 보트 놀이가 즐거웠을 것이나
이제는 좋은 풍경을 눈에 담는 즐거움이 더 좋다.
좋은 풍경은 눈에 담으면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준비 운동 삼아서 가보는 것인지
보트 하나를 두 사람이 노저어 위로 올라가 본다.
물결이 잔잔한 곳이 많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물결이 거친 곳이 중간중간 있다.
그런 곳에선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어렵다.
여름철에 한번 타볼만하지만
영월의 강가에서 자랐던 사람에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강은 강가에서 돗자리 펴고 하루 보내면서 물에 뛰어들어 놀고
그러다 몸의 체온이 내려앉아 입술이 파랗게 변하면
몸을 덜덜 떨며 햇볕을 찾아 강가로 나오고 하며 노는 것이 가장 좋은 곳이다.
요즘은 그런 원초적 놀이는 사라지고 너무 세련되게들 논다.
원초적으로 놀 때 생명감이 있다.
세련된 놀이에선 생명감은 없고 그냥 재미만 있는 듯 싶다.
원초적 생명감이 있었던 놀이의 세상,
그게 강가에서 보낸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었다.
4 thoughts on “영월의 삼옥리와 문산리 풍경 – 영월, 정선 기행 2”
햐~
다슬기 순두부, 색깔만 봐도 맛있게 생겼습니다.
고향에 다녀오셨군요.
경치가 참 좋습니다. 깊고 높고 고요하고….넓은데도 아늑해 보이고요.
고향에 가서 4박5일이나 뭉개다 왔어요.
때로 새로운 곳보다 익숙한 곳이 좋더군요.
굽이굽이 진경 산수화가 따로 없군요.
저런 운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면 시간이 멈춘듯 하겠지요?
발길 닿고 바라보는 곳마다 어릴 때 추억과 변주되는 즐거움을 느끼셨겠어요.
물론 외지인인 제겐 다슬기 순두부와 한옥 영월역이 데일리 베스트지만요.^^
그냥 슬슬 돌아다니면 여기저기 사진찍을 것들이 많은 듯 싶어요.
아침 9시쯤 출발하면 12시쯤 도착해서 다슬기 순두부로 점심먹고.. 다섯 시까지 어라연 한바퀴 천천히 돌고.. 그 다음엔 곤드레밥으로 저녁한 뒤에 서울로 오면 하루 코스로도 괜찮다 싶어요.
시간을 맞춰 언제 한번 단체로 내려가시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