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어라연 가는 길 – 영월, 정선 기행 3

사실 영월에서 자라면서
외지 사람들이 와서 놀라는 경치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다지 동의가 가질 않았다.
어느 해 중앙의 일간지에 어라연이 크게 소개되면서
서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내려왔지만
우리는 도회지 사람들을 반기는 마음보다
어디 이번에 고생좀 해봐라는 심정이 더 강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도회지 사람들에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내려와서 그곳을 다녀간 서울 사람들은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 하며
또 험한 길 때문에 불만이 상당했었다.
우리는 그때 킥킥 거리며 많이 웃었던 기억이다.
어라연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에 비견할 작은 경치들을
마을마다 끼고 있는 것이 또 내 고향 영월이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영월 사람들에게도 어라연은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은 찻길이 나 있지만 그곳까지 들어가진 못한다.
환경 보호 때문에 차의 출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허가 받은 사람들로 한정하고 있다.
비오는 날, 받쳐든 우산으로 빗줄기를 막아가며 어라연을 다녀왔다.
어렸을 때는 왜 이 아름다움을 몰랐을까 싶은 한편으로
어디나 물이 흐르는 곳이면 강원도는 다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들어가는 입구에서 물봉선이 맞아준다.
보라빛 환영인사가 내리는 비에 젖어 더욱 진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고개를 하나 올라가니 시야가 좀 트인다.
아직 강은 보이질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산으로 가는 길과 강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수녀님들을 만났다.
산을 오른 것 같지는 않다.
산쪽으로도 마을로 가는 넓은 길이 있는데
아마도 그 길을 따라 마을이나 그 중간쯤까지 가다가 돌아섰을 것이다.
여기저기에 관심을 두면서 길을 내려가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우리는 강쪽으로 길을 잡았다.
급경사를 내려가니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길이 서서히 강과 높이를 맞대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어라연에서 내려온 동강 줄기이다.
강은 길을 내려오는데 우리는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건너 산에선 안개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안개는 때로 아래로 내려앉기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바위 위쪽으로 담쟁이 잎들이 구름을 이루고
그 구름에서 담쟁이 빗줄기가 푸르게 쏟아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무거운 몸으로 강가에 주저앉은 바위는
벌써 이 자리에서 몇 십년을
강건너 풍경에 하염없이 눈길을 주고 있다.
이상하게 풍경은 강건너에 두어야 볼만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배추속 넣듯이 안개가 골짜기 골짜기로 스며든다.
골골마다 물소리가 그득할 것이다.
물소리에 계곡이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강건너 산에 벼랑이 언듯언듯 비친다.
어릴 때 벼랑은 곧 다이빙대이기도 했었다.
물이 돌아가는 곳은 깊이 파여
벼랑에 기어오른 뒤 뛰어내리기에 아주 좋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강물 위는 온통 빗줄기 자국이 천지였다.
강이 오돌토돌했지만 비만 그치면 금방 매끄러운 피부로 돌아갈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이 강줄기의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어라연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길이 험하다.
강가에 나가 비내리는 강변 풍경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리기로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잠시 강변의 울창한 나무숲으로 들어가 비를 그었다.
잎들이 빗방울을 모았다 한꺼번에 굵직한 방울로 뚝뚝 떨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우중의 숲속에서 매미 한 마리가 고생이다.
울지 않고 조용히 나무에 붙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돌아서서 나오다 커다란 달팽이 한 마리를 보았다.
천천히 길을 건너는 중이다.
약간 걱정이 되었다.
차가 다니는 길인데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호리병 물웅덩이이다.
빗물이 아니라 술이 고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맑은 것을 보니 막걸리는 아닌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빗방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한껏 사치를 부린 나뭇잎이 날개를 펴고 있다.
동강에선 온갖 것들이 날아오르려 한다.
안개가 피어오르면 산이 좌우로 날개를 펴고
빗방울을 머금은 잎들도 좌우로 날개를 펼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머리 감으셨구랴.
아직 수건으로 털지를 않아 머리끝마다 물방울이다.
털어주려다 말았다.
물방울을 뚝뚝 떨구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바위의 뿔인 것일까,
아니면 바위가 내민 긴 혀인 것일까.
뿔이라면 바위는 동물과이고,
혀라면 저렇게 혀가 긴 것을 보니 바위는 파충류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비에 머리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분은 아무래도 기름발라 넘기신 것 같다.
너무 많이 발라 머리 끝에 기름 방울 하나 뭉쳐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바람 불면 딸랑딸랑 울릴 것 같은 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나오는 차를 한 대 보았고 들어가는 차를 한 대 보았다.
길이 험해서 그런지 운전하는 사람이 길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운전하는 사람과 눈도 맞추지 못했다.
험한 길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풍경을 구경하지 못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비오는 길을 걷는 것은 그것만으로 운치가 그만이었다.
빗소리와 강물 소리가 뒤섞이는 길이었다.
이제는 강을 뒤로 하고 나가는 중이다.
그녀가 받친 우산 위로 빗줄기가 여전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물도 흙탕물이 되었다.
빗방울이 떨어진 곳에서 동글동글한 공기 방울이 솟았다 톡톡 터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가을꽃의 하나일 것이다.
넷 같지만 사실은 다섯이다.
상상력이 빈약하다.
갑자기 독수리 오형제가 떠올랐다.
다섯을 눈앞에 두었을 때
독수리 오형제좀 벗어나고 싶은데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말랐을 때는 우리의 길인데
비가 오자 길은 동시에 물의 길이기도 하였다.
길의 낮은 곳을 잘도 찾아내 물이 길을 내려간다.
물의 길을 피해 우리의 길을 밟아가며 물과 함께 길을 내려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잠자리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잠시 휴식 중이다.
앉아 있는 꽃은 분홍색인데 잠자리는 꽃보다 더 붉게 익어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영월에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던 물봉선이
이제는 무사히 다녀왔냐고 안부 인사를 묻는다.
물봉선의 인사로 길을 열고 다시 또 물봉선의 인사로 마무리를 한다.
비오는 날 천천히 강변을 따라 걸으며
많은 것들과 함께했다.
비 때문에 몇 가지 놓친 장면들이 있다.
특히 마치 바위를 빗줄기로 뒤집어 씌워놓은 듯이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곳이 있었는데
다음에 비오면 삼각대 들고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입구에서 지천으로 피어
우리를 맞아준 물봉선의 낯빛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었다.
길의 건너편엔 물봉선이 항상 그 소리에 젖었을 맑은 물이
길가의 도랑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9 thoughts on “비오는 날의 어라연 가는 길 – 영월, 정선 기행 3

  1. 산과 강, 나무와 꽃, 그리고 길과 사람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풍경.
    어디나 있는 것들이지만, 강원도의 그것들은 차분하고 소박해 보입니다.
    담백한 서술 가운데 속속들이 꿰고 있는 고향 나들이의 즐거움이 전해지는데요.^^

    1. 고향을 이렇게 속속들이 돌아본 것도 간만인듯 싶어요.
      자랄 때 여러 마을들이 있었는데
      그 마을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싶어요.
      외지분들은 관광지로 보내고
      저는 달리 여행을 잡아야 하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관광지를 중심으로 많이 돌아다녔어요.

  2. /머리 감으셨구랴/ ㅋㅋ
    아 잼있어요! 어라연 찾아 오는 도시인들을 고소하게 바라보신 그 모습도요
    아침에 동원님 덕분에 웃고 시작 합니당 하하하~~~
    좋은 하루 보내세요!^^

    1. 동강물이 좋기는 좋은지..
      머리결에 윤기가 흐르더라구요. ㅋㅋ
      어제 아찔하기도 했고 또 즐거웠어요.
      작품은 우리 집의 한곳을 차지했어요.
      뜨거운 사랑은 우리가 몸소 실천하려구요. ㅋ

    2. ㅎㅎ 제 잘못이지요..손잡이라고 그케 맹글어 놓았으니요
      참 이 머리로 살아가기 참 버겁습니당 ㅋㅋ
      근데 또 돌아서면 다 잊고 해빵하고 장단점이 있어요 ㅋ
      어제 정말 놀라셨지요?
      한동안 말씀을 몬하시더라는…ㅋ 어찌나 그 모습이 잼있고
      죄송하던지요…
      저도 너무 즐거웠어요
      작품대로 꼭 포즈 취해 보셈요^^ 강추!!

  3. 동강 달팽이라고 보내셨는데 못 알아듣고 동양달팽이 아니냐고 물었네요.ㅋㅋ
    한산도에서 아이들 손에 잡혀와 저희집에서 키우고 있는 넘들과 같은데
    제가 찾아본 봐로는 동양달팽이라는 이름이더라구요.ㅎ

    바람불면 딸랑딸랑 울릴 것 같은 저 꽃은 잔대에요.
    제가 좋아하는 꽃중에 하나라서..
    지난번 수목원에 가서 달랑 하나밖에 보지 못한 걸
    찍어오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혹시 더 찍은 사진 없으신가요?

    밑에 잠자리가 휴식중인 꽃은 여뀌종류구요~
    추석 지내느라 심신이 완전 방전인데
    두분 따라다니며 사진이나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맘이 듭니당~

    저도 아이들 다 키워놓구 한시름 놓을 날이 오겠죠? ㅎ

    1. 언젠가 까마중을 챙겨주시더니 이번에는 잔대랑 여뀌를 챙겨주시는 군요.
      잔대는 흔치가 않더라구요.
      비가 와서 저 사진 한장만 찍었어요.
      그렇잖아도 추석 앞두고 어찌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냐는 얘기를 들었죠.
      애가 해외에 나가있으니 이런 여유가 생긴다고 답을 했죠.
      아이가 대학 들어가면 그때부터 둘의 시간이 나는 것 같아요.

  4. 김동원님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오늘도 행복 한사발 들이키고 갑니다. 친구들과 많이 나누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미국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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